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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진]

일러스트 = 이철원
옛 사진
수십 년 전 시간들이 힘겹게 빠지느라
인화된 사가 종이 오늘만큼 늙어 있다
이름만 남겨 놓고서
지워진 사람도 몇,
함께한 얼굴들이 과거에서 돌아 나와
웃던 이는 웃음만큼 넌지시 눈짓한다
가슴에 빈방 있냐고
세 들어 살겠다며,
ㅡ 이승은 (1958 ~)
앨범을 펴서 옛 사진을 볼 때가 있다.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의 흰 모래사장에서 찍은 사진도 있고, 폼이 나게 차려입고 화단 앞에서 찍은 사진도 있고, 결혼식과 같은 경사가 있을 때에 그것을 기념하려고 가족 친지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사진 뒷면에는 사진을 찍은 날짜를 적어 놓고 또 함께 찍은 사진 속 사람들의 이름도 더러 적어 놓기도 했는데, 이제 그 사진은 색이 바래고, 사진 속의 어떤 이는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나, 얼굴이 지워져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 되었거나,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진 속의 그날 그곳에 대해 자꾸 떠올리고, 그날 그곳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날 그곳은 저 먼 과거로부터 지금 현재로 금세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사진 속 누군가는 더 애틋해서 마치 세 (貰) 살러 온 사람처럼 우리의 속마음에 한 칸 방을 차지하고서 앞으로 함께 살아갈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시를 읽으니 오늘은 막 핀 수국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어 이 여름을 남겨 놓고 싶어졌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5년 7월 7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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