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등(누죽걸산 :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한성대입구역에서 낙원동까지] 01

드무2 2025. 1. 1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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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대입구역에서 낙원동까지] 01

 

 

 

한성대입구역 5번 출입구

 

 

 

역사문화마을 성북동

 

 

 

 

 

 

 

성북동의 유래

 

북한산의 주맥이 갈라져 형성된 넓고 깊숙한 골짜기에 들어앉은 성북동은 한양도성 성곽을 서쪽 울타리로 두른 아늑한 마을이다. 조선시대 영조 연간 혜화문 밖 선잠단 부근에 성북둔 城北屯이라는 군사 시설을 두면서부터 성북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북둔 北屯 · 북저동 北寺洞 · 북적동 北赤洞 · 묵사동 墨寺洞이라는 별칭으로도 전한다.

1765년 (영조 41) 도성 북쪽 성저 城底 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에 주목한 조선왕조는 이곳에 어영청의 둔진을 두기로 결정하고 이듬해인 1766년 (영조 42) 선잠단과 가까운 곳에 성북둔을 설치했다. 조정에서는 둔사와 창고를 지은 후 군역 軍役을 지는 장정과 그 가족 수십호를 모집해 살게 하였으나 농사로는 자생하기 어려우므로 포백훈조계 曝白燻造契를 조직해 생업을 보장해 주었다.

마전이라고도 하는 포백은 생포목을 삶아 볕에 쬐어 새하얗게 표백하는 공정으로 성북동 사람들은 마전한 포목을 도성 안 시전에 납품했다. 훈조란 메주 쑤는 일로서 해마다 정해진 양을 궁궐에 상납해서 일정한 대가를 받는 것이었다. 《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은 이러한 포백훈조계 사람들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해 놓은 문건으로 18 ~ 19세기 성북동 주민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성북초등학교 앞 교차로에는 마전터 표석이 있다.

 

 

 

 

 

 

옛 지도 속 성북동 (1892, 수선전도)

 

 

 

 

 

 

 

 

 

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 (城北洞 曝白燻造契完文節目)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2호, 가로 : 27.4㎝, 세로 : 44, 두께 : 1㎝, 유물사진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서울 한양도성 (사적)

 

한양도성은 조선의 도읍지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 (1396), 백악 (북악산) · 낙타 (낙산) · 목멱 (남산) · 인왕의 내사산 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도성의 안팎을 연결하기 위해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성북동에는 혜화문부터 숙정문까지 이어지는 한양도성 성곽이 남아 있어 구의 서쪽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성북동 별서 (명승)

 

조선 고종 때 내관이자 문인인 춘파 황윤명 (1844 ~ 1916)이 조성한 별서이다.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의 피난처가 되었고, 의친왕 이강이 별궁으로 사용한 역사적 가치도 잇다. 서울 지역에 드물게 남아있는 조선시대 정원으로서, 전통 정원 요소의 원형이 잘 남아있는 명승이다. 시냇물을 따라 앞뜰부터 안뜰과 바깥뜰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쌍류동천 雙流洞天, 용두가산 龍頭假山, 영벽지 影碧池가 잇어 자연과ㅏ 인공이 어우러진 경관을 보여준다.

 

 

 

 

만해 한용운 심우장 (사적)

 

독립지사이자 시인이며 승려였던 만해 한용운 (1879 ~ 1944)이 1933년부터 1944년 입적할 때까지 11년간 머물렀던 집이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도시형 한옥이다.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하여 일부러 북향으로 집을 지었다고 전한다. 심우 尋牛는 진리를 찾는 과정을 아이가 잃은 소를 찾는 과정에 비유한 심우도 (혹은 십우도)에서 따온 말이다. 마당에는 만해가 직접 심은 향나무가 있고 건물 안에는 선생의 글씨와 원고 등을 전시하고 있다.

