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25 종군기자 Jack James] 02




National Headliner Award
1951
1950년 잭 제임스가 UP통신을 통해 최초로 보도하였던 6 · 25 전쟁 발발 기사에 대한 National Headliner Award의 메달입니다.







National Headliner Award 수상모임 사진 및 공식 통지문
1951
잭 제임스가 수상하였던 National Headliner Award의 내역이 기록된 연보 서적입니다.
National Headliner Award는 1934년 아틀란틱 시티 언론클럽 (Press Club of Atlantic City)의 후원으로 시작되었으며, 1935년 National Headliners Club이 발족된 이후 언론 관련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보여준 개인, 신문, 라디오, 방송국, 잡지, 사진가 등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명예로운 행사로 자리잡았습니다.
잭 제임스는 United Press 소속의 기자로 6 · 25 전쟁의 발발 등 중요한 보도를 통해 1951년 이 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잭 제임스의 6 · 25 전쟁 최초보도 전문
북한이 일요일 새벽 남한과의 경계선인 38선에서 전면 공격을 개시했다고 38선 지역에서 단편적인 보고가 전해졌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북한군이 한반도의 남북을 분단하는 경계선인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 남침했습니다. 서울 동북방 50마일 지점인 춘천지역에서 공격에 투입된 적 전차대가 출현했습니다.
초기 보고에는 북한군 병력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서울 서북방 40마일 지역인 개성시 (한국군 1사단 사령부 소재)가 함락되었으며, 웅진 남쪽 2 ~ 3마일 지역에서 적의 부대가 발견되었습니다. 북한군은 강릉 이남의 동부 해안 지역에서 단정 20척으로 상륙을 감행하여 해안도로를 차단하였습니다.
38선 접경지역은 남북 간에 잦은 게릴라식 충돌이 벌어지던 지역입니다. 일본의 항복 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이 군사적 편의를 위해 북위 38도 위선을 기준으로 경계선을 설정했습니다. 미군과 소련군은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나누어 점령했습니다. 1946년 5월 한반도의 완전한 자유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으나 미국과 소련의 입장 차이로 인해 결렬되었고, 그 이후 남북한을 완전히 분리하는 경계선이 되었습니다.
남한 국회에서는 미군이 남한에 계속 주둔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미국에서 오마 브래들리 장군 (Gen. Omar N. Bradley)은 현재 남한에 주둔 중인 미군은 200 ~ 300명 규모의 병력뿐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북한의 공격시 미국이 남한 정부를 방어할 의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습니다.
'북한군, 남한 침략', 잭 제임스 기자 (UP 통신), 1950년 6월 25일


잭 제임스의 한국 활동
1954년 잭 제임스는 아시아재단 서울사무소에 합류한 이후 27년간 아시아 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습니다. 아시아재단은 1954년 창립된 미국의 대표적인 아시아 관련 단체로, 1951년 설립된 자유아시아위원회 (CFA, Committee for Free Asia)의 후신입니다.
잭 제임스는 아시아재단 한국 대표로 활동하며 지식인들의 국제학회 참여지원, 한국연구도서관 (KRC)의 설립과 국립중앙박물관 운영에 대한 물적지원, 한국연구총서 사업 등 학술도서 출판 지원 등을 주도하였습니다.
아시아재단 활동 외에도 캔자스 주립대학 연설 및 미 국제문제협의회 강연 등 많은 외부활동에 총청받아 한국에서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으로 그는 6 · 25 전쟁 기념행사에도 지속적으로 참석하였으며, 그의 생전 마지막 한국여행은 2000년 6월 열린 6 · 25 전쟁 50주년 기념행사였습니다.



잭 제임스의 서류가방
1950년대
잭 제임스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아시아재단 활동에서 사용하였던 가죽 서류가방입니다.




잭 제임스의 연설문 "공산주의자에게 듣는 방법" 원본
잭 제임스의 미 국제문제협의회 연설문 원본
1950년대
잭 제임스가 6 · 25 전쟁 종군기자로서의 활동과 경험을 토대로 작성한 연설문입니다.
그는 전쟁 이후, 미 국제문제협의회를 포함하여 대학 등 각종 학술행사에서 많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잭 제임스 사진과 등사기로 복사한 속보
1950
잭 제임스의 증명사진과 함께 뒷면에는 ACME 뉴욕사무소 행의 속보 복사본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속보 내용은 그가 수원에서 1950년 7월 2일 북한 및 러시아 비행기의 포격에 의해 발에 부상을 입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전상훈장과 상징
1951. 03. 15.
잭 제임스가 종군기자로 활동하던 1950년 7월 2일, 한국 수원에서 적군의 포격으로 부상을 입었던 바, 그의 용기를 기리는 의미에서 1951년 3월 15일 수여된 전상훈장 (Purple Heart)과 상장입니다.


유엔군 사령부 휴전 협정 기념 문진
1952
잭 제임스가 소장하였던 유엔군 사령부의 1952년 군사 휴전 협정을 기념하는 문진으로, 제작자는 해군 소장 Charles F. Horne Ⅲ였습니다.



UN 판문점 문진
1950년대
잭 제임스가 소장하였던 남한과 북한의 접선 장고 '판문점' 을 기념하는 문진으로 1958년에서 1960년 사이에 UN 사령부의 이름으로 제작되었습니다.





1991년 6 · 25 전쟁 기념 주화
1991
잭 제임스가 소장하였던 6 · 25 전쟁 기념주화로, 미국의 은제 달러로 1991년에 제작되었습니다.



한국 여행 여권
2000
잭 제임스가 2000년 6월 22일부터 28일까지 6 · 25 전쟁 50주년 기념여행을 위해 사용하였던 여권으로, 그의 생애 마지막 여권이었습니다.


잭 제임스 자료 기증 인터뷰 ㅡ 데이비드 제임스

전시 참여진
총 괄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전시총괄 이용석 자료관리과장
전시기획 김성준, 박주영
전시진행 변진경, 황성식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강임산, 김근영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미국사무소)
전시연출 (주)에코미고
홍 보 물 (주)스튜디오 페이지
번 역 (주)라이온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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