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부산광역시

[부산여행 ㅡ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12)]

드무2 2022. 11. 23.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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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 ㅡ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12)]

 

 

 

(사) 부산시인협회 제5회 산복도로문학축제

내사랑 부산 시화전 시, 동백꽃으로 피다

 

2022. 10. 1 (토) ~ 10. 31 (월) | 해운대 동백공원 주최 : (사) 부산시인협회  후원 : 부산광역시

 

 

 

길을 걷는다

이수정

 

한나절 두서없이

길을 걷는다

잠시라도 세상을 잊어버리고

정신없는 내 머리도 식히며

마음에 한없이 쌓인 불안과

일상의 찌꺼기도 버리고

무심코 생각 없이

길을 걷는다

세상에서 가지고 온

온갖 추억 같은 질긴 사연들

한 입에 모두 삼켜 버리고

한나절 하염없이

길을 걷는다

 

 

 

세상에

이완두

 

시들은 화분에 웃으면서 물을 주었더니

금새 풀물이 돌아

벌렁거리는 향기로

젖앓이 말을 걸어 왔어

 

코르셋이 꽉 조여

숨이 막히는 조롱

박새 가족이 걸터 앉아

조롱박에서 풍금 소리가 들렸어

 

금정산 만물상에서

애인이 셀프 인증샷을 올리는데

바위에 뿌리 박은 늙은 아이가

해운대 위로 해를 들어 올리고 있어

 

금샘 바위에서

애인과 몰래 키스하다 개미에게 들켰는데

세상에!

일렬로 줄지어 오는 개미 력사들이

산성마을을 통째로 짊어지고 오고 있어

 

 

 

바람개비

최재영

 

사람아

해마다 내 몸도 갈잎으로 훌훌 벗고

봄이면 어김없이 겨드랑이 간지럽히듯

초록 잎사귀 돋아날 수 있다면

무성한 초록잎을 찰랑찰랑 휘감고

온몸으로 진종일 실바람에

팔랑일 수 있다면

향긋하리라

푸르고 푸른 샘 하나

남몰래 꼭꼭 숨겨 놓은 그러한

 

 

 

그 남자가 걷는 이유

최선숙

 

좀비처럼 흔들리는 남자

신발 신는데 십 분을 낭비하는 남자

바람없어도 제 풀에 팔랑이는 남자

후득이는 빗줄기도 대책없이 맞는 남자

온 몸의 신경이 다 닳아 버린 듯

넘어져도 아픈줄 모르고 걷고 또 걷는다

서슬퍼런 달빛이 푸르게 웃던 밤

뒷 덜미에 달라붙은

고문 기술자의 능글 웃음

흔들며 털어내며 뿌리치며

살아보고 싶어서

살지 않을 수 없어서

이마에 땀을 매달고

오늘도 천리길을 계획하는 남자

 

 

 

가을 비

노유정

 

가을 비 네가 다녀가면

가을은 정녕 가을로 깊어질 수밖에

미세한 먼지와 더러운 얼룩이

앙금으로 고여 있는 내 영혼 깨끗하게 씻어주렴

어떤 청소 도구와 청량제보다

우주를 말끔하게 만드는 너의 기술로

 

어느 가을 비 내릴 때

모든 것이 생경하던 시절

사랑도 반항도 겁없이 했네

내 젊은 날의 페이지 무거웠던 삶의 추

그 때 모든 이치 깨달았다면······

 

다시 가을 비 내리는 날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에 의지하며

그 우산 속에서 젊은 날이 걸어간다

 

 

 

봄밤

윤홍조

 

  슬금슬금 거리에 어둠의 그림자 내려오면 하얀 속살 부신

여자 하나 어느새 길목 나와 서성인다

 

  기약 없는 사랑의 향기로움 하르르 쏟아버릴 듯 부푼

몸을 간신히 어둠에 등 기대어 싸안고 있다

 

  휘영청 달 밝은 밤일수록 더욱 낭창낭창 휘늘어진

달 그림자 몸짓에 길목의 발길들 언뜻, 눈먼 사랑인가

가슴 덜컥, 발길 멈춰서는 황홀한 몸 색의 여자 하나

 

  온밤 어른어른 나를 따라온 향긋한 기다림 못내 눈앞에

밟혀 살금살금 담장을 흘러드는 은밀한 살내음에

밤새 정분난 가슴들 잠 못 이뤄 뒤척이는

 

  창밖, 난분분 난분분 꽃물 흘리는

  밤 벚꽃!

