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13
1945 ㅡ 1987
평화, 민주, 번영을 향하여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5년 8월 15일에 일제가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광복을 맞이한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합의로 북위 38도선을 분계선으로 분할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편되는 세계정세의 영향과 좌우세력의 갈등 속에서도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으나 결국 좌절되었다. 유엔의 감시 아래 보통 · 평등 · 직접 · 비밀 원칙에 따라 5 · 10총선거를 통해 재헌국회가 구성되어 헌법을 제정하였고, 마침내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1945
미국, 일본에 연합군 최고사령부 설치
1945
국제연합 (UN) 창설
1946
중국, 2차 국공내전 돌입
1947
미국, 트루먼 독트린 발표와 냉전의 본격화
1949
중국공산당 중국 대륙 장악
1951
제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를 위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광복과 미군정
광복과 함께 국내에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은 북귀 38도선을 분계선으로 한반도를 분할하였다. 남한에서는 미군정이 실시되어 경제 · 사회적 기반 마련에 주력하였으나, 한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여 사회적 불안정과 혼란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광복으로 자유를 되찾자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논의와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해외로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 가운데 독립운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인물들은 국내의 다양한 정치세력과 함께 정당과 사회 단체를 구성해 활동했다.·
해방 당시 서울역 광장 | 경향신문 | 1945. 8. 15. (오른쪽 위)
38도선에서 만난 미 · 소 양국 | 경향신문 | 1945. (오른쪽 아래)
부산항으로 귀환하는 한국인들 | NARA | 1945. 10. 12. (오른쪽 아래)
광복을 맞이하여 남산에 게양된 태극기 | 경향신문 | 1945. 8. (왼쪽)
1945. 9. 7.
태평양 미 육군 맥아더 사령관 포고령 제1호
제1조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와 인민에 대한 통치의 모든 권한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 아래에서 시행한다.
제2조 정부 등 모든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유급 또는 무급 직원과 고용인, 그리고 기타 제반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자는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정상기능과 업무를 수행할 것이며 모든 기록 및 재산을 보호 · 보존하여야 한다.
연합군 사령관 일반명령 제1호 (1945. 9. 2.) 중 38도선 관련 부분
가 - (2) 만주, 북위 38도 이북의 조선, 사할린 및 쿠릴 열도에 있는 일본국의 선임지휘관과 모든 육상 · 해상 · 항공 및 보조부대는 소련군 최고사령관에게 항복할 것
가 - (5) 일본 열도,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오키나와 제도 및 필리핀 제도에 있는 일본국의 선임 지휘관과 모든 육상 · 해상 · 항공 및 보조부대는 합중국 태평양 육군부대 최고사령관에 항복할 것
일왕의 항복문이 실린 <매일신보>
1945년 8월 15일 정오에 방송된 일왕의 항복 선언문은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여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1945. 8. 15.
광복 직후 정세를 보도한 <매일신보>
1945년 9월 3일 자 매일신보이다. 연합군이 점령지역을 분담하기로 경정한 내용에서 조선은 미국과 손련이 분담하기로 한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항복문서 내용 전문과 미군이 서울에 주둔하기로한 기사도 담고 있다.
미군 진주를 알리는 전단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기 전 서울 일대에 뿌린 하지 중장 명의의 전단이다. 미군의 주둔 목적과 한국인들의 협조를 당부하는 내용이다.
조선건국동맹 성명서
조선건국동맹에서 발표한 성명서이다. 일본제국주의 침략 잔재 세력을 구축 · 단결하여 힘센 조선 건설에 매진, 조선인민공화국에 역량을 집중, 연합군 및 해외 독립운동가를 환대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945. 9.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발표문
1945년 9월 7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서 조선인민공화국 성립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발표한 격문이다. 전국인민대표회의를 통해 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으니 노동자 · 농민 · 인민대중은 이를 절대 지지하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1945. 9. 7.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 대장 포고문
소련군이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해방시켰으며 모든 권력과 재산은 조선 민중에게 속한다고 선언한 포고문이다.
1945. 8.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포고문
중대한 현 단계에 있어서 절대 자중과 안정을 요청한다. 우리들의 장래에 광명이 잇으니 경거망동은 절대 금물이다. 모두의 말과 행동이 민족의 휴척에 중대한 영향이 있음을 깊이 반성하여 지도층의 포고에 따르기를 유의할 것이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전단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서 배포한 전단이다. 건준의 포고문과 함께 조선의 노래 가사가 인쇄되어 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광복과 함께 조직된 단체로 8 · 15 당일 오전 여운형이 조선총독부와 행정권 이양 등을 위한 협상을 벌인 직후 곧바로 조직되었다.
