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비둘기공원(은행근린공원 포함)]

드무2 2022. 6. 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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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공원(은행근린공원 포함)]

 

 

 

비둘기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비둘기공원 안내도

 

 

 

위치 : 비둘기공원 ㅡ 경기도 시흥시 은행동 551

          은행근린공원 ㅡ 경기도 시흥시 은행로246(시흥시 대야동 565)

 

 

 

 

 

 

 

은행근린공원 발지압장

 

 

 

 

 

 

시흥시 대야도서관에서 은행근린공원으로 건너가는 육교

 

 

 

 

 

 

은행근린공원 장미원

 

 

 

 

 

 

 

 

 

 

 

 

 

 

 

 

 

 

 

 

 

은행근린공원 테니스장

 

 

 

은행근린공원에서 비둘기공원으로 접어드는 여인들

 

 

 

제29회 물왕예술제

 

일자 : 6. 17(금) ~ 19(일)    장소 : 비둘기공원 일원

 

공연예술 부문    장소 : 비둘기공원 야외 특설무대

       6월 17일(금) 청년예술가 공연 | 19:30

              18일(토) 개막식 | 19:00 / 개막 공연 | 19:30

              19일(일) 어울림 가요 | 18:00 / 폐막 공연 | 19:20

 

평면(전시) 예술 부문    장소 : 비둘기공원 농구장

      6월 17일(금)~19일(일) 소품전 : 건축, 미술, 사진, 문인(시화)

 

시민참여예술 부문                                                    

      6월 18일(토) 백일장 / 사생 / 휘호대회 / 휴대폰 사진촬영대회 | 09:30~14:00

                           ※ 당일 현장접수 가능   접수장소 : 비둘기공원 농구장

            18일(토) 청소년 아트페스티벌 | 11:00~13:00

                          장소 : 비둘기공원 야외무대

            19일(일) 성인 아트페스티벌 | 12:00~14:00

                          장소 : 비둘기공원 야외무대

 

※ 자세한 내용은 시흥예총 홈페이지 참조 www.sharts.or.kr

 

 

 

비둘기공원 언덕

 

 

 

체력단련장

 

 

 

산책로

 

 

 

야외무대로 통하는 장미터널

 

 

 

야외무대

 

 

 

시계탑

 

 

 

야외무대 관중석

 

 

 

공원 관리실로 내려가는 계단

 

 

 

오래된 공동체의 미래,

복음자리

 

복음자리는 1977년, 서울 양평동 일대에 판자촌 철거가 시작되면서 터잔을 잃게 된 170세대의 사람들이 당시 시흥군 소래면으로 이주하여 만든 마을이었다. 복음자리 마을 주변으로 1979년, 서울 난곡동, 사당동 등지에서 164세대가 추가로 이주하여 한독마을을 형성하였고, 1985년, 서울 목동 주변에서 105세대가 들어와 목화연립이 지어지면서, '집단 이주민들에 의한 새로운 정착지 건설'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곳으로 이주해 온 복음자리 사람들은 천막을 짓고 공동생활하면서 복음자리 건설과 입주과정을 함께하여 공동체 의식이 매우 강했다.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 모여 결정했고, 그때마다 떠들썩하고 흥겨운 잔치가 벌어졌다. 해마다 펼쳐졌던 '복음단오제'는 복음자리의 가치를 구현하는 대동마당이었다. 공동체 생활 속에서 다툼과 반목도 많았지만, 그들을 가로막는 갈등보다 함께 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이 더 크다는 믿음으로 가난하지만 삶을 공유하는 '생활공동체'로서의 가치를 지속해 나갈 수 있었다.

복음자리에서 비롯된 사회적 경험들을 시흥시 승격이후, 인구유입과 도시발달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민사회의 형성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생활협동공동체를 개척했던 '복음신용협동조합'은 수백 억 자산규모의 '경기시흥신협'으로 성장했고, 마을회관처럼 시작했던 '작은자리'는 지금 종합사회복지관이 되었으며,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주목했던 '복음장학회'도 '사단법인 제정구장학회'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복음자리가 위치했던 지역은 2010년 신청동 휴먼시아 아파트로 재개발이 완료되어 더 이상 예전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도시 빈민의 집단 이주와 성공적인 정착 사례로서 복음자리의 기억과 이미 앞선 시대에 복음자리 사람들이 만들어갔던 '도시공동체'의 정신은 각박해진 현대사회에서 다시 공동체의 복원을 꿈꾸는 오늘날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복음자리 초기의 천막생활

 

 

 

                                                      얼마나 북적였을까?