 

 

 

11월에 피는 꽃

이성의

 

그곳에서는 하필 오늘

빨간 불빛을 켜고 축시를 읽기 시작했네

하모니카를 불고 기타를 두들기고

뭇 새들이 날아와

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었네

하늘과 바다와, 먼 자작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

길이 되었다가 언어가 되었다가

내 가슴의 통증 속으로 돌아와

한 송이 꽃으로 피네

모서리 돌고 돌아 선율로 흐르는 강

불빛 속에서 사계가 흔들리네

숲을 키우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자를 벗고 엉덩이춤을 추네

긴 타래를 풀어 동녘으로 가는 길

늦은 솔밭 길 위로

물소리 더욱 짙어지고 있네

 

 

 

 

 

 

인간 목숨은

신삼식

 

하늘은 마음이 넓어 만 구름을 영접하고

심지어는 황사까지 반갑게 받아주니

하늘이여! 인간 목숨은 어쩌란 말인가요.

 

바다는 마음이 넓어 만 강물을 영접하고

심지어는 오폐수도 반갑게 받아주니

바다여! 인간 목숨은 어쩌란 말인가요.

 

대지는 마음이 넓어 만물들을 영접하고

심지어는 만병들도 반갑게 받아주니

대지여! 인간 목숨은 어쩌란 말인가요.

 

 

 

푸른 가시

박이훈

 

바다 앞에서 너와 마주 앉는다

 

바다가 바다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막막한 벽인지

 

내 몸 마디마디 돋아내는 푸른 가시

 

지나가는 모든 것에는

문신처럼 눈물이 새겨진다

 

바다는 파도를 밀어 보내고

눈시울은 하얗게 부서진다

 

흰 이빨을 드러낸 시퍼런 파도가

내 발꿈치를 물어 뜯는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반송 닮은 일곱 남매

이옥순

 

밑간이 잘 맞아 음식이 맛있었지

밑그림이 잘 되어 그림이 산뜻하게 살아났던 거야

어머니 담그신 간장, 된장, 고추장

어느 음식에나 밑간이 되었지

 

법기수원지 푸르름

댐 위에 귀한 대접 받는 반송 일곱 그루

호수와 잘 어우러진 그 멋스러움

 

한자리에 잡히지도 머무르지도 않는

주머니 속의 소지품처럼

하품을 하며

꿈틀거리는 삶

 

양쪽 귀를 세우고 두 눈을 비비며

고요히 가고 있는

 

우리 일곱 남매

 

 

 

 

 

 

산복도로에서

김종배

 

부산 동구를 찾았다

일부러 가지 않으면 딱히 지나다니는

길이 아니다

산복도로를 가보자고 작정한 날

휴일 날 외출처럼 등산화를 신었다

뚜벅 뿌벅 걸어보는 길

어릴 적 고향 골목길 같다

유치원의 이야기가 있는

내 고향 통영바다처럼 에메랄드 빛

그러나 무척 분주하게 뱃고동이 울렸다

바람이 훅 불어와

나의 지문을 건드리고 지나자

벗의 안부가 궁금하다

빨간 우체통이 유난히 강렬한 오후

내가 쓴 엽서 한 장

일 년 후 나의 오늘을 전할 것이다

 

 

 

태종대 예찬

김정숙 (예향)

 

굴참나무들의 잎맥따라

바람의 향기 머물고

 

색색의 수국들이

햇빛에 몸 단장할 때

태종사 목탁 소리는

유유자적 구름 속을

거닐고 있네

 

여기에

조약돌마다 노랫가락이 되어

소리 잔치 끊이지 않는 몽돌 마당과

 

