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허] 스토리 리뷰]

드무2 2022. 3. 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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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스토리 리뷰]

 

 

 

HER / STORY REVIEW

 

 

 

서울시립미술관

 

가나아트 컬렉션

기획상설전

 

2020. 7.  22 一

 

 

 

 

 

 

 

 

 

 

《허스토리 리뷰》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여성미술 전시로 당시 여성작가들의 역사와 일상적 삶에 얽힌 개인적, 사회적 시선을 조망한다. 전시는 가나아트 컬렉션에 포함된 여성작가들의 작품에서 시작된다. 가나아트 컬렉션은 2001년 가나아트 이호재 대표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200점의 작품군으로 1980-90년대 한국의 사회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민중미술 및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을 포괄한다. 이 중 여성작가인 김원숙, 박인경, 송매희, 송현숙, 안성금, 한애규의 작품은 당시 가정 안에서 규정된 여성의 역할, 혼란한 시대상에 대한 인식, 여성 억압에 대한 암시 등 그들이 일상에서 마주한 사회에 대한 생각과 개인적 갈등을 보여준다.

  

암울한 정치상황 속에서 삶과 유리되지 않는 미술을 추구했던 민중미술은 주로 남성작가들이 주도한 소집단 미술운동과 함께 전개되었다. 노원희는 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었던 ‘현실과 발언’의 여성회원으로 참여하며 당시 사회의 시대적 초상을 응축된 형상으로 그려냈다. 1980년대는 한국 미술에서 본격적인 여성주의 미술이 태동한 시기로 민중미술 계열 여성작가들이 전시를 통해 여성현실에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는 사회변혁을 지향한 미술 흐름이었던 민중미술의 맥락에서 여성문제를 탐색하고 실천을 전개한 이들의 작품을 소환한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시원으로 불리는 1986년 《반(半)에서 하나로》전, 1987년부터 1994년까지 연례전으로 개최된 《여성과 현실》전, 1988년 여성시화전 《우리 봇물을 트자: 여성해방시와 그림의 만남》은 여성해방운동 차원과 문화적 차원에서 주요하게 논의되는 여성미술 전시로, 이러한 전시에 출품했던 김인순, 김진숙, 윤석남, 정정엽, 박영숙 등은 가나아트 컬렉션 여성작가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자아에 대한 탐구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같은 시기 민영순, 윤진미와 같은 재외 한인 여성작가들의 작품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발견된다. 이들은 서구 사회에 정착한 비서구 출신 이민자 여성으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중첩된 타자적 조건 속에서 디아스포라의 정서를 인종, 젠더, 국가, 역사, 기억의 차원에서 다루며 정체성을 작업의 주요 화두로 연결시킨다. 페미니즘 이슈가 지속적으로 대두되는 오늘날, 2000년 이후 꾸준하게 수집된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여성주의 미술의 중요 기점이 되는 순간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1980년대라는 시대와 사회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여성들의 교차되는 시선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한애규, <장롱 속의 여인>

<장롱 속의 여인>(1989)은 한애규의 어린 시절 경험에 기초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이불이 차곡하게 포개진 장롱 안에 한 여인이 눈을 감고 앉아 있다. “어렸을 때 동생들하고 집에서 술래잡기를 하면 장롱에 숨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장롱에 들어가서 숨고 나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그 순간에 그 안에서 느꼈던 행복감이 있어요. 이불 냄새도 좋고, 포근하잖아요?”라는 작가의 회고처럼 이 작품에는 어린 아이 대신 삶에 지친 기색이 깃든 여인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앉아 있는 여인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이 따뜻하고 작은 공간 속에서 고단한 삶을 위로받듯이 편안한 얼굴로 쉼을 청하며 행복을 느끼고 있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한애규, <집을 점령한 여인>

<집을 점령한 여인>(1989)은 결혼 이후 뒤바뀐 생활방식과 그 안에서 느낀 성적 불평등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한애규는 외부 활동에 집중하는 남자들의 본성에 대한 탐구 끝에 “그래, 떠돌아라. 나는 이 집을 내가 다 차지하고, 내가 관장하고. 삶이라는 게 이런 데 정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집 안을 돌보며 지키는 여성을 형상화한다. 상체를 드러낸 거대한 여인의 상반신 뒤로 바람에 나부끼는 지붕 위의 깃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 소록소록 자라나고 있는 텃밭의 야채, 가옥의 분위기를 환기해주는 대나무 등 그녀가 애착을 가지고 가꾸어 온 집의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화려한 치장 없이 수더분한 외모를 가진 여인은 이상화되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이자 지모신(地母神)이다. 굳게 다문 입매와 또렷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눈, 다부진 어깨는 이 집을 살뜰하게 꾸리며 가정을 수호하는 진정한 여성상을 보여준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한애규, <김치담기>

