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원로 조각가 최종태 개인전]

드무2 2026. 2. 1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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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조각가 최종태 개인전]

 

 

 

최종태 작가가 작품 ‘얼굴’ (1987) 위에 한 손을 얹고 있다. 납작 눌린 도끼 모양 얼굴에 눈 · 코 · 입 흔적만 드러내 ‘도끼 여인’ 이란 별칭을 얻은 작품이다. 그는 “만들 당시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억눌린 시대에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표출된 작품” 이라고 회고했다. 아래 사진은 작품을 다른 각도에서 본 모습. 브론즈, 93㎝ × 28㎝ × 105㎝. /고 운호 기자 · 가나아트

 

 

 

희로애락 덜어낸··· '영혼 깃든 얼굴' 만들려 했다

 

 

 

1970년대 ~ 최근작까지 63점 출품

납작한 얼굴로 독자적 조형세계 구축

"반가사유상의 깨끗함이 나의 길"

 

 

 

원로 조각가 최종태 (94 · 서울대 명예교수)가 서른여섯 살 때 일이다. 서울 신촌 작업실에 손바닥만 한 나무 조각이 있었다. 결대로, 손 가는 대로 깎다 보니 얼굴 모양이 나왔다. 더 손볼 데가 없었다. 그는 “이제 (스승인) 김종영으로부터 벗어났다” 고 쾌재를 불렀다. 단순하고 납작한 얼굴 조각의 시작이었다.

“준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깎다 보니 형태가 나왔어요. 얼굴인데 추상 성향이 강한 형태. 깎아 놓고서 그렇게 좋아했어. 이건 김종영하고 어디로 보나 달랐거든.”

 

 

 

최종태 작가가 전시장에서 작품 옆에 서 있다. / 고운호 기자

 

 

 

서울대 미대에서 한국 근대 조각의 선구자인 김종영 (1915~1982)에게 사사하며 조각의 길로 들어선 그는 졸업 이후 스승과 구별되는 조형 언어를 찾고자 분투했다. 1968년 작업실에서 겪은 이 경험이 이후 최종태의 조각 세계를 결정지은 출발점이 됐다고 회고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세계 미술사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스승의 품을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려웠다” 고 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최종태 개인전 ‘얼굴’ 이 5일 개막했다. 조각 거장의 70여 년 화업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두상 (頭像)에 집중한 전시다. 197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조각 49점과 회화 19점 등 68점을 망라했다. 얼굴만 다루는 전시는 2001년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일흔의 시간, 얼굴’ 이후 25년 만이다.

 

 

 

최종태, '얼굴' (1981). wood, 20.5 × 19 × 52cm. / 가나아트

 

 

 

1932년 대전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6 · 25, 4 · 19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쳤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을 보고 감동해 내 길을 더 분명하게 깨달았다” 며 “반가사유상이 갖고 있는 정신성, 깨끗함이 내 길이다. 남들이 다 추상 조각할 때 나는 그 길로 안 가고, 평생 얼굴을 만들었다” 고 했다. 당시 많은 작가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인체 조형을 통해 추구하거나, 형태를 벗어난 추상과 비구상의 조형으로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했지만, 최종태는 한결같이 ‘인간’ 을 주제로 작업을 펼쳐왔다. “비너스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정신적인 게 없거든. 나는 영혼이 깃든 인간상을 만들려고 했어요. 때 묻지 않은 것, 깨끗한 것.”

 

 

 

전시장에 최종태 작가의 '얼굴' 조각상이 놓인 모습. / 가나아트

 

 

 

최종태가 빚은 얼굴 조각이 3개 전시장에 펼쳐졌다. 희로애락을 걷어낸 평온한 얼굴,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것만 남긴 얼굴이다. 1980년대에 선보인 ‘도끼 얼굴’ 도 있다. 목이 가늘고 얼굴이 옆으로 길게 뻗은 형태가 날카로운 도구를 연상케 해 붙은 별칭이다. 그는 “그 시대엔 왜 그렇게 납작한 형태가 됐는지 나도 몰랐다. 그땐 세상이 참 어지러웠고,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눌림을 받은 게 아닌가, 그 시대를 살아온 나의 작품 방식이었다” 고 회고했다.

 

 

 

최종태 '얼굴' 조각이 전시장에 놓인 모습. / 가나아트

 

 

 

시대에 따라 바뀌는 얼굴 조각상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은 둥글어지고 날은 무뎌진다. 2005년 이후에는 채색 얼굴 조각이 등장했다. 원색의 강렬한 색채로 얼굴을 칠하고, 붓으로 이목구비를 그려 추상과 구상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둥근 얼굴에 선으로 그린 눈, 꾸밈 없이 담백한 조각에 정신성만 남았다. 작가는 “어떤 얼굴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작업한 건 하나도 없다” 며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지 않으니 내 마음처럼 얼굴도 부드러워졌다” 고 했다.

 

 

 

최종태, '얼굴' (2000s). 나무, 36 × 21 × 64cm. / 가나아트

 

 

 

최종태, '얼굴' (2019). 나무에 채색, 16.5 × 16.5 × 44cm. / 가나아트

 

 

 

최종태는 2024년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작품 155점을 기증한 데 이어, 고향인 대전시에 작품을 대거 기증하기로 했다. 대전시는 5년 계획으로 최종태 미술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그는 “우리 집 애들은 이거 처리 못 한다. 내가 다 정리하고 갈 것” 이라고 했다.

어떤 작가로 남고 싶은가. 기자의 질문에 한참 생각하던 그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 훌륭한 사람을 그리고 싶었다. 영혼을 담으려 했던 작가, 그거 하나는 확실하다” 고 말했다. 3월 29일까지. 관람료 3000원.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2월 10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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