바위 맴돌며

인간의 한을 향해

한 시도 쉬지 않고 씻김굿을 펼치는

천년 파도는 태종대 지킴이

산신 할미까지 맘 편히 머물게 만드는

천혜의 명관과 명물이로다

 

 

 

168도시락국

손순이

 

초량이바구길에서 할매들이 장사하는

식당 겸 찻집에서 식혜를 마신다

왜 168도시락국이냐고 물어보니

산복도로 오르는 계단이 168개란다

계단 옆에는 모노레일이 오르락내리락

가계는 동구청에서 관리

어르신들은 노인 일자리에 취직되어

용돈도 벌고 이웃과 시간 보내기 좋단다

드라마 보면서 얘기 나누는 중간에

복지관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머리 수건과 마스크 꼭 쓰라고 이른다

얼른 마스크 쓰고 청소하는 어르신들

나는 하늘동네 거닐려고 모노레일을 탄다

 

 

 

 

 

 

흑백영화

정대인

 

부산민주공원은 산복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세계 최대급 노천화장실이었다

산비탈에 홍합처럼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들은

수도는 물론이고 대부분 화장실이 없었다

판잣집에 방이 둘이면 하나는 세 놓고

남은 하나에 칠팔 명이 복닥거리고 살았다

사람은 많고 공동화장실은 턱없이 부족했다

동트기 직전 나무나 덤불을 칸막이 삼아

별보다 많은 사람들이 담뱃불을 꼬나물고

끙끙거릴 때는 반딧불처럼 반짝반짝하고

단골 똥개들은 입맛에 골라가며 조찬을 즐겼다

부산 도시주거환경정비계획에 의해서

판잣집들을 '서동' 등에 강제로 이주시키고

동구에서 중구 서구까지 산복도로가 건설되고

노천화장실은 부산민주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그 때 똥의 힘으로 부산민주공원기념탑이

키가 훤칠하고 다리가 탱글탱글하다

 

 

 

 

 

 

봉창

심명순

 

문틈으로 들어온 바람에

네모들이 술렁술렁

 

비밀을 알고 있다고

귓전에 대고 속삭인다

 

살며시 들여다 보니

풍선처럼 부푼 마음

 

돌 던져 사랑 전하던

수줍은 그 마음은

 

두근두근 콩닥콩닥

그게 사랑이라며

 

봉창 속

속삭임 함께

푸른 하늘을 난다

 

 

 

숨 고르기

김시월

 

48계단 모노레일을 보다가 피난 시절 보았던 물 지계 내 눈 속에서 꿈틀댄다 육성회비를 빌려주고 혼자서 속앓이 하는 여학생 오르내리던 계단 멈추오 잇고 그 시절을 견디어 낸 사람들의 뜨거운 체온이 안개 속에 끈적거리고 있었다 식은 한숨처럼 갈라진 육십년대 아파트 가슴을 조이며 여전히 삶을 버투고 있다 생존경쟁은 영원같이 끝난 줄 모르고 구불텅 치맛자락을 조여 맨 골목 바람이 어긋나게 숨통을 튀우고 있다 뛰뚱거리며 올라오던 산복도로 마을 버스 구십도 언덕받이에서 후진 브레이크를 걸 수밖에 없다 다같이 내려서 28인승 버스를 밀자며 마음을 모으고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단전호흡을 하던 시인들 앞에 한 발 떨어져 앉은 부산항이 뚜 우 위험수위를 알렸다

 

 

 

문탠로

양한석

 

길들이 모여서 이루는 평화

어울마당과 바다를 사이한 갈맷길

청사포 지나

달맞이 길들이 함께 어울린 이곳

 

문화와 문명 예술이 공존하는

영상미의 극치인 하루하루를

셈하고 있는 문탠로

 

길은 사방으로 열려 있고

열려 있는 명상의 깊은 곳으로

비로소 청량한 길 하나

생명의 존엄을 일깨우며

동화처럼 자연 속에서

새로운 신비로 발아하고 있다

 

 

 

광안대교

김달현

 

동에서 서로 걸쳐 앉아

바다를 가로지른다

 

