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념관 등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19

드무2 2023. 5. 2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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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19

 

 

 

이야기 4

계속되는 삶

 

유물, 사진, 모형, 슬라이드 영상

 

 

 

 

 

 

 

 

 

 

 

 

① 청계천변 판잣집과 고가도로 건설

1965. 구와바라 시세이

 

 

 

 

 

 

② 달동네 (서울 홍제동)

1956 ㅡ 1963. 한영수

 

 

 

 

 

 

③ 물긷기 (서울 아현동)

1959. 정범태

 

수도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

함석 물통과 물지게를 사용하여

물을 길어 나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삐삐선 소쿠리

일명 '삐삐선'이라고도 불렸던 군용 전화선을 이용해 만들었다.

물가가 부족했기 때문에 삐삐선, 철모 등 다양한 군용물자를 이용해 다양한 생활용품을 제작해 사용하였다.

 

 

 

 

 

 

 

 

 

 

 

 

 

 

 

 

 

 

 

 

 

 

 

 

④ 미국 원조 분유 배급 (서울 만리동)

1955 정범태

 

미국 원조 분유통

미국 국제원조구호기구에서 분유를 원조물자로 보낼 때 사용한 통이다. 학교 등에서 분유를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선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분유, 밀가루, 식용유 등 미국은 잉여 농산물을 활용해 여러 나라에 원조를 제공하였다. 용기에는 미국 국민이 기증한 것으로 팔지 말라는 문구가 있다.

 

 

 

 

 

 

 

 

 

 

비위생적인 변소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위생적인 변소 관리법을 안내하고 있다.

 

 

디디티 (DDT)

6 · 25전쟁 이후 각종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살충제인 디디티 (DDT) 약품을 분무기에 넣어 살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체에 유해함이 밝혀지면서 사용이 중지되었다.

 

 

 

 

 

 

 

 

 

 

 

 

 

 

 

 

 

 

 

 

 

 

 

 

⑤ 구두닦이 소년 (서울 회현동 자유시장)

1956 ㅡ 1963. 한영수

 

구두닦이 통

6 · 25전쟁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기증자는 전쟁 중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대신하여 구두닦이로 일하며 어머니와 네 명의 동생을 부양하였다. 구두닦이통은 사과 궤짝을 얻어 직접 만든 것이다. 많은 어린이들이 생계를 위하여 구두를 닦거나 담배 등을 가판에서 팔았다. 손님으로 온 미군이 초콜릿을 주면 먹지 않고 모았다가 팔았다고 한다.

 

 

 

황인덕 기증

 

 

 

⑥ 담배파는 소년 (서울 만리동)

1953. 임응식

 

 

 

원기소

1956년부터 생산된 어린이용 비타민 영양제이다.

1960 ~ 70년대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피난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가족들

1953년 임응식

 

 

 

명동 신세계백화점 앞 노파와 미군들

1953년 임응식

 

 

 

 

 

 

 

 

 

 

 

 

⑦ 구직 (서울 명동)

1953. 임응식

 

 

 

⑧ 서울 소공동

1956 ㅡ 1963. 한영수

 

 

 

 

 

 

⑨ 미도파 뱍화점 앞 (서울 명동)

1956. 임응식

 

 

 

 

 

 

<진달래 꽃>

1950년 재발간 된 김소월의 시집으로 당시 가장 많이 팔린 시집이었다. 지금까지도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이다.

 

 

 

<자유부인>

<서울신문>에 연재되다가 1954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4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정비석의 장편소설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베스트셀러이다. 전후 상류층의 퇴폐적 풍조를 다루어 당대에 큰 충격을 주었고, 금서로 지정되었다가 4 · 19혁명 이후 해금되었다.

 

 

 

<시집가는 날>

희곡 <맹진사 댁 경사>를 각색하였다. 1957년 제4회 아세아영화제에서 특별희극상을 받아 한국영화 최초로 국재영화제에서 수상하였다. 베를린영화제에도 초청하였다.

 

 

 

고바우 영감

 

 

 

기증자 이야기

 

 

 

기증자 이야기 ㅡ 오자영

 

 

 

계몽과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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