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태극기 함께 해온 나날들] 01

드무2 2025. 9. 1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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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함께 해온 나날들] 01

 

 

 

 

 

광복 80 특별전

 

태극기 함께 해온 나날들

 

2025. 8. 8. ㅡ 2025. 11. 16.

 

3층 전시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시간을 함께해 온 태극기

Our Shared Journey with the Taegeukgi

 

 

 

 

전시를 열며

 

태극기가 국기로 지정된 이래 1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태극기에는 그동안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역사와 그 시간을 살아낸 이들의 감정이 서서히 스며들었습니다. 그렇게 태극기는 우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가 함께 걸어온 여정을 되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잇었던 태극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나라를 잃고 독립을 외치던 거리에서, 전장의 참호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광장에서, 평범한 일상과 도전의 순간 속에서 우리는 태극기와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태극기는 우리 마음 깊은 곳의 염원과 기억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태극기와 함께했던 환희와 슬픔, 고통과 극복, 도전과 재도약의 순간들을 조명합니다. 태극기는 단순한 국가상징을 넘어,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정서적 매개체로서 그 안에는 공동의 기억과 감정이 녹아있습니다. 태극기와 함께 했던 연대와 믿음은 지금 우리가 다시 만들어 갈 미래의 자산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 전시가 태극기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광복 80년을 넘어 앞으로의 미래를 함께 모색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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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길 만길 깊은 바다 밑에

긴 밤을 어둠 속에 몸부림 치며

큰 열을 가슴 속에 쌓고 달우었거니

 

집집마다 추녀 끝에 태극기가 나부낀다

거리마다 지축을 울리는 함성ㅡ

오늘 이땅 산천은 크게 웃었다.

 

진흙 발 밑에서도 진리는 빛나고

정의는 무덤 속에서도

그 향기 하늘을 꾀뚫는다거니

···

아 어디서 오는 천연한 저 빛이뇨

어둠 속에서 피어난 꽃숭이다

 

『해방기념시집』 중 김달진의 '아침'

 

 

 

 

 

 

 

『해방기념시집』

 

광복 직후 한국의 대표적인 문인 24명이 참여하여 해방의 감격과 미래의 희망을 시집에 담았다. 정인보, 홍명희, 안재홍 당대 좌우 문인의 시를 한데 담아 이념의 벽을 넘어 광복의 기쁨을 표현했다.

 

1945. 12. 12.

 

 

 

 

 

 

 

1

붉고 푸른 깃발

높이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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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상징으로

 

1883년 조선은 태극기를 공식 국기로 선포하였습니다. 근대국가로 나아가고자 했던 조선은 19세기 각국과 통상조약을 맺을 당시, 태극기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태극기는 국가 행사, 집회, 출판물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한국인을 상징하는 표식으로 자리 잡아갔습니다. 태극기는 1949년 '국기 제작법 고시' 로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기까지 그 모양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시대마다 태극의 모양과 방향, 건곤감리의 위치가 매우 다양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태극기의 모양은 계속 변해왔지만 한국인에게 태극기는 언제나 "귀하고 귀한 우리의 태극기" 였습니다.

 

 

 

 

 

 

 

 

 

 

『독립신문 상해판』에 게재된 시 「태극기」

 

태극기를 주제로 한 3연 45행의 시가 신문에 실렸다. 태극기를 다시 만난 감격, 태극기가 가진 자유와 평등의 의미, 태극기를 지키자는 마음을 담은 시이다.

 

1919. 11. 27. | 국가등록문화유산

 

 

 

 

 

 

 

우리 태극기를

오늘 다시 보았네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리네

이천만 동포야

만세를 불러라

다시 산 태극기를 위해

만세 만세

다시 산 대한국

 

붉은 빛 푸른 빛

둥글게 엉켜

태극기를 이루었네

피와 힘 자유 평등

엉켜 이루었네

우리 태극일세

 

하나가 되어라

태극기 지켜라

귀하고 귀한 국기

온 세계 백성이

다 모여 들어도

우리의 태극기

건드리지 못하리

 

 

 

 

 

 

 

 

 

 

『동래감리각면서보고서』

東萊監理各面署報告書

 

대한제국 시기 민간에는 태극기가 보급되어 있었다. 당시 국가기념일이나 주요 행사에서 태극기를 사용하였다. 동래부의 군과 면에서 개항장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관청인 동래감리서로 보낸 보고서에 태극기 보급 내용이 담겨 있다.