바다가 바람을 일으켜 세우고

고래가 파도 타고 다리 위로

날아오른다

숱한 꿈의 파편들이

장사행長蛇行을 이루고

삶의 현장 실어나르는 소리

요란하다

 

지나가는 유람선 어깨 들썩이면

광안대교 장단 맞춰 일렁이고

날아드는 갈매기 희락을 꿈꾸며

날개를 휘젓는다

 

밤이면 오색 스펙트럼 펼쳐지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 받아

백사장이 들썩인다

 

연인들

찻잔 속에 쏟아지는 사랑의 불빛

마음껏 담아 모은다

 

 

 

 

 

 

바닷가

권명해

 

바닷가는 나의 무대다

푸른 날이 날마다 떠오르고

때로는 해일의 파편에 찔린

발자국이 모래를 붉게 물들여도

나는 매번 가야 한다

혼자 하는 연극을 보기 위해

무대 앞을 떠나지 못하는

단 한 사람의 관중을 위해

가면을 벗는 몸짓을 해야 한다

 

 

 

산북도로

정정옥

 

용꼬리 같은 길 열면 코모도 그곳 청사초롱 불 밝혀

가마 타고 가는 길

유엔군이 처음 아스팔트 길을 열었던 아리랑 고개

검은 머리 흰 파뿌리 심었는데 아직도 그대로

메리놀 병원 지나 수정산 정기받은 초량 산북도로 험란한데

아슬아슬한 절벽 위로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온몸을 조우며 눈 크게 부릅 뜨고 숨고르며

굽이치며 흘러가는 낙동강 물결 같은 산북도로

먼 아래 절경 바라본다

부산항 앞바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거대하고

어리어리한 무역선이 허연 연기를 품어내어 짐 풀면

유치환 시인의 우체통은 배부르다

산북도로 물결은 용머리 싣고 실크로드처럼 넘실넘실거린다

 

 

 

 

 

 

풍경

박종숙

 

화려하게 핀 꽃

그림자 지우고 떠나도

계절은 다시 환희로 피어 난다

 

꽃잎 떨구고

빈속 할퀴는 바람

눅눅한 어둠 떨쳐내고

그늘에 접힌 몸을 털고 일어난다

 

삶은 뗏목을 타고 건너는 기슭에

등을 기대는 것

울림을 만나는 호흡들이

나를 깨운다

 

다 버려도 아깝지 않은 순간

시처럼 펼친 풍경 속에

마음을 조각한다

 

 

 

산복도로

김미선

 

수평을 부수고 길이 일어선다

휘어진 집들이 창틀에 매달려

하늘을 담고 있다

해를 싣고 달아난 저녁이

벽화 속으로 빠져 들면

노을이 턱밑으로 흐르고

비탈길 실은 모노레일은

푸른 바다 위를 출렁인다

쪽문 들락거리는 촘촘한 그림자

골목 안 가로등을 흔들고

오래 된 담벼락 모래시계가

하얀 달을 끌어 올린다

따뜻했던 판잣집의 기억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한다

한때 현기증을 실어 나르던 이야기가

날개를 파닥이며

퇴화 중이던 168계단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허물어진 꽃등이 노를 저어

수직의 그림자를 살며시 내려놓자

바닥을 헤엄치던 마을버스가

산허리를 싣고 사라진다

 

 

 

매미의 오덕

조선영

 

곧게 뻗은 입모양이 문장하는 선비의 갓끈이요

청정한 이슬 수액만 취하니 깨끗한 성품이요

과일과 밭곡식을 해하지 않으니 염치 있는 족속이요

한몸 피할 집이 없으니 검소하기 이를 데 없네

칠 년을 굼벵이로 살다 어둠을 탈피하고

여름 한철 공명하던 울음은 임을 향한 애절함인데

늦가을 서릿발은 추상같이 오고

떨어져 갈 때를 스스로 아니

신의를 지키는 굳은 절개인 줄 뉘 알리오

익선관 날개의 머리는 군신의 의리를 아니

과히 겸양오덕을 갖추어 군자의 반열에 들었으나

아 애달픈 한살이 일생 매미의 생애다

 

 