뱀내장 蛇川場

 

순우리말인 뱀내[蛇川]는 글자 그대로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하천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신천新川을 일컫는다. 뱀내장[蛇川場]은 시흥시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5일장이었다. 개시開市 시기를 정확히 밝혀주는 문헌은 없으나, [증보문헌비고_增補文獻備考]의 기록에 의하면, 1770(영조 46)년에 뱀내장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뱀내장이 유명했던 까닭은 큰 우시장牛市場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나, 1926년에 발간된 [조선의 시장경제 朝鮮の 市場經濟]에 의하면 뱀내장에서 매매되던 주요 물목 중 축류_畜類가 99%의 비율을 차지하여 명실상부한 전문시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뱀내장이 큰 규모와 활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안성장_[2 · 7일] - 오산장_[3 · 8일] - 수원장_[4 · 9일] - 뱀내장_[1 · 6]'으로 이어지는 경기 · 남부권 소의 유통에 있어 '실질적인 마지막 장시'였기 때문이다.

뱀내장은 왁자하게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고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장소였다. 주변에는 소 20마리가 묵을 수 있는 큰 마방_馬房이 네 곳 있었는데, 장날 팔지 못한 소를 한 달간 맡기면 소 반마리 값이 날아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1950년대에는 큰 씨름판이 장날과 함께 하기도 햇으며, 우승자에게는 소 한 마리가 주어졌다고 한다. 또 한 때는 서비스 공연으로 북적이기도 했다. 뱀내장 주변으로는 신일옥, 해주옥, 금천옥 같은 식당들이 유명했다. 상인들이 아침을 먹기도 하고, 소 판 돈으로 술을 마시기도 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우시장은 모두 세 번에 걸쳐 자리를 옮겼고, 1980년대 초, 도시개발과정에서차츰 모습을 잃게 되었다. 지금은 뱀내장의 옛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1987년 삼미시장이 인근에 상설시장으로 개설되어 맥을 잇고 있으며, 뱀내장이 있었던 곳은 '문화의 거리'로 변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1970년대 뱀내우시장

 

 

 

1980년 전후 뱀내장의 마방

 

 

 

1984년 이전 개설 테이프 커팅

 

 

 

이 공간은 은행지구택지개발사업의 과정에서

사라져버린 생매산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역과 함께 하는 예술가들의 재능 기부와

은행동 주민들의 뜻을 모아 조성하였습니다.

조성에 시용된 돌들은 생매산에서 나온 발파석입니다.

 

2014년 1월 조성

 

 

 

 

 

 

 

 

 

모래골_沙洞

웃터골과 소래중학교 사이에 있었던 마을로 한국전쟁 이후 이곳에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은행지구 택지개발사업에 포함되면서 마을이 사라졌다.

 

 

웃터골_上基洞

모래골 동북쪽 높은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던 마을이다. 은행택지가 개발되면서 지금은 은행초 · 중 · 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오복동_五福洞

신천감리교회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뱀내장에 딸린 마을이었다. 일제 강점기 이천 서씨를 비롯하여 평산 신씨, 연일 정씨 등 5가구가 처음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래고개

모래골과 국제상사 사이에 있었던 고개로 은행동과 대야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60년대에는 고개가 높고 좋았는데, 1976년 수인산업도로 포장 때 고개를 낮추었고, 1986년 확장하여 고갯길을 넓혔다.

 

 

광덕물산

광덕물산은 생매산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공업지역에 위치했기 때문에 은행지구 사업부지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별도 계획에 의해 택지로 개발되어 현재 대우4차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경찰종합학교 소래사격장

생매산 동쪽 능선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소총 사격장 1개소와 권총 사격장 2개소가 소래산 쪽을 바라보며 들어서 있었다. 1994년 은행지구 택지개발사업 부지에 추가로 편입되면서 용인으로 이전하였다.

 

 

각시골

웃터골 남상주택 서북쪽에 있었다. 골짜기가 아늑하여 웃터골 각시들이 놀던 곳이라 한다.