1945. 8.
광복 기념 엽서와 우표
광복 1주년을 맞아 발행된 엽서와 우표이다. 당시 국내에 인쇄사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부득이하게 일본에서 인쇄하였다. 정부수립 이후 이미 제작된 엽서에 개정안을 찍어서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1946
조선인 귀환증명서
광복 이후 일본에서 고국으로 귀환하는 한국인들에게 발급된 증명서이다. 연합국 사령부가 이우성에게 귀환을 허가하였다.
1950. 2. 18.
《한글 맞춤법 교본》
경복중학교 교사였던 장하일 씨가 직접 집필하고 사용하였던 한글교재이다. 광복 직후 한글 교재의 부족으로 일선 학교와 교사들이 자체적으로 한글 교재를 발간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1946 장한님 기증
미군정
미군정은 1945년 9월 7일, 미 육군 태평양사령부의 군정선포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3년간 북위 38도선 이남의 남한을 통치하였다. 미 육군 태평양사령관 맥아더 (Douglas MacArthur)의 포고에 따라 남한에는 미 제24군이 진주햇으며, 재조선미군사령관에 임명된 군단장 하지 (John R. Hodge) 중장이 미군정의 최고책임자였다. 이후 본격적인 군정 시행을 위해 제7사단장 아놀드 (Archibald V. Arnold) 소장을 군정장관에 임명하고 재조선미육군사령부 군정청 (The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USAMGIK)을 설치하였다. 1947년 안재홍을 한국인 민정장관으로 임명하며 한국인 관료들이 책임을 맡게 되고 이어 남조선과도 정부가 구성되자 행정권을 한국인에게 이양해 부 · 처장은 한국인이 임명되었다. 그러나 미국인 고문에게 실권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미군정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종료되었다.
1945년 ● 9월 7일 테평양사령부, 포고령 1호 발표
● 9월 8일 미 제24군 (군단장 하지 중장) 인천 상륙
● 9월 11일 군정장관에 아놀드 소장 취임
1946년 ● 2월 14일 군정 자문기관으로 남조선민주의원 구성
● 12월 12일 남조선과도입법의원 개원
1947년 ● 2월 5일 안재홍 민정장관 임명
● 남조선과도정부 구성
1948년 ● 8월 15일 미군정 종료
중앙청에서 내려지는 일장기 | 경향신문 | 1945. 9. 9.
미군정 홍보포스터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이 분할된 모습을 보여주는 포스터이다. "남과 북의 통일은 여전히 교착상태에 있지만, 군정의 임무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1946. 11.
미 군정청 조직도
1946년 10월 현재, 재조선미육군사령부 군정청의 조직도이다.
1946. 10.
Military Governor CGUsamgik : 군정장관 Chief of staff : 참모장
Deputy commander : 부사령관 Civil administrator : 민정장관
Deputy military governor : 군정장관 대리 Military administrator : 군사행정관
<민주주의 교육법>
군정청 문교부에서 민주주의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간행한 교사용 교재로, 각 학년별 강의 요령을 수록하고 있다. 민주주의 개념 학습도 중요하지만 교육 방식 또한 민주적이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1946. 11. 13.
미곡출하명령서
나주군 다시 면장이 강상원에게 마곡 출하를 명령하는 통지서이다. 정당한 이유없이 출하를 기피 · 지연할 경우 엄벌에 처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미군정의 식량통제정책은 국민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1947. 11
대한민국 임시정부 당면 정책 담화문
1945년 9월 3일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가 새 국가건설의 원칙을 14개조로 정리하여 밝힌 담화문이다.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건국을 추진한다는 임정법통론이 드러나 있다.
1945. 9. 3.
임시정부 환영석상에서의 이승만의 답사
이승만이 모스크바 삼국 외상회의 기간 중 열린 임시정부 환영석상에서 완전 독립의 실현을 위해 국민이 자산을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밝힌 연설이다.
1945
경교장에 모인 이승만, 김구, 하지 중장 | NARA | 1945. 11. 24.
광복 직후 정당의 결성과 재편
한국민주당 선언문
1945년 한국민주당에서 제작한 창립 선언문 전단이다. 임시정부 봉대를 통한 자주독립국가 건설, 민주주의 체제 확립, 민생안정 등을 목표로 하는 선언문과 5개 강령, 8개 정책 기조가 인쇄되어 있다.
1945
미군정 법령집
미군이 군장을 실시하면서 한국 통치에 사용한 미군정의 법령을 모은 책이다.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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