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태극기 함께 해온 나날들] 03

드무2 2025. 9. 1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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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함께 해온 나날들]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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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돌아오시니

 

 

 

 

 

 

 

독립의 희망을 품고

 

1910년 나라를 빼앗기고, 태극기 사용은 금지되었습니다. 제자리를 잃어버린 태극기는 다시 돌아올 광복의 그날을 기다리며 사찰 전각 어딘가에, 독립을 염원하는 누군가의 집에 꼭꼭 숨겨졌습니다. 1919년 3 · 1 운동 당시, 우리는 품속에 숨겨두었던 불씨와 함께 태극기를 가지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목판에 태극기를 새기고, 독립을 향한 목소리를 종이에 담아냈습니다. 어둡고 고단한 시간을 지나 광복의 그날을 맞이하기까지 태극기는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었습니다.

 

 

 

 

 

 

 

 

 

 

『민주생활 Ⅰ』

 

동덕여자의숙 교정에 게양되었던 태극기가 국권 상실 이후 일제의 눈을 피해 몰래 보관되어 온 이야기가 교과서에 실렸다.

 

1969

 

 

 

 

 

 

 

 

 

 

장독대에 숨겨 지켜낸

동덕여자의숙 태극기

 

1908년 동덕여자의숙 개교 당시부터 교정에 게양되었던 태극기입니다. 3 · 1 운동 직후 일제의 가택수색을 피하기 위해 상자에 담아 장롱과 장독대 밑에 숨겨서 지켜온 태극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일화는 1970년대 교과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힘겹게 지켜낸 이 태극기는 광복 후에야 다시 학교에 걸릴 수 있었습니다.

 

 

 

 

 

 

 

 

 

 

 

 

 

동덕여대의숙 태극기

 

1908 | 동덕여자대학교 박물관 | 국가등록문화유산                                                       복제 | Repl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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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만의 발견, 진관사 태극기 | 2014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진흥원, 국가유산채널

 

 

 

 

 

 

 

대를 이은 광복의 꿈

광제호 태극기

 

대한제국의 근대식 군함 광제호에 게양되었던 태극기입니다. 1904년 만들어진 광제호는 서해안 경비와 세관 감시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을사늑약으로 인해 사실상 대한제국 해군 군함으로 역할을 하기 어려웠지만 1910년까지도 광제호에는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경술국치 (1910년 8월 29일)를 하루 앞둔 날, 우리나라 근대식 군함 양무호의 함장이자 광제호에도 승선했던 신순성은 대한의 군함으로 임무를 다한 광제호의 태극기를 내려 남몰래 보관해 왔고, 독립의 그날을 기다리며 대를 이어 지켜왔습니다.

 

 

 

 

 

 

 

 

 

 

광제호 태극기

 

1904 | 개인 소장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의 당부로 태극기를 1년에 한 번씩 햇빛에 말리시며 소중하게 보존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35년 가까이 일제의 눈을 피해 마음을 졸이며 태극기를 펼치셨던 할머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신순성 함장의 손자 신용석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항일 독립의지

 

 

 

 

 

 

 

진관사 태극기

 

3 · 1 운동 전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진관사의 태극기입니다. 불단 깊숙이 숨어 90년을 버텨낸 이 태극기는 2009년 진관사 칠성각을 해체 · 복원하는 가운데 발견되었습니다.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당시의 신문 등을 통해 태극기의 제작시기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일장기에 청색을 덧칠한 태극 무늬에서는 독립을 향한 강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이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알려진 백초월 스님은 3 · 1 운동 당시 불교계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분으로 군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군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조선독립신문 | 1919 (왼쪽)

태극기 발견 당시 모습 (오른쪽)

 

 

 

 

 

 

 

 

 

 

 

 

 

진관사 태극기

 

1919 | 진관사                                                                                  복제 | Replica

 

 

 

 

 

 

 

 

 

 

 

 

 

백양사 태극기

 