 

 

대만목장

생매산 동북쪽으로 경찰종합학교 사격장 너머에 있었다. 현재 목장이 있던 자리에는 우성아파트와 서강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그립지만 이제는 볼 수 없는

생매산

 

생매산은 소래산 자락에서 연결된 해발 86m의 야트막한 산이었다. 1992년, 은행지구 택지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 차츰 깎여나가 완전히 사라졌다. 정상에 돌이 많아 새매의 서식처가 되었다고 하여 '새매산'이라고 불렀는데, 점차 편하게 발음이 변하여 '생매산'이 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발음으로 '샘미산'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또 모래가 많은 산이라 '모래산', 혹은 '할머니산_[소래산=할아버지산]'이라고 불렀다는 사람도 있다. 산을 깎을 때 나온 흙과 돌들은 월곶지구 공유수면 매립에 사용되었다. 일설에는 계수저수지의 제방을 만들 때 일부 이용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생매산이 사라지기 전, 생매산의 남동쪽에는 전자모피, 봉제산업에 주력했던 '광덕물산', 그리고 북서쪽 외곽에는 '대우통신', 남서쪽 외곽에는 반도체 공업 분야의 '국제상사' 등 여러 기업들이 지역 사람들의 일터로 자리잡고 있었다. 동쪽 능선에는 경찰종합학교 소래사격장이 있었는데, 경찰종합학교 사격장은 사격연습 중 발사된 총알이 생매산을 넘어 국제상사 옥상까지 날아가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든 적도 있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사격장 내 일부 부지를 인근의 주민들이 개간하여 경작하도록 삶의 터전으로 내어주었던 곳이기도 했다. 생매산은 토끼나 노루, 족제비와 같은 산짐승들과 꿩, 산까치, 부엉이, 매 따위의 날짐승들이 뛰놀던 곳이었으며, 산등성이와 골짜기 사이로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풀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던 아늑한 자연공간이었다. 산의 동쪽과 서쪽에 있었던 옹달샘은 주민들에게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였고, 산자락의 나무들은 난방과 취사를 위한 땔감이 되어 주었다. 산의 북쪽에는 목장이 있었고, 개간지에서 감자나 고구마, 밀, 채소나 과일 등을 가꾸어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직접적인 삶의 터전이었다. 생매산의 정상부에는 오늘날 비둘기공원이 들어서 주민들에게 휴식을 주고 있다. 생매산은 광덕물산이 있던 자리에 대우 4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더 이상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지만, 아련한 옛 정취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따뜻하고 편안한 이웃 같은 그리움으로 머물고 있다.

 

 

 

소래산에서 바라본 생매산 전경(택지개발 직전)

 

 

 

은행지구 택지 개발사업 조감도

 

 

 

개발 전의 경찰종합학교 소래사격장 전경

 

 

 

개발 전 광덕물산의 모습

 

 

 

생매산아 생매산아

 

                       시  秋甫 박영만

                     글씨 暁石 최찬회

 

생매산아 생매산아

소래산 앞에서 언제 떠났나

이른 봄 진달래 눈부시게 꽃피워

은행정 품어주며 환희 웃던 너

노루 토끼와 한마당 놀고

새들과 흥겹게 노래불렀지

 

은행마을 정기 가득 내려주던

생매산아 생매산아

각시골 곁으로 언제 돌아오나

바다 밑에 잠겼나 어서 솟아라

구름 위에 앉았나 내려 오너라

뱀내가 목말라 너를 기다린다.

 

 

 

                             시흥시 도시개발의 첫걸음,

은행지구 택지개발사업

 