<김치담기>(1989)는 자신의 삶의 한 장면을 흙으로 빚어 작은 공간 속에 연출한 작업으로, 마치 무대와 같은 미장센을 보여준다. 김치를 담는다는 행위는 성인이 된 한국 여성이라면 대부분 경험해 본 일이다. 전통문화에서 김장은 여러 명의 마을 구성원들이 품앗이를 했지만, 작품 속의 여인은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혼자 묵묵히 무를 자르고 있다. 작은 창문이 나있는 벽과 사방에는 여인이 던진 배추와 무가 여지저기에 붙어있거나 널브러져 있다. “생활의 작은 반란을 꿈꿔본다. 자고 나면 해가 뜨고, 깨고 보면 해가 지고 그렇게 상식의 틀 속에서 우리의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 인생이 가고 있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한애규의 작업은 가정 안에서 여성의 역할과 위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만 이를 분노나 희생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일탈을 꿈꾸는 주체적인 자의식을 가진 여인이자 집안을 관장하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안성금, <중 1>

<중 1>(1982)은 수도승의 도상을 통해 이상적 세계에 대한 절대적 염원을 그린 안성금의 초기작으로, 강렬한 표현력이 응집된 작품이다. 거칠고 짙은 필과 먹의 운용으로 묘사된 승려는 손에는 염주를 들고 가부좌를 튼 자세로 안정감 있는 모습이며 굳건한 내재적 힘이 느껴진다. 작가에 의하면 이는 특정 종교로 대변되기보다, 고뇌하는 참 구도자의 한 전형을 제시한 것이다. “나는 육안으로 보지 않고 심안(心眼)으로 본다. 그러므로 나의 작업은 예술 자체에 대한 질문이나 유희가 아니라, 나의 고뇌와 수고를 동반하고 심안으로 보여진 인간세계에 대한 나의 증언이며 고백이다.”(작가의 말) 즉 고승의 도상은 암울한 시대에 홀로 고뇌하는 구도자의 강인한 정신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나아가 현세를 사는 인간이 ‘깨어있는 의식’으로 세상을 보기를 바라는 작가의 염원인 것이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송매희, <맨드라미 1>, <맨드라미 2>

송매희는 독일 유학시절 고향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던 ‘맨드라미’를 ‘고향’과 ‘자신의 실존’에 빗대어 자주 그렸다. 작가의 자작시에도 등장하는 맨드라미는 아픔과 희망의 정서를 동시에 담고 있는 것으로, 한국사회의 어두운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라는 내면적 감성과 새로운 희망 등의 다의적인 의미를 함께 내포한다. 1988년에 제작한 두 점의 <맨드라미> 시리즈는 대담한 터치와 생략, 어두운 색채가 화면을 지배한다. 낭만적이고 표현적인 방식은 타국에서 느낀 고독과 그리움의 정서를 잘 드러낸다. 꽃과 여성의 육체는 미술사 속에서 순수, 미, 지성과 같은 기성의 가치들을 대변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었지만, 송매희는 이에 대한 관습적인 규범을 과감하게 깨트린다. 작품에서 맨드라미와 여성은 비현실적인 색채를 입은 채 생동감이 없는 모습으로 땅을 딛고 서있다. <맨드라미 1>에 그려진 꽃 한 송이는 역경 속에서 피어난 절절한 생명력을, <맨드라미 2>에 고요히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여성은 당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몸과 정신에 가해지던 억압을 암시한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송현숙, <불타는 집>

