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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7 3

[기록에 나와 있는 고종 사망의 진실은]

[기록에 나와 있는 고종 사망의 진실은]    고종 초상화. 1919년 1월 21일 그의 죽음은 거국적인 독립운동을 촉발했다. / 국립고궁박물관    100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는 '고종 독살' 괴담   영친왕 결혼 나흘 앞둔1919년 1월 21일 급서 "독립불원서 서명 거부해친일파가 독살" 소문 독립불원서 자체가 괴담그런 문서는 없어숙직하며 지휘했다는이완용은 당시 일본 체류 사실과 칭작을 섞어서100년째 사실처럼 유포   105년 전 유인물 한 장 1919년 3월 1일 서울 시내에 유인물이 유포됐다. ‘국민회의’ 명의로 살포된 유인물에는 ‘이완용으로 하여금 윤덕영, 한상학이 궁녀들을 끌어들여 고종을 독이 든 식혜로 죽였다’ 고 적혀 있었다. 이완용과 김윤식, 윤택영, 조중응과 송병준, 신흥우가 파리..

[김 주석과 임시정부 실패한 國字 쿠데타]

[김 주석과 임시정부 실패한 國字 쿠데타]    일러스트 = 한상엽    김구의 정권 인수 시도는 왜 '1일 천하' 로 끝났나   27년 만에 귀향한임정 요인 30여명현실 정치 감 잃어 "국내는 다 친일파"美군정 찬탈 시도도스스로 입지 좁혀    1945년 11월 5일, 김구 주석과 임시정부 (임정) 요인 30여 명은 중국 장제스 정부가 보내준 군용기 편으로 충칭을 떠나 상하이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임정은 미 군정과 환국 조건을 합의하지 못해 한동안 발이 묶였다. 11월 19일, 결국 김구 주석은 중국 주둔 미군 사령관 웨드마이어 중장에게 편지를 썼다. “나와 충칭에 주재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들이 항공편으로 입국하는 것과 관련해 공인 자격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입국이 허락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

[第十八回 大韓民國 書藝文人畵 元老總聯合會展] 02

[第十八回 大韓民國 書藝文人畵 元老總聯合會展] 02       法軒 朴沂汀姜希孟 先生 詩 / 70 × 200㎝    앓고 난 뒤                          강희맹 (姜希孟) 1424 ~ 1483                       병여음성증최세원 (病餘吟成呈崔勢遠) ㅡ 병을 앓고 나서 최세원에게 지어주다.  南窓終日坐忘機                 남창종일좌망기                 종일 창가에 흐리멍텅 앉아있었더니            庭院無人鳥學飛 정원무인조학비 뜨락엔 사람 없고 새새끼 날개짓 배우네  細草暗香難覓處                 세초암향난면처                 여린풀 옅은 향기 찾기가 어려운데  淡烟殘照雨霏霏 담연잔조우비비 옅은 안개 노을에..

전시회 202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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