[제34회 五賢人의 날 참석차 제주여행] 14
탐라의 해양교류
탐라는 주변 지역과의 해상교류로 다양한 문물을 받아 들였습니다. 철기, 유리구슬, 옥제품, 남해안 지역의 토기 등 제주에 나지 않는 산물과 새로운 토기들이 들어오거나 제국에서 만들어진 생활용기가 남해안 지역으로 전해지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제주 동부지역의 구좌읍 종달리에서는 남해안 지역에서 들여온 토기와 철기 여러 점이 출토되어 당시 이 일대가 해상의 요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한 의례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시 용담동 제사유적 출토품도 당시의 활발했던 해상교류를 보여줍니다.
濟州, 海外巨鎭,
宋商島倭, 無時往來
제주는 해외의
큰 진이며,
송나라 상인들과
왜인들이
수시로 왕래한다.
고려사, 1260
교역의 주체였던 탐라는 1105년 고려의 탐라군으로 편입되었다.
해상왕국 탐라의 대외교류와 조선술
청자 연꽃잎무늬 접시
중국 원
신안군 방축리 증도
국립중앙박물관 / 신안 1959, 1976 ~ 1984년 발굴
목간
중국 원
신안군 방축리 증도
국립중앙박물관 / 신안 23581 · 23597, 1976 ~ 1984년 발굴
물품의 꼬리표인 목간에는 수하물의 항목과 수량, 그리고 물품을 받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 쓰여 있다. 목간을 통해 신안 침몰선이 1323년 중국 원나라의 낭보를 떠나 일본으로 향하던 도중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사실이 밝혀질 수 있었다.
탐라에서 출토된 중국 송의 동전
중국 송 宋의 동전은 고려와 탐라, 일본이 교역할 때도 사용되었다. 산업 발달로 인해 많은 양이 제작된 송의 동전은 무역의 결재 수단이나 귀족들의 사치품으로도 이용되었다. 탐라에 송나라 상인과 왜인이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고려사 高麗史』의 기록처럼 국제교역이 활발했던 탐라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중국 송의 동전
중국 송
제주시 금성리 (1) / 고내리 (2, 3)
제주 8779, 1996년 / 제주 129 · 130, 1995년
마한 항아리
마한 馬韓
제주시 외도동
제주 2952동, 2005년 발굴
용담동 제사유적
제주시 용담동 해안가 언덕의 정상부에 위치한 탐라의 제사유적이다. 유적의 정상부에서는 한천 漢川 하구의 용연 龍淵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유적에는 통일신라토기인 병, 항아리, 사가편병 등과 중국제 도자기, 금동제품, 철제품, 다양한 구슬 등 외부에서 수입된 귀한 유물들이 파편으로 폐기된 상태로 쌓여 있었다. 이러한 유적의 입지와 출토상황으로 미루어 제의와 관련된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용담동 제사유적 출토품
탐라 (삼국 ~ 남북국시대)
제주시 용담동
제주 1396 ~ 1501, 1992년 발굴
1. 청자접시편 · 항아리편 2, 3. 허리띠 꾸미개 4. 곱은옥 5. 구슬
함께 온 사신은 송아지와 망아지 그리고 오곡의 씨앗을 선물하며 말했습니다.
세 공주는 바다건너 벽랑국 임금이 보낸 배필입니다.
하지만 세 명의 공주들은 이 척박하고 새로운 땅이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돌은 백록담에 올라 아름다운 은하수를 보여 주며 그녀들을 달래주었습니다.
"너무 걱정 하지마. 내가 비와 바람을 막을 든든한 담장과 지붕이 되어줄 테니까. 언젠가 저 은하수처럼 이 섬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될거야."
탐라에서 출토된 통일신라토기
탐라 후기가 되면 고내리식 토기와 함께 통일신라토기가 출토된다. 주로 경상북도 경주 안압지와 전라남도 영암 구림리 가마터에서 출토되는 통일신라토기와 비교되는데, 도장무늬토기의 유행시기로 미루어 7세기경부터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병류등 새로운 기종이 유행하고, 장경병, 사각편병, 반구병 등 한종된 기종만 유입되었다. 8세기 이후부터 통일신라 후기 양식의 토기가 대대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하였다.
통일신라 토기
통일신라
제주시 월정리 용천동굴
2010년 발굴
성주 星主 · 왕자 王子 · 도내 徒內
성주 星主 · 왕자 王子 · 도내 徒內는 탐라 지배층의 명칭이다. 신라 전성기에 고을나 高乙那의 15대손 고후 高厚 · 고청 高淸 등 세 형제가 바다를 건너 신라에 조공하자 이들에게 작위를 주었다는 기록에서 유래한다. 특히 '성주 星主' 는 국왕을 지칭한 것으로 고려도 신라의 예에 따라 탐라국의 왕을 성주라고 불렀다. 성주와 왕자는 고려 숙종 10년 (1105) 탐라가 고려에 편입된 뒤에도 여전히 존재하였으며, 그 지위가 세습되며 조선 초까지 이어졌다.
고려사
조선 1451년
복제품
탐라의 토기,
곽지리식토기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조개무지 유적은 탐라 전기를 대표하는 유적입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입이 넓은 항아리 모양 토기를 '곽지리식토기' 라고 합니다. 삼양동식토기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굽에서 아가리로 갈수록 나팔 모양으로 벌어지는 모양이 특징입니다. 곽지리식토기는 2세기 무렵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점차 일정한 형태를 갖추어갔습니다. 곽지리 외에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예래동과 제주시 외도동 · 애월읍 하귀리 등에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같은 양식의 토기가 대형화되고 제주 전역에서 동일하게 사용되는 것은 탐라의 결속력이 강화되었으며 같은 문화권 안에서 성장해나갔음을 나타냅니다.
화순리유적 출토품
예래동유적 출토품
종달리 조개무지 출토품 (왼쪽)
동명리유적 출토품 (가운데)
용담동유적 출토품 (오른쪽)
하귀리유적 출토품
외도동유적 출토품
외도동유적 출토품
수산리유적 출토품
외도동유적 출토품
외도동유적 출토품
하귀리유적 출토품
곽지리 조개무지 출토품
곽지리 조개무지 출토품
곽지리 조개무지 출토품
곽지리 조개무지 출토품
곽지리 조개무지 출토품
금성리 조개무지 출토품
곽지리 조개무지 출토품
종달리 조개무지 출토품
고내리유적 출토품
고내리유적 출토품
고내리유적 출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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