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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물 베기]
칼로 물 베기
현순애
우리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예보는 빗나가지 않아
냉랭한 공기가 밀어 올린 전선에 천둥 번개 친다
휘모리장단으로 뼛속까지 꽂히는 물방울들
가려운 등 시원하게 긁어주던 당신은
빗발치는 한랭전선의 차가운 소나기
바닥을 알 수 없는 표정 사이
무성하게 자란 가시나무숲에서
당신은 붉으락, 나는 푸르락
읽히지 않는 먹구름 속에서 당신은 각을 세우고
뿔 움켜쥔 나는 빙점에 서 있다
얼음장 밑에서도 물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은
잡은 손 놓지 않기 때문이리
모래 둔덕에 서로의 허물 하얗게 묻어두고
갈댓잎에 울음 파랗게 매달고 가기 때문이리
비등점 향해 치닫던 세 치 혀의 어둡고 차가웠던
서로의 문장 냇물에 풀어 보면
물감 퍼지듯 서로에게 스미는 당신과 나의 사랑
칼로 다시 물 베어보면
우리의 경계는 또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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