 

1905 |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복제 | Replica

 

 

 

 

 

 

 

대한제국 여권

 

태극기는 대한제국의 상징으로서 여권의 도안으로도 사용되었다. 여권 좌측에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여행과 통상, 통행에 있어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허락을 요청하며 필요한 보호와 자원을 제공해 주기를 바란다' 고 쓰여 있다.

 

1905. 4. 21.

 

 

 

 

 

 

 

 

 

 

 

 

 

『해양 국가들의 깃발』

 

미국 해군성 항해국이 발행한 도서에 태극기가 실려 있다. 전 세계 49개국의 국기와 항해 깃발 도안 속 태극기는 조미수호통상조약 (1882) 당시, 양국이 교환한 국기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1899년판 도서에 실린 태극기는 태극 모양과 괘의 배치가 다르다. 태극기 도식이 통일되어 있지 않았던 초기 태극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882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

 

개한제국은 애국심을 고취하고 근대국가의 위상에 맞게 애국가를 제정하였다. 애국가 악보의 표지에는 국가를 상징하는 태극문양과 무궁화 도안이 함께 그려져 있다.

 

1902 | 국가등록문화유산

 

 

 

 

 

 

 

『독립신문』 초판본 | 1896. 4. 7. | 연세대학교 도서관

 

 

 

 

『독립신문』 | 1896. 5. 2. | 연세대학교 도서관

 

 

 

 

『독립신문』 제중원의 금계랍 광고 | 1893. 3. 3. | 연세대학교 도서관

 

 

 

 

 

 

 

제호에 태극기가 그려진 『독립신문』

 

1896년 5월 2일 자 발간 신문부터 '독립신문' 으로 표기가 바뀌고 그전에는 없던 태극기가 제호의 가운데 배치되었다. 1896년 4월 7일 창간 당시에는 '독닙신문' 이라는 제호만 있었다.

 

1898

 

 

 

 

 

 

 

 

 

 

 

 

 

독립문과 기공식 사진

 

대한제국이 완전한 자주 독립국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한글로 '독립문' 글자를 새겼을 뿐만 아니라 양쪽에 태극기를 넣어 대한제국의 자주 의지를 드러내고자 했다.

 

① 광복 이후

② 1896 | 독립기념관

 

 

 

 

 

 

 

 

 

 

 

 

 

 

 

 

 

 

 

진찬의 책임을 맡은 당상 3인과

실무를 맡은 낭청 4인의 관직과 성명

 

 

 

 

 

 

 

황태자가 주최한 연회인 황태자회작

 

 

 

 

 

 

 

 

 

 

태극기가 그려진 신축진찬도 병풍

 

태극기는 대한제국의 국가 상징물로서 공식행사에서 사용되었다. 효정성황후 (1831 ~ 1903)의 71세를 기념한 궁중 행사 모습을 담은 '진찬도' 에는 태극기가 등장한다.

 

1901 | 국립고궁박물관

 

 

 

 

 

 

 

 

 

 

 

 

 

 

 

 

경운궁 중화전에서 열린

고종 황제의 50세와 효정성황후의

71세를 경축하는 진하례

 

 

 

 

 

 

 

효정성황후가 주빈인 연회장면으로

황제와 황태자, 내외명부 등이

참석한 내진찬

 

 

 

 

 

 

 

늦은 밤에 열린 연회 장면인 야진찬

 

 

 

 

 

 

 

고종 황제가 내외명부와 행사를 준비한

진찬소 관원에게 베푼 대전회작

 

 

 

 

 

 

 

태극기 압수 사건을 보도한 『독립신문 상해판』

 

1920년 4월 18일 충남 강경에서 발생한 '태극기 압수 사건' 을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큰길가에 태극기와 함께 '대한 임시정부 설립 기념 축하식 거행' 이라는 문구를 내걸자 일본 경찰이 태극기를 압수했다. 당시 일제는 태극기를 '구한국기' 로 부르며 원래의 이름인 태극기를 사용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1920. 5. 15. | 국가등록문화유산

 

 

 

 

큰길 위 태극기

 

4월 18일 강경에서 사거리에 태극기를 세우고

그 아래에 「대한임시정부설립기념축하식거행」이라 쓴 것을

적경 (일본 경찰)이 발견하고 압수했다.

 

 

 

 

 

 

 

파리 만국박람회,

초청부터 참가까지

 

대한제국은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1898년 준비위원회를 조직했고, 대한제국관 건설을 지원할 파리위원회의 구성도 완료하였다. 대한제국관 건설을 주도한 후원자 글레옹 남작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위기를 맞이했으나 대한제국은 건설을 계속 추진하면서 마침내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 할 수 있었다.