<불타는 집>(1983)은 시기상 초기작으로 분류되지만, 근작과 기법 뿐 아니라 개념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황토빛 회색의 색면에 서양의 전통 방식인 템페라 기법으로 그려진 형상은 몇 번의 붓질로만 그려져 있어 이후 전개한 <획> 시리즈의 원형이 발견된다. 송현숙은 이 작업에 대해 “1982년 말에 처음으로 시골 부모님을 여동생이 모시고 독일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유학준비와 일을 하면서 한국과 단절됐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됐습니다. 더불어 1980년대 당시 한국에도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부모님의 방문과 수많은 편지를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내면이 작업에 반영되었습니다.”라고 회고한다. 이처럼 불에 타고 있는 기와집 대문은 당시 약 10년간 단 한 번도 고국의 땅을 밟지 못했던 이방인이자 한국인으로서의 작가의 내면을 투영하고 있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김원숙, <구출>

<구출>(1987)은 김원숙의 여성주의적 관점이 드러난 상징적인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는 짙은 푸른색 바다에 빠진 여성이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선박을 향해 양 손을 들어 SOS를 보내고 있다. 거대한 선체가 남성성의 상징이라고 할 때, 물에 빠진 여성은 남성에 의해 구출 당하기를 원하고 있는 듯 보인다. 곤경에 처한 여성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남성과 그렇게 구원 받기를 기다리는 여성의 삶이 오랜 기간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했던 암묵적인 젠더의 관계성일 것이다. 그러나 김원숙은 여성이 뒤를 돌면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뭍을 그려 넣어, 또 다른 생존의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이를 통해 모든 여성은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이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김원숙, <소나무>

<소나무>(1992)는 굵직한 소나무가 드리워진 호젓한 풍경과 함께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는 인물이 그려진 작품이다. 김원숙은 짙은 먹으로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나타냈고, 인물은 선만으로 표현해 대비를 이루게 했다. 배경을 칠한 필치의 방향은 마치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화면 속 인물은 시원하게 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으나, 화면의 아래쪽에 그려진 도끼는 인물이 휴식 후에 소나무 밑둥을 베어 버릴 것 같은 인상을 주어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느끼게 한다. 화면 속 인물이 김원숙 자신이라고 할 때, 소나무는 그가 의지하고 안정을 취할 수 있게 해주는 남편 또는 가정을 은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소나무를 베어버리기 보다 그 아래서 휴식을 취하면서 공생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가정을 지키는 일과 작업의 병행은 김원숙이 여성 작가로서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기도 하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김진숙, <들국화>

<들국화>(1986)는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기폭제가 된 《반(半)에서 하나로》전에 출품하며 작가의 첫 데뷔작이 되었던 작품이다.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하단에는 땅과 동일한 색채로 처리된 누드의 여성이 길게 누워 있다. 여성의 위쪽에 있는 남성들은 권위의 상징인 제복을 입은 채 일렬로 늘어서서 여성의 신체를 지켜보고 있다. 당시 동료 여성 작가들이 여성 억압과 계급, 노동문제, 모성 등을 주제화하며 여성의 사회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처럼 <들국화>에서도 여성을 유린하는 남성 권력의 폭력적인 힘이 드러난다. 하지만 여성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길에 핀 한 송이 들국화처럼 태연하고 대담하게 누워있다. 또한 여성과 남성의 크기를 대조적으로 처리하여 남성들의 시선을 무력화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여성의 욕구 해방에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하는 작가의 초기작에는 남성 주체로부터 해방된 여성이 환상적인 이미지로 구현된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김진숙, <즈믄 달아>

<즈믄 달아>(1988)는 독자적 여성주의 문화운동을 펼쳤던 단체 ‘또 하나의 문화’가 주관한 여성시화전 《우리 봇물을 트자: 여성해방시와 그림의 만남》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이 전시는 여성주의 시인들의 시를 기반으로 미술가들이 이를 시각화하여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즈믄 달아>는 김진숙이 당시 여성주의 시 영역을 개척한 시인 고정희의 시 「즈믄 가람 걸린 달하-여성사 연구 1」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다. 시에는 고려시대 남성들이 건축 노역에 동원된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전가된 생계에 대한 압박과 가부장적 남성의 억압이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두 채의 전통 건축물의 처마 끝을 화면의 중앙에 배치하고 이를 둘러싼 공간에 고정희의 시와 여성들의 한 서린 역사를 배치했다. 노역하는 남성과 옷감을 짜고 행상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전통 건축물의 형상을 가능하게 만든 역사 속 잊혀진 존재들을 떠올리게 한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윤석남, <손이 열이라도>