 

낭만이 흐르는 이 가을에 詩를 만나다

 

 

 

그늘 열매

이효순

 

늙은 포구나무 그늘이 짙다

농막 벽에 붙은 매미 허물

산복도로 그늘 열매로 매달렸다

 

넓은 잎 사이사이 모여 있는

굽은 속울음은 쓰나미를 부른다

몸 한 채 지었다가 허무는

젊은 노을

찬란한 낙하가 넘기는

매미가족 서러운 절창

온몸으로 울다가

온몸으로 쓰러져 가는 사람

초파리 하루살이 꿈을 깨운다

 

포구나무 늙은 그늘

농막 벽에 붙은 간이역마다

시린 걸음이 휴가를 마신다

 

 

 

사촌리 시편

김지은

 

목단이 저무는 마을에 갔다

꽃들의 아우성이 눈부시다

 

황토방 처마 아래로 차오르는

탄생과 소멸의 아스라한 물소리

 

하늘을 나는 새의 그림자

나뭇가지에 앉는다

 

달팽이 산을 오르는 오후

문살에 넣은 꽃잎 그림자가 즐겁다

 

꽃 한 송이 띄운 찻사발에

환한 적막이 피어난다

 

 

 

날아서 가자

방경숙

 

노을지는 동백섬

출렁이는

밤 바다의 파도를 나른다

 

내 가슴은 별빛 미소 담는다

 

상드리아 불빛으로

붉은 동백 한 송이는

젊은 날의 청춘을 물어 오네

 

 

 

 

 

 

지하철을 기다리며

김경희

 

여름밤 뜨락에 내리는 별빛이 머리에 인다

담벼락 오르는 담쟁이가 햇볕을 품는다

철 이른 가을바람이 갈대에 실려 지하철에 내린다

수해를 건너고 내 앞에 정차한 지하철은

어제의 향기를 목넘어로 즐기며

가로등을 회유하며 목례를 한다

지하철 건너편 시들어가는 불빛에서

어느핸가 입었던 노란색 저고리에 주홍 고름이 채택되면서

지나간 풍경을 등짐에 메고

쌩하고 지나가며 선로를 물들인다

발길이 뚝 끊긴

지하철 막차 역사 안에서

계단이 많아 지하철은 싫노라는

어머니의 애튼 음영이

찢어진 수은등에 흔적으로 내리는

마른 가슴 쓸어안는 수척한 밤이다

 

 

 

 

 

 

운동화 끈을 묶어 준다

조규옥

 

허리를 구부린다는 것은

나를 낮춘다는 것이지

허리를 구부린다는 것은

내가 낮아진다는 것이지

풀어진 운동화 끈을 묶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면

얼굴과 땅이 가까워지는 것이지

낮게 흔들리는 들풀과 풀잎 위의 작은 벌레들

내가 낮아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풀어진 운동화 끈을 묶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면

낮게 머무는 것들이

운동화 끈을 묶어 준다

 

 

 

수련秀蓮

권미숙

 

잔물결 춤추는 산들바람 타고

살포시 내려 앉은 고요 위로

연꽃이 수줍게 피었다

몽환의 어둠 속

임의 배신에 눈물흘리다

물방울 영롱한 아침해 머리에 이고

호수 한 가득 꽃봉우리로 채우며

혼탁한 욕망, 심연에 두 발 버티어

창공을 향해 비상하는

고고하고 청아한 모습에

고난의 역사가 새롭다

번뇌의 멀리로 어지러운 태양 아래

무심히 피어 있는 한 송이 수련은

속정의 살가움 떨쳐 내고

맑고 향기롭게

순결한 혜안으로 세상을 녹인다

나락에서 태어나 극락을 꿈꾸며

 

 

 

시월의 감정

최순애

 

시간의 경계를 잃고 살던

하루들이 열꽃처럼 꿈틀댄다

 

무시로

아침, 저녁을 드나들며

세상과 타협하려는

감정이 시간의 덫에게 묻혀간다

 

세월은 날뛰는 감정을 달래며

시월에 만난 한 영혼의 일기로

성숙해지려 하지만

 