 

 

 

 

간송미술관

 

간송 전형필 (1906 ~ 1962)이 지은 한국 최초의 시립미술관이다.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문화유산을 수집 · 보관하여 일본 등 해외로 유출될 위기에 놓인 우리 문화재들을 지켜냈다. 그는 이 문화재들을 보관하고자 건축가 박길룡에게 설계를 맡겨 1938년 건물을 완공하였다. 건물의 이름 '보화각 葆華閣' 은 위창 오세창이 지어준 것으로 아름다운 華 문화재를 지키는 葆 건물 閣이라는 뜻이다.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과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가구박물관

 

한국가구박물관은 조선후기에 제작된 한국 전통 목가구를 2,000여 점 소장하고 있으며 15여 년간 옮겨 지은 궁집, 사대부집, 곳간채와 부엌채 등의 한옥 10채로 이루어져 잇다. 한국가구박물관은 한옥 안에서 우리 가구의 쓰임새를 보여주며 자연과 어우러진 한국의 전통 주住 생활문화를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우리의 생활사 공간이다.

 

 

 

 

 

 

 

서울 선잠단지 (사적)

 

조선시대 잠업 [누에 농사]의 풍요를 지원하며, 잠신 蠶神인 서릉씨 西陵氏에게 선잠제향 先蠶祭享을 봉행하던 제단터이다. 제단은 조선 태종 연간 현재의 위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면 선잠제는 매년  음력 3월 길한 뱀날 巳日에 지내는 것이 원칙이었다. 한일합병 이후 맥이 끊긴 선잠제향을 1993년 성북동 주민들이 재현하여 매년 봄마다 봉향하고 있다. 성북구는 2017년 발굴 조사를 통해 옛 제단의 원형 일부를 확인했으며, 2018년 제단 옆에 성북선잠박물관을 건립, 개관했다.

 

 

 

 

성북동 이종석 별장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조선 말 부호이자 보인학교 이사장을 지낸 이종석 (1875 ~ 1952)이 1900년 경에 지은 별장이다. 사랑채 비슷한 별채인 안채와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에는 누마루가 있어 이곳이 여름 별장이었음을 알려준다. 『덕수교회 60년사』에는 이곳에서 이태준과 이상, 정지용 등이 회합을 가졌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현재 덕수교회에서 관리 중이다.

 

 

 

 

상허 이태준 가옥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소설가 상허 이태준 (1904 ~ ?)이 1933년부터 1946년 월북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1933년 이태준이 성북동으로 이사올 때 지은 집이며, 그는 이곳에서 「달밤」, 「손거부」, 「까마귀」, 「영월영감」 등 주옥같은 단편들을 썼다. '수연산방' 이란 댁호에는 벼루 硯의 수명 壽이 다할 때까지 글을 쓰겠다는 소설가의 의지가 담겨있다. 궁궐을 짓던 전통 목수들을 불러다 지은 집은 조선 살림집의 장점들을 잘 살린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지금은 전통찻집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순우 옛집 (국가등록문화재)

 

최순우 옛집 (혜곡 최순우 기념관)은 1930년대 초에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제4대 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인 혜곡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돌아가실 때까지 살던 집이다. 시민들의 후원과 기증으로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2002년 보존된 시민문화유산 1호이다. 선생의 유품, 친필원고 등을 전시하며, 시민참여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옛돌박물관

 

북악산과 한양도성으로 둘러싸인 우리옛돌박물관은 국내외에 흩어져 있던 석조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건립한 국내 최초의 석조전문박물관으로 옛 돌조각에 담긴 수복강녕과 길상을 향한 선인들의 염원을 느끼고, 소망을 기원하는 공간이다. 전시는 1층 환수유물관과 석등관, 2층 동자관, 벅수관, 자수관, 3층 근현대 회화를 전시한 기획전시관, 야외 무병장수의 길, 돌의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석조유물 1,250점과 자수 250점, 한국 근현대회화 100점을 함께 전시하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작품제목 : 선녀도 (仙女圖)

작품내용 : 삼선동 남쪽의 옥녀봉 봉우리에 하늘에서 내려온 세 선녀와 옥녀가 놀았다는 전설을 소재로 하여 경쾌한 실내분위기를 조성하고 정거장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작가 : 정연종>

 

 

 

 

 

 

혜화문

 

 

 

 

준 공 표 지 판

 

□ 공     사     명 : 혜화문 복원공사

□ 공  사  기  간 : 1992. 12. 29. ~ 1994. 10. 18.