1989년 1월, 시흥군의 소래읍, 군자면, 수암면을 관할구역으로 하여 시로 승격한 시흥시는 수도권 서부의 신흥도시로서, 승격 3년 후인 1991년부터 월곶지구 공유수면 매립사업과 은행지구 택지개발 사업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본격적인 도시개발에 착수하였다. 1992년 10월 설치된 공영개발사업소 주관 하에 월곶지구는 사업자를 공모하여 민자유치사업으로, 은행지구는 시흥시가 채권을 발행하여 직접 개발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은행지구 택지개발은 은행동, 대야동, 계수동 일원 742,233㎡(약 22만 4천 평)의 면적에 7,930호의 주택을 지어 30,130명의 인구를 수용하도록 계획되었고, 1991년 4월 택지개발예정지구 고시, 1992년 7월 개발계획 승인, 1992년 11월 실시 계획을 거쳐 1992년 12월 24일 착공하였다. 이후 1994년 10월, 경찰종합학교 사격장의 지구 내 편입을 시작으로 모두 7차례 실시계획을 변경, 사업대상지가 확대되어 2001년 12월 26일, 준공 당시 총면적, 770,709㎡(약 23만 3천 평)에 8,304호의 주택을 건설하여 31,623명의 인구 수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은행지구 택지개발 사업은 시흥시에서 첫 번째로 추진했던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이었다. 이는 급속하게 증가하는 인구와 그에 따른 주택 수요에 부응하는 동시에 갓 승격된 신흥도시로서 도시다운 면모를 갖추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택지가 조성된 은행동 생매산 일원은 전체 면적의 87%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던 1991년 당시 시흥시 여건에서 거의 유일하게 도시개발이 가능했던 땅이었다. 은행지구 택지개발은 여러 방면의 우여곡절과 시행착오가 있었고, 은행동과 인근 원주민들의 터전이자 쉼터였던 생매산을 잃게 되는 아픔을 남기기도 하였다.

 

 

 

 

 

 

어린이 놀이터

 

 

 

산책로를 걷고 있는 주민들

 

 

 

 

 

 

비둘기공원 약수터 수질검사성적서

 

 

비둘기공원약수터

 

이 약수터는 시흥시에서 먹는 물 공동시설로 지정하여 관리하는 시설입니다.

약수터 주변을 항상 깨끗하게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지정번호 : 시흥 제8호

2. 시설명 : 비둘기공원약수터

3. 위치 : 시흥시 은행동 551

4. 수질검사 관련사항

     가. 검사일시 : 매월 5일 전후

     나. 검사결과 : 수질검사 성적표 참고

5. 관리기관 : 시흥시청

    · 시설관리 - 공원관리과(☎ 310 - 3863)

    · 수질검사 - 상수도과(☎ 310 - 6135)

6. 이용시 주의사항

    √ 음용 부적합 판정시에는 음용을 금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약수터 주변에 쓰레기 투기 금지, 애완견을 데리고 오지 맙시다.

    √ 장마철이나 강우 직후에는 수질오염이 상승할 수 있으니 이용을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농구장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볼 수 있어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비둘기공원 관리실(1층)

비둘기공원 숲속책방(2층)

 

 

 

 

 

 

공사명 : 은행지구 택지조성 및 조경공사

공사기간 : 1992. 12. 24~1998. 6. 5

발주자 : 시흥시장

시공자 : (주)우성건설   삼풍건설(주)

 

 

 

 

 

 

테니스장

 

 

 

체력단련장 연못

 

 

 

낙화(落花)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겨울밤

 

                                   박용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체력단련장 운동기구들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오라, 이 강변으로

 

                                               홍윤숙

 

 

오라, 이 강변으로.
우리는 하나, 만나야 할 한 핏줄,
마침내 손잡을 그 날을 기다린다.
그 날이 오면, 끊어진 허리
동강난 세월들 씻은 듯 나으리라.
너의 주름과 나의 백발도
이 땅의 아름다운 꽃이 되리라.
오늘도 여기 서서 너를 기다린다.

 

 

 

인공폭포

 

 

 

체력단련장에서 운동하고 있는 아낙네들

 

 

 

복종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고풍

 

                            신석초

 

 

분홍색 회장 저고리

남끝동 자주 고름

긴 치맛자락을

살며시 치켜들고

치마 밑으로 하얀

외씨버선이 고와라.

 

멋들어진 어여머리

화관 몽두리

황금 용잠 고와라.

 

은은한 장지 그리메

새 치장 하고 다소곳이

아침 난간에 섰다.

 

 

 

배드민턴장

 

 

 

비공배드민턴클럽 아침반

총무 : 010 - 9095 - 0428 / 010 - 3670 - 4893

 

 

 

비둘기공원에서 은행근린공원으로 건너가는 육교

 

 

 

비둘기공원 무장애길

 

 

 

 

 

 

은행근린공원과 비둘기공원을 연결하는 육교

 

 

 

비둘기공원과 대우3차아파트 사이 길

 

 

 

비둘기공원에서 소래빛도서관으로 건너가는 삼거리 횡단보도

 

 

 

비둘기공원과 은행근린공원을 연결하는 육교

 

 

 

무장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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