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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순애 11

[쥘부채]

[쥘부채] 쥘부채 현순애 가지런한 매무새 음전한 자태 주름치마 곱게 입고부르는 노래 낭창한 허리춤에 햇살처럼 퍼지는 음표들 주름진 고랑에서 불어오는 나뭇잎 흔드는 푸른 숨소리 한여름 소낙비 선율이다 지칠 줄 모르는 고갯장단 영혼 없는 노래에도 응달지는 한낮 혼자 읊조리다 산그늘 내려오는 뒤란 댓잎, 살 비벼 우는 소리 뜨거운 사랑도 이제는 식어 열정의 노래 꿈결처럼 아득해도 산그늘 강물에 아른거리는 실루엣 가지 끝에 걸린 노을빛 명창 한 소절이다.

詩, 좋은 글 ... 2023.11.10

[하이힐]

[하이힐] [출처 : 서울경제] 하이힐 현순애 여자라고 지각하던 아찔한 스무 살은 몇 센티 높아진 자신감으로 당당히 세상과 마주했지 밋밋한 옷도 미니스커트로 둔갑시키는 에스라인, 무척이나 도도했지 코쟁이보다 코가 더 높고 성깔 뾰족한 내가 거리를 콕콕 쪼고 다니면 씰룩한 걸음걸이에 뭇 사내들 쓰러지기도 했지 순진한 발가락 옥죄고 발꿈치 물어뜯겨 피 보고 나서야 내 실체 알았으니, 내 스무 살 그녀와의 동거는 참으로 애증 관계였지 그럼에도 늘씬하게 착시 일으키는 곡선 포기하기란 우리 아버지 담배 끊기보다 더 힘든 일이어서 나는 늘 중독된 채 살았지 하염없이 비 쏟아지던 어느 날 결국 내 위선 보내기로 했지 버스 승강장 옆, 스무 살을 벗어 빗물에 실려 보내며 한없이 서러웠지 10센티는 더 가식적이었던 젊은..

詩, 좋은 글 ... 2023.11.05

[명태]

[명태] 명태 현순애 난전에 펼친 어전 허공에 둔 눈 소금기 절은 손등으로 훔친 이마에 바다 슬쩍 걸터앉는다 앞치마로 비린내 두른 여자가 도마 앞에서 종일 칼춤 춘다 여자의 노곤한 청춘 껍질째 벗겨져 낱장낱장 살 비늘오 저녀지는 하얀 속살 머리 떼고 꼬리 떼고 몸통 두서넛 토막 종일 품삯은 병든 노모의 약이었다 까치발로도 닿을 수 없는 세상 자식 딛고 서는 무동이었다 식구의 허름한 식사였다. 시인 현순애

詩, 좋은 글 ... 2023.10.25

[하늘 나는 물고기]

[하늘 나는 물고기] 하늘 나는 물고기 현순애 잔잔한 척, 시침 떼고 있는 저수지 연신 물의 혀 굴리며 허리까지 수장된 버들개지 핥고 있다 둘레길에 좌대 펼친 저수지와 한통속인 강태공들 밑밥 던져놓고 기다리고 있다 입맛 다시며 찌 노려보다 순간 챔질, 오르가슴 손맛으로 탐닉하는 순간 물고기와 하늘은 팽팽한 줄다리기 젠장, 짜릿한 비행 동경하던 물 밖 파란 하늘 아니다 나 그렇게 날아 본 적 있다 살랑대는 세 치 혀 속에 숨긴 바늘에 낚여 삶의 날개 찢겨 천 길 아래로 추락하던 날 하늘은 분명 흙빛이었다 강태공의 살림망 세상 물정 어두운 여린 입술들의 아우성 하늘을 찌른다. 현순애 시인

詩, 좋은 글 ... 2023.10.18

[때밀이 하나님]

[때밀이 하나님] 때밀이 하나님 현순애 주일 아침 목욕탕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활보하는 사람들 순한 양 머리 하고 지은 죄 불린다 삼삼오오 건식 습식 오가며 묵상하다 찬물 바가지 세례받고 탕 속에 들어앉은 저 하얀 발목들 시계추 같은 믿음 생활 회개하며 온몸 담가 보지만 금세 턱턱 막히는 숨통 세신 탁자에 죄 펼쳐 놓으면 은밀한 곳의 묵은 죄까지 닦아 세상 시원하게 긁어주시는 손길 지나간 자리마다 새겨지는 하나님, 하나님 음성 탕자야 너는 내 아들이라.