□ 공  사  개  요 : 문루 복원 1동 50㎡ 성곽복원 108.5m

                           옹벽신설 82m 부대시설공사 1식

□ 공  사  금  액 : 29억원

□ 설     계     자 : 태창 건축사 사무소 박태수

□ 시     공     자 : 건축, 토목 ㅡ 거성건설 (주) 강현자

                           전기           ㅡ 경미건업 (주) 이영조

                           조경           ㅡ 삼전산업 윤강배

□ 공사발주기관 : 서울특별시 종합건설본부

□ 공 사 참 여 자 : 본부장 구돈회, 차장 김진배

구분 부장 과장 감독 현장대리인 검사자
건축 · 토목 전태수 김상호 박효철 황태균 강인호 · 김제경
전기 박주명 정보희 이재성 홍봉표 양사선 · 김기완
조경 송현섭 성도영 이창재 김종화 권혁길 · 김광희

□ 하자발생시 신고처 : 종로구청 문화공보실 (TEL. 731 ㅡ 0410)

□ 관     리     청 : 종로구청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 순성길은 서울의 내사산 (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고, 사대문 (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 터)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유산을 지나는 총 18.6㎞의 역사와 문화 체험의 길이다.

 

 

 

 

 

 

 

혜화문

 

시대 : 1396년 (태조 5)

 

한양도성의 동북쪽 문이다. 창건 당시에는 홍화문 (弘化門)으로 불렀으나 1511년 (중종 6)에 혜화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조 때에는 없던 문루를 지어 올렸다. 문루는 1928년에, 홍예는 1938년에 헐렸는데, 1994년에 본래보다 북쪽으로 옮긴 자리에 문루와 홍예를 새로 지었다.

 

 

 

 

 

 

 

 

 

 

 

 

 

 

 

 

 

 

 

 

 

 

 

 

 

 

 

혜화문 잡상들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 안내센터

 

센터운영시간 : 09 : 00 ~ 18 : 00

전시관 관람 : 09 : 30 ~ 17 : 3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기념행사 시 (사전공지)

관람료 ; 무료

해설예약 : 서울시 공공예약시스템 (http://yeyak.seoul.go.kr), 또는 현장방문 · 수시접수

정기해설 : 10 : 00, 14 : 00, 15 : 30

문의 : 120다산콜센터, 02) 766 ㅡ 8520 ~ 1

 

 

 

 

 

 

 

 

 

 

 

 

 

 

 

 

 

이 곳은 사적으로 지정된 한양도성 중 세종 연간 (~ 1422)에 축조된 구간입니다.

현재 풍화, 탈락 및 변형 등이 심하여 이번 문화재 수리를 통해 성벽의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여 도성을 보전하고자 합니다.

수리기간 동안 관계기관 및 전문가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공사기간 : 2021. 08. 13. ~ 2025. 04. 09. (예정)

■ 시행청 :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 시공자 : 원택건설 (주), 예은이엔지 (주)

■ 감리단 : (주) 경복영건

 

 

 

 

 

 

 

완성된 한양도성

 

완성된 한양도성은 나라의 안정과 왕의 권위를 온 백성에게 보여주는 상징물이며,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성은 외부와 연결하기 위해 모두 8개의 문을 설치하였다. 동서남북에 4개의 큰문이 있고 그 사이에는 4개의 작은 문이 있어 사람들의 통행로가 되었다. 사대문 四大門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유교의 덕목 (인 仁 · 의 義 · 예 禮 · 지 智)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도성에는 사람이 아닌 하천을 위한 문도 있었다. 흥인지문과 광희문 사이에 있었던 오간수문 五間水門과 이간수문 二間水門이다.

남산 정상의 성벽 부근에는 통신시설인 봉수대가 있었다.