대형 불화 (괘불) 보관함 깊숙한 곳에 있던 태극기가 1996년 백양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백양사는 일제강점기 항일민족교육을 이어 나갔던 만암스님이 주지 스님으로 있었던 사찰입니다. 만암 스님은 민족정신을 함양했던 '광성의숙' 을 설립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태극기가 보관된 괘불의 제작시기 등으로 미루어볼 때 이 태극기는 일제강점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해 사찰에 숨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대형 불화 보관함

 

 

 

 

 

 

 

백양사 태극기

 

1910년대 | 백양사 성조박물관

 

 

 

 

 

 

 

 

 

 

 

백양사 광성의숙에서 사용한 교재

 

만암 스님과 함께 백양사에서 활동한 문학 스님이 백양사 광성의숙 교재 『중등조선역사』와 『조선불교사고』이다.

 

1938 | 백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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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

 

독립운동가 손병희

 

 

 

 

 

 

 

태극기 목판

 

태극기를 찍어내기 위해 태극 문양과 4괘를 양각한 목재판이다. 3 · 1 운동 당시 대량의 태극기를 찍어내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태극기의 형태와 제작기법을 추정할 수 있다.

 

1919 | 독립기념관 | 국가등록문화유산                                                                                                                  복제 | Replica

 

 

 

 

 

 

 

 

 

 

상해 독립신문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

 

3 · 1 절을 기념하여 상해 독립신문사에서 제작한 기미독립선언서이다. 『독립신문 상해판』의 부록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상단에 태극기와 '독립만세' 가 함께 인쇄되어 있다.

 

192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3 · 1절 2주년 기념식

 

1921. 3. 1. | 국사편찬위원회

 

 

 

 

 

 

 

 

 

 

 

 

 

독립선언서를 게재한 『독립신문 상해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 역할을 한 『독립신문 상해판』의 3 · 1절 기념 특집호이다.

 

① 1920. 3. 1. | 국가등록문화유산

② 1922. 3. 1. | 국가등록문화유산

 

 

 

 

 

 

 

 

 

 

기미년도 일기

 

충남 아산지역에도 서울에서 시작된 3 · 1운동의 열기가 전파되었다. 아산은 3월 11일부터 4월 4일까지 만세운동 시위가 이어졌다. 태극기가 그려진 일기에는 3월 31일 저녁 9시 30분에 사람들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시위 과정에서 부상자와 체포된 사람이 있었고 일기의 작성자도 다쳤다고 적혀 있다.

 

1919

 

 

 

 

인쇄 동판

 

 

 

 

 

 

 

 

 

 

캘리포니아 다뉴바 한인들의 독립선언 제2주년 행사

 

1920 | 독립기념관

 

 

 

 

 

 

 

태극기 옆에 선 안창호

 

1925 | 독립기념관

 

 

 

 

 

 

 

 

 

 

안창호에게 보낸 3 · 1 운동 소식 전보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해 상하이 지역에 배포한 현순이 미국의 안창호에게 보낸 전보이다. 3월 1일 오후 1시에 서울과 평양, 기타 도시에서 한국 독립을 선언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이 전보는 3 · 1 운동을 미주 지역에 알린 최초의 문서이다.

 

1919. 3. 9. | 독립기념관                                                                                                                                       복제 | Replica

 

 

 

 

 

 

 

한국친우회 시카고 지회에서 보낸 편지

 

한국친우회 시카고 지회장 미네르바 구타펠 (M. L. Guthapfel)이 대한인국민회에 보낸 편지이다. 3 · 1 운동 기념식을 축하하며 한국의 독립을 염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친우회는 일제의 한국 지배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리고 미국에서 한국 독립을 호소하는데 앞장선 단체이다.