물들어가는

슬픈 농도의 금상첨화처럼

계절의 미각에

쓸쓸해지면서 풍부해지는

시월에 행복해진다

 

 

 

적색 우체통

최귀례

 

산복도로 허리춤에

붉은 우체통 하나 서 있다

 

부산항이 훤하게 다가설 듯 전망대에서

바람은 한사코

빨간 집시치마에 부채질해댄다

 

물결이 멈춰 설 때마다

연둣빛 꽃봉오리는 안부를 묻는다

 

꽃은 꽃잎을 풀어 쓰는

불그스름한 앳된 잎들이

신음하는 세상과 아픈 접촉을 한다

 

풋풋한 풀 냄새가 흔들리고

나는 눈망울이 자른 구름 한 자락에

연민을 동봉한다

 

별들의 취기를 껴안고 서 있는

6월이 끄집어낸 청마의 싯귀가

 

여직 붉은 문간에서

갯내를 피워낸다

 

 

 

 

 

 

갈대와 가을의 노래

박상호

 

가을바람이 갈대를 스친다

갈대는 함께 흔들리며

각자의 고독을 노래한다

 

철새가 날아와 그 고독을 달래준다

하지만, 잃어만 가는 듯한 비애는

더욱 가슴을 통렬히 찢는다

 

갈대는

함께 가을을 노래하지만

저마다에겐 고독이 더 깊어진다

스산한 바람이 가을을 재촉한다

 

사라져 가는 가을의 노래여

 

 

 

호랭이 마을

황인국

 

범일동 구름다리를 지나

180계단을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면

호천마을로 가는 호랭이 길이 있다

달달한 곶감에 겁 먹었던 동화 속 호랑이

어흥어흥 내려오던 호천마을

나즈막히 엎드린 가난 위에서도

착한 욱음처럼 환한 햇살 쏟아지고

전망대에서 바라본 격동의 부산함

어둠이 발 아래 깔리고 멋쟁이 빌딩마다

모락모락 하얀 안개꽃을 피워올리고

오르고 또 오르던 삶의 애환

산복도로에 붉은 핏줄이

 

 

 

철새의 약속

석동호

 

너와 나는 철새처럼

변방을 찾아든 겨울날이었다

 

첫눈에 부리를 묻고

가슴 파랗게

마냥 날갯짓하고

 

하늘 나라는 머언 미래

슬픔의 기포처럼

깃털을 날리는

고깔 쓴 지평선의 손짓이었을 거야

 

너를 애써 부르지도 못해도

 

꿈에만 그리던

평화가 나란한 그런 나라

 

손에 별들이 쥐어지고

순결이 첫눈처럼 내리는 날

너와 나는

또 한 번 철새처럼 비상할 거야

 

 

 

가을 속으로

김창식

 

푸른 잎 날개 접고

단풍이 토한 주방천

가을이 붉게 익는다

 

긴 세월 낚아 굽이친 물줄기

바위 깍아 잉태한 폭포 셋

하늘 오른다

 

곡예하는 물보라에

세 속 잃은 나그네

현기증에 발길 멈춘 그 자리

수달래 붉은 사연

두고 간 넋 살아 숨쉰다

 

 

 

고립의 벽, 그 안에서

박미정

 

산복도로에 올라선 날

운무가 발아래 도시를 숨겼다

사방팔방을 깜빡거리며 한 바퀴 돌아보니

 

골목길을 찾아 올라오고 내려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부엉이 눈으로

꼬불꼬불 꼬리를 물고 있다

 

눈 아래 빤히 섰던

천차만별의 빌딩이 보이지 않아도

푸른 돛을 단 바다가 아련히 멀리 있어도

기다림의 적요가 아름다운 동네

 

운무 안 고립의 벽은

호기롭게 찾아간 나 혼자의 것으로

오래도록 다져진 땅을 걷는 것

삶의 향기가 느껴올 때쯤 가슴이 몽클하다

 

 

 

사랑

雪津 김광자

 

자목련은 모를 것이다

 

