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

일러스트 = 이진영
나무늘보
얼마나 무겁고 큰 것을 짊어지고 가기에
저토록 느리게 기어오르는 걸까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으니
가늠조차 할 수 없으니
그건 고뇌일 거다
그래, 지상의 고뇌란 고뇌는 모두 끌어모아
등 위에 짊어지고
나무 꼭대기에 올려놓으려 하는 거다
다시는 지상의 그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못하도록
아예 큰 구름 위에
붙들어 매어 두기 위해 기어오르는 거다
ㅡ 함명춘 (1966 ~)
열대 우림 지역에 산다는 나무늘보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나무에 매달려서 열매와 나뭇잎을 따 먹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은 몇 차례 있다. 동작이 몹시 느릿느릿했고, 털이 길었고, 특히 갈고리발톱이 눈에 띄었다.
시인은 나무늘보가 너무나도 더디게 움직이는 이유는 그 등에 산 (山)처럼 큰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말한다. 마치 풀을 베서 지게에 한가득 풀짐을 지고 집으로 돌아오시던 유월의 아버지처럼 무언가 무거운 것을 등에 짊어졌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크고 무거운, 세상의 모든 고뇌임이 분명하다고 바라본다. 온갖 고뇌를 지고서 더 위쪽으로 올라가서 나무 꼭대기에, 구름 위에 올려놓고 풀어지지 않게 단단히 묶어놓음으로써 그 고뇌가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마치 고통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려는 거룩한 성자처럼.
이러한 마음의 사용은 함명춘 시인이 한 산문에서 “담고 놓고 채우기 위한 시가 아니라 꺼내고 버리고 비우기 위한 시를 쓰겠다” 고 밝힌 대목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하겠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6월 9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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