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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25전쟁 60년/서울 거쳐 평양으로 20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9) 마지막 관문을 넘다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9) 마지막 관문을 넘다 1950년 10월 38선 이북으로 진군한 미군이 북한군 토치카에 화염방사기를 발사하고 있다. 쫓기던 북한군은 평양 근처에서 조직적인 저항을 시도했지만 쉽사리 무너졌다. [중앙포토] 전투는 어떻게 보면 대형 공사를 완성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부족한 곳을 메우고, 내게 넘치는 부분은 제때 거둬들일 줄 알아야 한다. 기계적으로 공격을 퍼부어야 할 순간에는 과감하게 화력과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물러날 때에는 역시 과감하게 물러나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선의 동향을 정확하게 읽고, 그 배후에 숨은 상대의 의도와 약점을 제대로 짚어야 한다. 일선에서 피를 흘리며 분전하는 병사들의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장막..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8) 미군의 전투 스타일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8) 미군의 전투 스타일 이 상황에 앞서 평양을 향해 발길을 서두르던 우리 부대가 황해도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이미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벌써 30㎞를 지나왔다. 하루에 그 정도 진격했으면 됐겠거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와 함께 선두를 지켜왔던 미군 전차중대가 공격을 멈추고 야영 준비에 들어갔다. 야간행군 꺼리는 미군 “우린 낮엔 호랑이, 밤엔 고양이” 길을 재촉했던 나는 그들의 야영준비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나는 “길을 더 가야 한다. 지금은 쉴 때가 아니다”고 미군 전차 중대장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난색을 표명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사단장, 지금 우리는 쉬어야 한다. 더운 음식도 먹어야 하고 씻기도 해야..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7) 기민한 미군의 전차 작전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7) 기민한 미군의 전차 작전 1950년 9월 초 낙동강을 건넌 미군들이 M-26 퍼싱 전차에 올라타고 진군하고 있다. 전차는 6 · 25 전쟁 기간 중 연합군의 핵심 무기체계로 등장해 북한의 T-34 전차에 대적할 화력을 아군에 제공했다. 전쟁 초기 한반도에 상륙한 미 M-26 퍼싱 전차는 성능 면에서 북한군 T-34와 비슷했으나, 나중에 보급된 M-46 패튼 전차는 전차포 구경과 철판 두께 등에서 북한군 전차를 압도했다.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0년 10월 12일 아침 우리는 전차를 앞세우고 길을 떠났다. 거침없이 개성 북쪽에 있는 황해도 장풍군(45년 11월에 장단군과 개풍군의 일부를 떼어 만든 군) 구화리를 빼앗고 금천군의 시변리로 향했다..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6) 국군에 처음 온 미군 전차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6) 국군에 처음 온 미군 전차 조지 패튼(1885~1945) 윌리엄 헤닉 대령의 생각은 이랬다. 조지 패튼이 전차전의 명장이 된 이유는 보병과 포병, 공군과의 합동작전을 원활하게 구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패튼은 늘 돌격의 선봉에 서 있었다는 설명이다. 쉽게 말하자면 ‘패튼식 전법’을 구사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지만, 내게는 전차가 없었다. 미군에게 탱크를 지원받는 것은 몹시 어렵다. 탱크 20대로 ‘패튼식 돌격전’… 내가 선두에 타기로 했다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했지만 보병과 긴밀한 협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전차 작전은 어렵다. 적의 보병에게 저격 당하기 쉽고, 적진에서 고립돼 파괴될 수도 있다. 보병이 밀착해서 전차..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5> 진격 길에 나서다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진격 길에 나서다 평양 진격로 세 시간쯤 흘렀을 것이다. 나는 미 1군단의 밴 브런트 참모장이 작전계획 수정 작업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작업을 마친 밴 브런트가 내게 수정한 작전명령서를 쥐여줬다. 나는 다시 확인했다. 국군 1사단이 경의(京義) 축선의 우익을 맡아 평양으로 진격하도록 돼 있었다. 이승만 “평양엔 반드시 ‘마이 보이’들이 먼저 입성해야” 대전비행장으로 와서 경비행기 L5로 청주에 돌아왔다. 사령부에 들어서면서 나는 기다리고 있던 부하들에게 “자, 이제 우리가 선봉(先鋒)으로 평양에 진격한다”고 외쳤다. 사령부는 참모들과 사령부 본부대원들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도로우선권이라는 게 있다. 청주로부터 수원을 거쳐 서울로 향하는 길..