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역사관] 01 니하오 ! 나의 살던 고향은 화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82년으로, 임오군란 때 한국에 파견된 군대를 따라 40여 명의 상인이 입국하였는데 이들이 한국화교의 시초이다. 그해 '상민수륙무역장정 (商民水陸貿易章程)' 을 체결하고 1884년 인천, 1887년 부산, 1889년 원산에 화상조계지 (華商租界地)가 설치됨에 따라 당시 화교 수는 인천에만 1,000명을 넘었다. 세계 어느 곳이든 화교들이 살고 있는 마을 앞에는 패루를 세웠다. 이것은 마을의 영역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마을 외부로부터 나쁜 것을 막아주는 벽사의 의미를 지녔다. 인천 차이나타운에도 중국 산동성에서 기와와 재료를 가져와 지었던 인천역 앞 제1패루 외에도 한중문화관 앞에 제2패루 (인화문),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