 

1920. 2. 24. | 독립기념관                                                                                                                                     복제 | Replica

 

 

 

 

 

 

 

대한인국민회에서 사용한 독립선언서와 인쇄 동판

 

1919년 3 · 1 운동 당시 미주지역에 배포하기 위해 동판을 제작하였다. "본문 대로 등사하기 위하여 국한문으로 옮겨 씀 중앙총회" 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 독립기념관

 

 

 

 

그대들 돌아오시니

재외혁명동지에게

 

정지용                                            

 

 

···

 

옛 자리로 새소리 흘리어라.

어제 하늘이 아니어니

새론 해가 오르라.

 

···

 

그대 어이 꽃을 밟으시리

가시덤불, 눈물로 혜치시라.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ㅡ 『해방기념시집』중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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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앙청사 태극기 게양식 | 1946 | KBS

 

 

 

 

 

 

 

 

 

 

 

 

 

 

 

 

 

 

 

광주학생항일운동 파급 학교 분포도

 

정명여학교는 1919년 3 · 1 운동과 1921년 만세운동에 이어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에도 참여했다. 이때에도 학생들은 구속된 조선인 학생의 석방을 주장하기 위한 태극기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으나 미리 정보를 입수한 경찰에 의해 실패했다.

 

1930

 

 

 

 

 

 

 

목포 정명여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 관련 공판기사 | 『매일신보』| 1921

 

 

 

 

목포 정명여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 관련 공판기사

 

1921년 11월 만세운동을 주도한 정명여학교 학생들의 공판 관련 내용을 보도한 매일신보이다.

 

1921                                                                                                             복제 | Replica

 

 

 

 

11월 13일 오후, 12명의 학생이 기숙사에 모여 태극기를 만들었다.

 

 

 

 

교내의 대나무를 잘라 깃대를 만들고 종이를 모아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교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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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2월 23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피고인 곽희주, 문복금, 김연순, 박복술을 각 징역 10월

그 외의 사람들은 각 징역 6월에 처한다.

 

피고 등의 각 공소는 이를 기각한다.

당심에서 미결구류일수 50일을 각 본 형에 산입한다.

 

워싱턴 회의 개최

아시아 · 태평양 지역의 현안 논의

 

소식을 들은 정명여학교 학생들은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1월 13일 오후, 12명의 학생이 기숙사에 모여 태극기를 만들었다.

교내의 대나무를 잘라 깃대를 만들고 종이를 모아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교문을 나섰다.

목포 시내까지 독립만세 외치며 행진하니 학생들을 뒤따르는 만세 행렬은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일본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고 학생들이 체포되면서 태극기는 빼앗겼다.

 

"압수된 태극기 23개는 모두 몰수한다."

"태극기는 빼앗겼지만, 정명여학교 학생들의 항일정신은 이어졌다.

"조선은 당당하게 독립국이 된다고 말했다."

ㅡ 정명여학교 학생 이남순

 

 

 

 

 

 

 

목포 정명여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에 대한 일제의 판결문

 

1921년 목포 정명여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제작하여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학생들이 체포되었고, 당시 판결문에는 학생들이 만든 태극기와 관련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922 | 국가기록원                                                                                                                                                복제 | Replica

 

 

 

 

 

 

 

 

 

 

정명여학교 학생 김귀남의 표창장과 졸업앨범

 

정명여학교 만세운동에 참여한 김귀남은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에는 서울에서 학업을 이어 나갔다. 광복을 맞아 목포시로부터 독립유공 표창을 받았으며, 1995년에는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① 표창장 | 1949 | 목포 정명여자고등학교

② 졸업앨범 | 일제강점기 | 목포 정명여자고등학교

 

 

 

 

김귀남

 

 

 

 

 

 

 

정명여학교 보통과 제9회 졸업생들

 

1920 | 목포 정명여자고등학교

 

 

 

 

 

 

 

 

 

 

목포 정명여학교에서 발견된 독립운동 자료

 

독립선언서, 독립가, 격문 등 3 · 1 운동 당시 목포에서 사용된 독립운동자료이다. 1983년 교내 선교사 사택을 수리하던 중 발견되었다.

 

1919 | 독립기념관                                                                                                                                                복제 | Repl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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