횃불과 연기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신호들이 남산 봉수대를 거쳐 최종적으로 왕에게 보고되었다.

 

 

 

공사구간 현황 1

 

 

 

공사구간 현황 2

 

 

 

 

한양도성 안전진단 및 계측 시행 안내

 

한양도성은 600년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성벽 일부 구간에서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한 풍화, 배부름, 균열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안전과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성벽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안전진단 및 계측을 시행하고 있으니, 부착된 계측 기구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특별시 문화재관리과

 

 

 

와룡공원 부근 2

 

 

 

와룡공원 부근 1

 

 

 

범바위 인왕산 정상구간

 

 

 

사직동 성벽

 

 

 

혜화문 낙산 정상 구간

 

 

 

혜화문 낙산 정상 구간

 

 

 

 

 

 

 

한양도성은 조선 왕조의 수도인 한성부의 경계이자,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수도 성곽이다. 1394년 (태조 3년)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1396년 두 차례에 걸쳐 전국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여 쌓았다. 이후 15식 (세종 연간), 18세기 (숙종 연간), 19세기 (순조 연간)에 걸쳐 여러 차례 대규모로 수리 및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다. 특히 세종 연간에는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쌓으면서 18.6㎞의 전 구간이 석성으로 완성되었다. 한양도성은 조선 왕조 전 시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성벽을 고쳐 쌓았기 때문에 다양한 축조 방식과 성돌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남산 자락의 한양도성은 1925년 조선 신궁이 세워지면서 상당 부분 허물어졌는데, 2013 ~ 2014년 발굴 조사를 통해 1 ~ 4m 깊이의 땅속에 묻혀 있던 기단석부터 1 ~ 5단의 성벽이 드러났다. 조사 결과, 원래 한양도성의 성벽 높이는 6m로 추정되고 잇다. 이 구간에서 발굴된 성돌은 그 높이와 크기, 모양이 매우 불규칙하고 다양하게 남아 있어 한양도성이 조선 왕조 전 시기에 걸쳐 계속해서 고치거나 새로 쌓아 올린 흔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태조 연간 (14세기)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성돌로 사용하였다.

 

 

 

세종 연간 (15세기)

돌을 납작하고 둥근 모양으로 다듬어 성돌로 사용하였다.

 

 

 

숙종 연간 (18세기)

성돌의 크기를 가로, 세로 40 ~ 45㎝ 내외의 네모난 방형으로 규격화하였다.

 

 

 

순조 연간 (19세기)

가로, 세로 60㎝ 가량의 네모 반듯한 정방형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사용하였다.

 

 

 

 

 

 

 

 

 

 

 

 

천주교한국외방선교회 (KOREAN MISSIONARY SOCIETY)

 

 

 

 

 

 

 

 

 

경신중고등학교

 

 

 

 

 

 

 

 

 

 

 

 

 

 

 

 

 

 

 

 

 

 

 

 

 

 

 

원조 오박사 왕 돈가스 본점

 

 

 

서울科學高等學校

 

 

 

 

 

 

 

서울 한양도성

 

시대 : 1396년 (태조 5)

 

한양도성은 조선 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396년 (태조 5)에 백악 (북악산) · 낙타 (낙산) · 목멱 (남산) · 인왕의 내사산 (內四山) 능선을 따라 쌓은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 평균 높이 약 5 ~ 8m, 전체 길이 약 18.6㎞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 (1396 ~ 1910, 514년) 그 역할을 했던 건축물이다.

한양도성의 성벽에는 낡거나 부서진 것을 고친 역사가 남아 있으며, 성벽 돌에 새겨진 글자들과 시기별로 다른 돌의 모양을 통해 축성 시기와 축성 기술의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 (흥인지문 · 돈의문 · 숭례문 · 숙정문)과 사소문 (혜화문 · 소의문 · 광희문 · 창의문)을 두었는데,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현재까지 한양도성 전체 구간이 정비되어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 순성길은 서울의 내사산 (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고, 사대문 (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 터)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유산을 지나는 총 18.6㎞의 역사와 문화 체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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