 

 

 

1896. 1. 7.   프랑스, 만국박람회에 조선 공식 초청

1896. 5. 23. 글레옹 남작, 대한제국관 설치운영자 임명

1898.           8월 대한제국 만국박람회 참여 준비 위원회 명단 확정

 

 

대한제국 참가 준비위원회 명단


민병석 정2품, 의정부 의원, 총재대원
민영찬 종2품, 법부 협판, 부총재대원
고영근 종2품, 중추원 의관
윤덕영 정3품 봉상사 부제조
이인영 정3품, 군부 외국과장
이근배 정3품, 중추원 의관
정영두 6품 관원

 

파리위원회 명단

위원장 샤를르 루리나 Charles Roulina,
           파리주재 한국 총영사
위원 멘느 박사 E. E. Méne
        모리스 꾸랑 Maurice Courant
        비달 M. Alévêque
총무대원 드로 드 글레옹 남작 Delort de Gléon
              트레물네 M. Trémoulet
총서기 레옹 보 Léon Beaup

 

 

 

 

 

 

1899. 6. 1. 대한제국관 도면 승인

1899. 11월 글레옹 남작 사망

           대한제국 대한제국관 공사를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프랑스 측에 전달

 

 

 

 

1900. 1. 5. 초기 대한제국관 건물 철거 결정

          1. 12. 미므렐 백작 한국지부 총무대원 임명

          1. 29. 대한제국관 새로운 부지 결정

          2. 28. 민영찬 명예위원장, 파리 도착

          4월 파리 만국박람회 개최

 

 

 

 

미므렐 백작

 

 

 

 

민영찬 명예위원장

 

 

 

 

파리 만국박람회 대한제국관 최종안

 

 

 

 

 

 

 

파리 만국박람회 관련 광고가 게재된 독립신문

1899. 6. 3. | 연세대학교 도서관

 

 

 

 

 

 

 

 

 

 

 

 

 

 

 

 

 

 

 

 

 

 

 

 

 

샤를 알레베크의 사진엽서

 

프랑스인 샤를 알레베크는 파리 만국박람회 참가에 있어서 대한제국 정부를 대리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찍은 사진으로 프랑스에서 엽서를 제작하여 만국박람회에서 기념품으로 판매하였다.

 

대한제국

 

 

 

 

 

 

 

 

 

 

 

 

 

대한제국 훈2등 태극장 세트

 

대한제국은 큰 공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되는 훈장에 국가 상징인 '태극문양' 을 넣었다. 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랑시 (Victor Collin de Plancy) 또한 한불수교의 공으로 훈2등 태극장을 받았으며, 1902년에는 파리 만국박람회 개최에 공을 세워서 훈1등 태극장을 받았다.

 

대한제국

 

 

 

 

 

 

 

 

 

 

국기시정위원회의 참석 요청 문서

 

정부 수립 이후 '국기시정위원회' 는 태극기의 도안과 규격을 표준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문서는 독립문에 새겨진 태극기의 형태를 공식 태극기 도안으로 추진하는 회의에 참석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후 국기시정위원회는 12월까지 다섯 가지 태극기 도안을 두고 토론한 끝에 '우리국기보양회' 에서 제출한 현재 태극기 안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1949. 3. 14.

 

 

 

 

 

 

 

『태극기의 원리』

 

광복이 되자 태극기의 역사와 다양한 형태를 담은 도서가 발행되었다.

 

1945. 12.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

 

1948년 8월 15일 열린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에서는 중앙청 건물 정면에 대형태극기를 걸어 국가의 정통성을 보여주었다.

 

1948. 8. 15.

 

 

 

 

 

 

 

 

 

 

 

 

 

태극기 설명 포스터

 

태극기의 역사와 상징, 도안 원리 등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제작된 공식 교육자료이다. 포스터는 정부수립 이후 학교와 관공서 등에 보급되었다.

 

① 1957

② 1967

 

 

 

 

 

 

 

 

 

 

 

 

 

 

 

 

최초의 통일된 국기 양식 제정 문서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태극기 제작양식 표준안을 마련하였다.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던 태극기의 도안, 색상, 비율 등을 통일하였으나 널리 전파되지는 못하였다. 오늘날 사용하는 태극기 양식은 1949년 대한민국 정부가 「국기제작법고시」 를 통해 확정한 것이다.

 

① 별지 제11호 ㅡ 일정케 한 국기 양식 | 1942 | 국회도서관 국회기록보존소

② 대한민국임시정부 공보 | 1942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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