<손이 열이라도>는 1985년 윤석남이 김인순, 김진숙과 함께 결성한 ‘시월모임’의 2회전 《반(半)에서 하나로》(1986)에 출품되어 여성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던 작품이다. 단순하지만 강한 필치의 선으로 표현된 어머니는 여러 개의 손으로 광주리를 이고 행상을 하며, 돈을 세고, 주걱과 양동이를 들고 가사노동을 하며, 자식을 돌본다. 자신을 돌보기는커녕 육아와 가사, 생업으로 손이 모자라는 서민 어머니의 희생과 고통이 표현되었다. 여성에게 과도하게 주어지는 의무와 억압적 현실에 대한 묘사는 여성주의 운동의 오랜 주제를 다룬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박영숙, <장미>

<장미>는 모성을 주제로 한 박영숙의 초기 대표작으로 1988년 개최된 여성시화전 《우리 봇물을 트자: 여성해방시와 그림의 만남》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박영숙은 강은교의 시 「이름 모르는 꽃」을 재해석하여 모성의 새로운 가치를 탐구하는 사진 이미지를 제시했다. 시에는 주변 생명들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유지해온 어머니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 박영숙은 시에 등장하는 이름 모를 꽃과 어머니에 대한 비유를 장미와 임신한 여성 신체로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연속성을 강조하여 배치된 장미꽃은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인화 방식으로 표현되어 생명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가부장제 현실의 상징과도 같은 와이셔츠가 걸려 있는 가정집에서 자신의 임신한 신체를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여성은 평범하면서도 구체적인 모성의 모습으로 포착된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노원희, <나무>

<나무>(1982)는 한국 현대사의 익숙한 경험인 새마을 운동이 중요한 바탕이 되는 작품이다. 작품에는 국가 전체의 급격한 근대화를 위해 국민의 미시적인 생활에까지 규칙과 제재가 끼어들었던 시대의 초상이 형상화되었다.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국민들의 일상을 통제하기 위해 마을 곳곳에는 스피커가 설치되었는데, 작품에서는 나무 위에 스피커를 반복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이를 드러낸다.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풍경에 기반한 이미지는 아니지만 당시 상황의 핵심적 요소로, 강조 및 반복의 방식을 통해 통제받는 국민들의 압박감을 표현한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심리의 표현은 풍경의 실제 존재 여부를 떠나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분위기를 전해 리얼리티를 증폭시킨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박인경, <길>

<길> 시리즈는 1985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당시 언론매체에서 보도되고 있던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학생운동, 전체 혁명운동, 노동운동, 군국주의, 파시즘, 남북분열, 항일투쟁, 민주주의 사회실현’ 등 1980년대 초반 복잡한 한국 정치 상황에 맞물려 언론 매체에 빈번히 등장했던 문장과 단어들이 서로 겹쳐지고 엉켜서 화면에 쓰여 있다. 문자들은 서로 대항하고 겹치고 엉키면서 획들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문자의 획 하나 하나가 생명을 품게 되고 그 생명의 꿈틀거림은 군중들의 거대한 물결이 되어 길을 만들어낸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미디어 언어의 대중 파급력, 언론 권력의 문제에 주목해 작업의 주제로 갖고 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수많은 단어들을 통해 1985년의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언어로 아카이빙된 역사화이기도 하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정정엽, <올려보자>, <면장갑>, <봄날에>

<올려보자>와 <봄날에>, <면장갑>은 여성 노동자와 농촌 여성의 모습 등을 통해 건강한 노동의 가치를 표현한 목판화이다. 판화는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집회현장이나 노동현장에서 다량으로 유포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민중미술운동에서 많은 작가들이 사용했던 매체이다. 민중미술 작가들이 1980년대에 제작했던 목판화는 주로 대담하고 투박한 느낌을 주며 남성 노동자나, 시위 운동가, 농부 등 강렬하고 영웅적인 남성의 이미지가 민중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에 반해 정정엽은 희망찬 여성의 모습을 간결하고 사실적인 이미지로 표현해냈다. 그는 <올려보자>에서 드러나듯 노동자들의 투쟁적인 모습을 주목하기도 했고, <봄날에>와 <면장갑>에서처럼 그들의 소박한 일상에서 엿보이는 감성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김인순, <그린힐 화재에서 스물두 명의 딸들이 죽다>