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4> “백 사단장, 평양을 맡으시오”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백 사단장, 평양을 맡으시오” 1950년 9월 20일 서울시내에 진입한 유엔군 장병이 시가전을 벌이면서 미처 퇴각하지 못한 적 잔당을 소탕하고 있다.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프랭크 밀번 미 1군단장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아주 다른 내 얼굴과 몸짓에서 뭔가를 읽은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그만큼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밀번에게 눈물로 호소 … 마침내 평양 진격 선봉에 서다 “평양으로 진격하는 대열에 내가 이끄는 국군 1사단이 빠져 있다. 1사단은 해주로 진격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밀번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 친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3) 권총과 위스키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3) 권총과 위스키 1950년 9월 15일 인천으로 상륙한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국군과 미군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서울 탈환에 나섰다. 북한군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인천 상륙 뒤 서울에 입성하는 데 13일이걸렸다. 이 해 9월 28일 아군은 마침내 서울을 적군으로부터 탈환했다. 서울에 들어선 유엔군이 조심스럽게 작전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중앙포토] 내가 탄 지프가 충남도청 정문에 들어섰다. 제법 큰 도청 앞 주차장에는 차량 여러 대가 주차돼 있었다. 2층 건물이었던 도청 청사에 들어섰다. 먼저 위층의 도지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프랭크 밀번 미 1군단장은 마침 자리에 없었다. 밴 브런트 참모장과 몇 명의 참모만이 있었다. 그중 누군가가 ..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2) 선봉에 서고 싶은 군인의 마음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2) 선봉에 서고 싶은 군인의 마음 낙동강 전선 반격 작전으로 북진을 거듭한 국군 3사단은 10월 1일 38선 돌파에 성공했다. 3사단 장병이 지나자 주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 격려하고 있다. [미 육군부 자료] 나는 서울로 진격하고 싶다는 뜻을 미 1군단의 프랭크 밀번 군단장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군단의 명령은 달랐다. “후방에 남은 적을 소탕하면서 군위를 거쳐 청주로 진출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를 비롯한 각 연대장과 참모들의 실망이 대단했다. 모두들 서울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서울 탈환’ ‘38선 돌파’ 선봉 놓쳤지만 평양 함락은 반드시 … 12연대장에게 군위 지역의 적군 잔여 병력을 소탕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나 ‘적군이 보이지 ..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1) See you in Seoul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1) See you in Seoul 12연대장 김점곤 대령과 함께 서쪽으로 계속 향했다. 도로변의 풍경은 같았다. 여기저기에 적군의 시체와 무기 등이 널려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치열한 공격을 펼치던 적군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북한군은 붕괴된 것이다. 패주한 적들의 일부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을 것으로 짐작은 됐지만 차량 등이 이동할 수 있는 주요 도로변에서는 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에서 보자 “도주하는 김책 잡아라” 155㎜ 포가 조치원 향해 불을 뿜다 우리 일행은 오전 11시쯤엔가 어느덧 다부동의 북쪽, 상주로부터 대구로 이어지는 도로와 안성에서 대구를 잇는 길이 만나는 교차 지점에 도착했다. 1사단 15연대 최영희 대령도 그곳에 ..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0) 적 전선을 넘어서 …

[6 · 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0) 적 전선을 넘어서 … 월튼 워커 중장은 이어 “우회 전술은 미군 참모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다. 상대를 공격하다가 적의 저항에 부딪히면 옆으로 돌아가라는 전술이다. 어떻게 적의 약점이 있는 곳으로 파고들어갈지는 귀관이 부하들과 상의해 보라”고 말했다. 인천상륙 3일 만에 … 김점곤 대령, 마침내 북진의 길 열다 적이 펼치는 전선에는 강약(强弱)이 있을 수 있다. 적이 자신의 주력(主力)을 모아 놓은 곳이 강한 전선이고, 그보다는 화력과 병력 등이 처지는 데가 약한 전선이다. 강한 곳만을 공격한다면 아군의 힘이 많이 소모된다. 그곳을 피해 약한 곳을 공격하면 적의 전선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국군과 유엔군 반격 노선 (195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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