천양* 멀리 울새 우는 발들이 눈가루를 굴러

비밀한 꽃방을 짓는 것이다

해파랑길** 건너 별빛이 흔들리고

갇혔던 시간의 빛 순을 쳐낼 때

울새 울음이 매화나무 꽃잎에 맺히고

자박눈은 녹지 않고 해토머리*** 땅속을

완강히 거부하며 가슴에서 깊어진다

 

어느 날 절망의 절정이

댓돌에선 맨 발길, 집 밖을 나서서

뚝새풀에 앉아 사랑! 이란 환상을

한 웅큼 집어 들고

내 생에 불러 보지 못한 노래를 부른다

요람에서 긴 한세상을 돌아오며

온갖 것 다 가져봤어도

그토록 짧음마저 못 가져서 아름다운 이것!

 

* 천양壤 : 하늘과 땅, 크고 작은 물결의 길이라는 뜻

** 해파랑길 : 바다의 큰 물결의 길

*** 해토머리 : 언땅이 녹기 시작할 무렵

 

 

 

가을, 청도에 가면

김미순

 

꼭 그래야겠다.

 

청도 감 와인터널에 가면

잘 익은 와인 한 병 사들고 올 일이다

머리카락 한 올마저

잠시 수척해진 얼굴 사이로 외로운 날

쏟아낸 햇살

침묵만 만지작거리는 바람 더불어

와인 향기에 흠뻑 젖어볼 일이다

 

나이테 하나 덧대는 시간 속

탱탱하던 몸 확 풀어져

붉은 미소로 찰랑이는

잘 숙성되어 깊은 맛을 내는

맛깔 나는 삶의 발효법을 배울 일이다

빨갛게 물든 감나무 잎새

초록계단 하나씩 내려서는

이, 가을에는.

 

 

 

 

 

 

푸른 그리움

조창용

 

이 때쯤이면

그 길에도 코스모스가

갈바람에 그리움 안고

가슴 부풀어 흔들리겠다

 

가버린 시절은

어둠 속에 떨어지는 유성처럼

꼬리를 물고 휘어져

이 밤, 내 창가에 하릿하다

 

세월이 한참이나 흘러가도

지우지 못한 기억이 남아서

잠 못 드는 밤

님 떠난 적막함에 숭숭해진 가슴

한 십 년 더 가면 아물어질런가

 

 

 

 

 

 

 

 

 

 

 

 

 

 

 

 

 

 

 

 

 

 

 

 

 

 

 

광안대교 Diamond Bridge

총연장 7.42㎞로 국내에서 가장 긴 복층 교량이며, 상층부에서 보면 끝없이 펼쳐진 쪽빛 바다, 오륙도, 동백섬, 달맞이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밤에는 야간 조명이 해수욕장의 야경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오륙도

오륙도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이 때로는 다섯으로, 때로는 여섯으로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방패섬과 솔섬의 중허리가 밀물 때 물이 들면 두 섬으로 나뉘어져 여섯 섬이 되고, 썰물 때 물이 빠지면 하나로 붙어서 다섯 섬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등대

2005년 '제13차 APEC정상회의'를 기념하고, 선박들이 암초를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워진 등대로, 높이가 25m이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1㎞ 거리에 위치해 있다. 부산의 발전과 풍요로운 미래를 나타내기 위해 활짝 핀 연꽃 모양을 하고 있다.

 

 

 

해운대 일출

해운대의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용광로처럼 이글거리는 신비한 일출은 장관을 이룬다. 이를 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신년 해맞이 인파가 몰린다.

 

 

 

해운대 해수욕장

빼어난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있으며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는 최적의 관광지로 연중 전국 최대 인파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해수욕장이다.

 

 

 

 

 

 

 

 

 

 

 

 

 

 

 

가을

강달수

 

삼복더위와 열대야

너무 겁낼 필요없다

 

하늘에 구태여

정기구독 신청을 하지 않아도

 

여름바람은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들 문 앞에 시원한

가을을 택배 해 두고 갈 것이다.