<그린힐 화재에서 스물두 명의 딸들이 죽다>는 1988년 그린힐이라는 섬유봉제공장에서 난 화재로 22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기숙사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숨진 참혹한 사고현장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문은 밖에서 잠겨있어 사실상 이들은 갇힌 상태였으며 이로 인해 심각한 인명피해가 초래되었다. 작가는 여성 노동자들이 처했던 상황에 분노했고 한 화면에 여러 시간과 사건이 공존하도록 표현하여 처절한 노동현장의 현실을 고발했다. 이 작품은 1988년 제2회 《여성과 현실》전에 전시된 후, 같은 해 세창 물산 파업장 내에 전시되며 여성 노동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김인순, <파출소에서 일어난 강간>

<파출소에서 일어난 강간>(1989)은 파출소 근처의 다방에서 일하던 여성이 경찰관에게 강간당한 실제 사건을 담은 작품이다. 인물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과 그녀가 여성단체와 의기투합하여 공권력에 맞서 싸우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여성 인권의 현실을 폭로한다. 작가는 이처럼 불의에 맞서는 여성의 모습을 ‘시대의 아름다움’이라 여겼으며, 진솔한 삶의 모습과 인류애를 그려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대체로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형태로 그려지고, 친밀감을 줄 수 있도록 원색에 가까운 색채가 사용된다. 이 작품은 1989년 제3회 《여성과 현실》전에 출품되어 특정 계급의 여성 문제를 다루는 작품 중 하나로 전시되기도 했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박영숙, 윤석남, <자화상>

박영숙과 윤석남은 여성들 간의 우정과 연대를 중요하게 여기고 협업을 통한 공동 작업을 전개했다. <자화상>(1992)은 뒤에 걸린 박영숙의 사진과 앞쪽에 놓인 윤석남의 조각이 하나의 설치 작업을 이루는 작품이다. 박영숙은 사진 속에서 유방암 수술로 잘라 낸 한쪽 가슴을 당당히 드러내고 여성이 무엇으로 여성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모색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이에 윤석남은 의자 위 목조 여인상의 한쪽 가슴에 전구를 부착하여 박영숙의 사진에서 없어진 가슴을 빛으로 밝히고자 했다. 또한 이 작품은 1992년 여성미술연구회의 제6회 연례전 《여성과 현실》에 출품되었다. 《여성과 현실》전은 여성미술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고 1987년부터 1994년까지 매년 다른 주제로 개최되어 당시 여성 현실을 바탕으로 한 작가들의 고민과 대응의 과정을 보여준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민영순, <자기 만들기>

<자기 만들기>(1989)에서 작가는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자신의 이중 정체성의 심리를 드러낸다. 그는 얼굴 표정과 손을 이용해 '모범적인 소수집단(MODEL MINORITY)’, ‘이국적인 이민자(EXOTIC EMIGRANT)’, ‘동화된 이방인(ASSIMILATED ALIEN)’, ‘객관화된 타자(OBJECTIFIED OTHER)’의 모습을 연출하여 동양계 이민자들을 억압해온 선입견을 노출시킨다. 사진과 텍스트의 병치로 이루어진 작품 속에는 여성 미술가로서의 자의식이 탄생한 미국에서의 경험과 잃어버린 모국어와 고국에 대한 기억으로 혼란스러운 디아스포라의 정서가 다층적으로 나타난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윤진미, <자아 기념품>

<자아 기념품>(1991)은 윤진미가 캐나다 유명 관광지인 밴프 국립공원(Banff National Park)에서 전형적 동양인 관광객의 모습으로 촬영한 사진을 담은 우편엽서 형식의 작품이다. 엽서의 뒷면에는 각각 한국, 중국, 일본어로 “우리도 이 땅의 주인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우표를 붙이는 위치에는 캐나다의 국기와 함께 “100% 캐나다 제품(A 100% Canadian Product)”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작가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모이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자연 풍경 앞에 무표정하게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치 불협화음처럼 배치하는 다분히 직설적인 방식으로 캐나다 역사에서 소외된 아시아계 캐나다인들의 이야기를 드러낸다. 윤진미의 작품은 자신을 모델로 하지만 자전적 영역을 초월하여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심리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아우르고 시각화한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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