詩, 좋은 글 ... 2023.10.12

[봄바람]

[봄바람] 봄바람 현순애 집 나갔던 강생이 지난 계절 어디서 쏘다니다 왔는지 묻지 않기로 하자 한때 광야에서 드넓은 초원에서 갈기 휘날리던 수컷이다 명지바람 꽁지 붓끝에 묶어 탱탱이 부푼 젖가슴 건들건들 희롱하는, 허공에 대고 속살 여는 태어나는 것들의 아비다 봄 물결 출렁이는 목덜미 붉은 어린 사월이 초상 수채화로 완성하고 홀연히 떠나가는 화공이다 싱싱하게 물오르는 오월이년 엉덩짝 그리며 지느러미에 근육 만들고 있다는 풍문, 뜨겁다. 현순애 시인

詩, 좋은 글 ... 2023.10.08

[피아노]

[피아노] 피아노 현순애 나를 연주하는 이 누구인가 쌓인 먼지 털어내고 강하고 부드럽게 나를 조율한다 예민하게 반응하던 감성의 조율기 늘어지고 녹슨 선 앞에서 돌려 감는 손끝에 닿는 이성의 음감 어줍다 곡 하나 제대로 완주할 수 있을까 달려온 세월이 건반 뒤에서 해머처럼 종주먹 쥔 채 주름살로 늘어진 현 앞에 서 있다 헝클어진 우주의 입술 열어 치열 고른 여든여덟 계단 무지개빛 옥타브 자유롭게 발 디뎌보면 세상 아우르는 섬세한 숨결 슬픔도 기쁨도 우울도 환희도 모두가 물결 따라 체득하는 일이다 플랫 되는 감정 올려잡고 깊게 지르는 공명 때론 선율로, 때론 화음으로 하나 되는 하모니 천상으로 오르는 희고 검은 계단에 새겨지는 이름 하나 피아노포르테.

詩, 좋은 글 ... 2023.09.20

[달팽이]

[달팽이] 달팽이 현순애 교과서 밥 말아 먹어 길 어둑한 여자 웅크렸던 어둠 둥글게 말아 지고 촉수 내밀어 온몸 밀어 홍등가 불빛 더듬는다 눅진한 골목 찾아드는 허기진 군상들 술을 마실까, 여자를 마실까 끈적대는 밤 웃음 팔고 사는 홍등 불빛 아래 고단했던 하루 뜨겁게 배설해 놓고 가벼워진 지갑들 휘적휘적 갈지자 그리면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등짐 진 채 이우는 달그림자 베고 새벽 누인다. 시인 현순애 [출처 : 뉴스앤북]

詩, 좋은 글 ... 2023.09.13

[칼로 물 베기]

[칼로 물 베기] 칼로 물 베기 현순애 우리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예보는 빗나가지 않아 냉랭한 공기가 밀어 올린 전선에 천둥 번개 친다 휘모리장단으로 뼛속까지 꽂히는 물방울들 가려운 등 시원하게 긁어주던 당신은 빗발치는 한랭전선의 차가운 소나기 바닥을 알 수 없는 표정 사이 무성하게 자란 가시나무숲에서 당신은 붉으락, 나는 푸르락 읽히지 않는 먹구름 속에서 당신은 각을 세우고 뿔 움켜쥔 나는 빙점에 서 있다 얼음장 밑에서도 물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은 잡은 손 놓지 않기 때문이리 모래 둔덕에 서로의 허물 하얗게 묻어두고 갈댓잎에 울음 파랗게 매달고 가기 때문이리 비등점 향해 치닫던 세 치 혀의 어둡고 차가웠던 서로의 문장 냇물에 풀어 보면 물감 퍼지듯 서로에게 스미는 당신과 나의 사랑 칼로 다시 물 베어..

詩, 좋은 글 ... 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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