 

 

 

센서는 알고 있다

윤유정

 

어둠을 옆구리에 끼고 북극점을 찾아간다

현금지급기에 카드를 밀어 넣는 동안

보이지 않는 수상한 그림자는 암호를 던진다

비밀 유지를 위해 신호등은 점멸되고

나의 행적은 쫓던 검은 눈동자는 공허하다

표적이 된 얼굴을 스친 공기의 흐름이 싸늘하다

꿈꾸던 순간 날 것들의 소리가 들리고

고장 난 지하철은 터널 안에서 멈춘다

초점없는 시선에 둘러싸이는 호각소리

환승역을 빠져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사냥꾼의 추적기는 발자국에 매달린다

미친듯이 날 뛰는 사육시간

포위망을 조여 오고 나는 숨이 차다

목덜미를 물린 공포는 생각보다 깊다

어색한 침묵은 탐색전을 펼친다

감정배설을 둘러싼 새벽

공포에 싸인 바다가 출렁이며 달려온다

 

 

 

지구의 얼굴

탁영완

 

꽃길에 서서 세계의 구석구석 눈물을 보네

하늘 우러러 먼저 떠난 구름을 만지작 하네

 

불면으로 충혈된 시가

안절부절 침 맞고 레이저 눈 시술을 받고

신경조차 쇠약해 갈 곳 잃은 적막의 연잎을 디디네

 

자폐의 생명은 영문도 모르고

무시로 아무데서 일년초처럼 피었다 지고

내일은 한자락 기침이듯 가래를 머금네

지구의 안식년이 견뎌야 할 그리움의 숲은

칡덩굴 겨우살이 덮여 꿈길조차 버렸네

 

시린 봄이 다가도록

폐업한 꽃집 흐릿한 창에

어제 오늘 지구의 얼룩진 빗물 꽃피네

 

 

 

늙는다는 것은

이효애

 

늙는다는 것은

시간이 천천히 마모되어

몽당 연필처럼 닳아가는 거라네

늙는다는 것은

생의 전부가 화폭이 되어

아름다워지는 거라네

그리하여

삶이 완성되어 지는 거라네

 

 

 

질경이를 위하여

박   하

 

수레바퀴 앞에서도

겁없이 피는 풀,

밟힐수록 더 깊게 뿌리내리는 송곳 같은 풀

 

너덜너덜 넝마 꼴이 될지라도,

천둥벼락에도 아랑곳 없이 외줄기 꽃대 밀어올리는,

백련강百鍊鋼보다 질긴 넋이여

 

산복도로 길섶에서

온세상 고속도로 길섶까지

수레바퀴 아래 심신을 벼리고

수레바퀴 따라 씨를 퍼트리는 꽃

 

하늘 향해 곧추 선 꽃대

시나브로 층층이 터트리는 축포여,

마침내 우주의 수레바퀴가 된 풀꽃이여

 

 

 

해운대 석각

 

 

 

 

 

 

 

 

 

해운대 석각 海雲臺 石刻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5호

 

9세기 신라말 대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이곳의 자연경관에 매료돼 본인의 아호를 딴 『해운대』를 암석에 새겨 해운대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온다. 선생이 이 석각을 직접 썼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동래부읍지 고적조東萊府邑誌 古蹟條에 수록된 고려말 문호 정포鄭誧, 1309 ~ 1345의 시 『해운대海雲臺』에 '대臺는 황폐하여 흔적도 없고 오직 해운海雲의 이름만 남아 있구나'라는 기록이 있어 고려말 이전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달맞이 길

예부터 대한팔경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고, 월출의 장관과 일몰의 경이로움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굽이굽이 15번이나 돌아가는 달맞이 길은 바다절경과 어우러져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대마도

부산에서 50㎞ 정도 떨어져 있고, 날씨가 맑은 날은 여기서 대마도를 볼 수 있다. 부산에서 대마도를 볼 수 있는 날은 평균 60일 / 년 정도로 추정된다.

 

 

 

잠제등표

잠제시설이 선박 운행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그 위에 눈에 띄게 설치한 이 조형물은 '세계를 바라보다'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잠제시설이란 파도를 약화시키기 위해 물 밑에 만든 방파제로서 해운대 해수욕장의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해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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