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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
[출처 : 서울경제]
하이힐
현순애
여자라고 지각하던 아찔한 스무 살은
몇 센티 높아진 자신감으로
당당히 세상과 마주했지
밋밋한 옷도 미니스커트로 둔갑시키는
에스라인, 무척이나 도도했지
코쟁이보다 코가 더 높고 성깔 뾰족한 내가
거리를 콕콕 쪼고 다니면
씰룩한 걸음걸이에 뭇 사내들 쓰러지기도 했지
순진한 발가락 옥죄고
발꿈치 물어뜯겨 피 보고 나서야
내 실체 알았으니, 내 스무 살
그녀와의 동거는 참으로 애증 관계였지
그럼에도 늘씬하게 착시 일으키는 곡선 포기하기란
우리 아버지 담배 끊기보다 더 힘든 일이어서
나는 늘 중독된 채 살았지
하염없이 비 쏟아지던 어느 날
결국 내 위선 보내기로 했지
버스 승강장 옆, 스무 살을 벗어
빗물에 실려 보내며 한없이 서러웠지
10센티는 더 가식적이었던
젊은 날의 초상이 떠나가고 있었지.
현순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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