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 / 그래픽 = 진봉기
전기차, 구리 코일 깔린 길 달리면 무선 충전돼요
충전 도로, 2018년 스웨덴에 첫 설치
폐플라스틱으로 친환경 길도 만들어
車 배출 가스 줄이는 기술도 개발 중
인체에서 혈액이 지나다니는 길, 바로 혈관이에요. 도시에도 혈관이 있어요. 바로 도로예요. 혈액이 잘 순환해야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듯, 도시가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도로가 중요해요. 최근엔 전기차나 자율 주행차 같은 새로운 차량과 이동 수단이 등장하면서 도로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어떤 기술이 어떻게 도로를 바꿔 놓고 있는지 알아봐요.
도로가 많으면 교통이 원활해질까
도로는 사람 · 차 등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넓은 길을 말해요. 단순히 차와 사람이 지나다니는 공간일 뿐 아니라, 다양한 장소와 사람을 연결하는 통로죠. 도로를 통해 사람들은 여행을 하고, 교역을 하고, 전쟁을 하기도 합니다.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교통 체증이 심하면 이런 생각을 하죠. '도로 수를 늘리면 교통 체증이 해소되지 않을까.' 하지만 '브라에스 (독일 수학자)의 역설' 에 따르면, 도로 수를 늘리거나 폭을 넓히면 교통 체증이 더 심해진대요. 반대로 도로를 축소하거나 폐쇄하면 묘하게도 교통 흐름이 빨라진다고 해요. 새로 도로가 생기면 그 길로 가는 게 빠를 거라 생각한 운전자들이 몰려 결국 체증이 발생하기 때문이래요.
실제로 서울시는 10여 년 전부터 매년 고가도로를 하나씩 철거하고 있어요. 철거 전후 차량 속도를 비교해 본 결과, 철거 후 주변 교통 흐름이 좋아진 경우가 훨씬 많았다고 해요. 이는 '도로 다이어트' 가 갖고 있는 아주 독특한 특징입니다.
사고를 줄이기 위한 도로 속 원리
교통공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한 차선에서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자동차 수는 시간당 1800대예요. 자동차가 2초에 1대꼴로 지나가는 속도죠. 이 정도는 돼야 운전자가 앞차 움직임을 파악하면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대요. 이 이상 자동차가 많아지면 도로가 막히고 사고 위험도 커진대요.
실제로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이 늘면서 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사고 발생률을 줄이기 위해 도로에는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어요. 그중 하나가 선 (line)이에요. 신호등이 필수인 도심 도로는 보통 직선 위주로 설계돼 있어요. 신호 연동이나 방향에 직선 도로가 유리하기 때문이에요. 또 출발지와 목적지가 최단거리로 이어져야 이동 비용이 가장 적게 들거든요.
그런데 직선 도로를 오래 달리면 운전자는 주의력이 떨어지고 지루함을 느껴 졸음운전을 하게 돼요. 이로 인해 사고를 내기 쉽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해요. 이 때문에 직선 구간이 긴 고속도로에선 적당한 지점에서 완만한 곡선이 이어지도록 설계하죠.
이때 곡선 구간을 빨리 돌면 자동차가 원심력(물체가 원운동을 할 때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작용하는 힘)에 의해 도로 밖으로 밀려날 수 있어요. 이 원심력에 저항할 수 있도록 곡선 바깥쪽을 약간 높게 만들고, 그래도 부족하면 마찰력이 큰 재료로 도로를 포장해요.
평평하게 보이는 직선 도로에도 약간의 경사각이 있어요. 도로 표면에 빗물이 남아 있으면 자동차가 미끄러지기 쉽기 때문에 빗물이 고이지 않도록 중앙선을 높이고 도로 좌우를 기울이지요. 세계적으로 직선 도로의 좌우 경사는 운전자가 느끼지 못하도록 1.5 ~ 2%로 정해져 있어요.
지나만 가도 무선 충전되는 전기 도로
이제 도로는 배터리 충전소로 발전하고 있어요. 전기차를 몰고 도로 위를 달리기만 하면 배터리가 충전되도록 하는 거죠. 이미 스웨덴 · 미국 · 이스라엘 · 독일 등 세계 여러 나라가 1 ~ 2㎞의 짧은 구간에 무선 충전 패드를 설치한 전기 도로를 짓고 있어요.
전기 도로는 보통 전자기 유도 방식으로 건설돼요. 전자기 유도는 자기장 변화로 전류가 흐르는 현상이에요. 이를테면 도로에 구리 코일이 든 충전 패드를 매립하고 전력을 연결하면 구리 코일에 전류가 흘러 자기장이 형성돼요. 이 코일 위 도로를 전기차가 달리면 차 바닥 부분에 장착된 '전자기 유도 충전 수신기'가 전력을 공급받아 차 배터리가 충전되는 원리예요.
세계 최초 전기 도로는 스웨덴에서 개통했어요. 2018년 4월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 근처에 약 2㎞ 길이 시범 전기 도로를 구축했어요. 2021년 1월엔 남동부 발트해에 있는 섬 고틀란드에 무선 충전 도로 1.65㎞를 건설했죠. 이 도로에서 40t급 전기 트럭이 주행했더니 평균 70㎾ 전력을 공급받으며 최대 시속 80㎞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해요. 현재 상용화된 급속 충전기 속도와 맞먹는 수준이에요.
미국은 올해 완공을 목표로 미시간주 최대 도시 디트로이트에 1.6㎾ 전기 도로를 구축하고 있어요. 미국 최초의 전기차 무선 충전 도로예요. 이후 플로리다 · 인디애나 · 펜실베이니아 · 유타주에 무선 충전 도로가 건설될 예정이에요. 전기 도로가 곳곳에 깔리면 운전자가 충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 크기도 줄어들 거예요.
미래 도로는 친환경을 꿈꾼다
세계가 꿈꾸는 미래 도로는 친환경 도로예요. 인도 티아가라자르공대 라자고파란 바수데반 교수팀은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포장도로를 연구 중이에요. 폐플라스틱을 자갈과 섞어 섭씨 170도로 가열하면 자갈에 플라스틱이 코팅되는데, 이를 아스팔트에 섞어 도로를 포장하는 거예요. 그러면 환경을 파괴하는 아스팔트 사용량 15%를 줄일 수 있고, 골치 아픈 플라스틱 쓰레기도 처리할 수 있어 일석이조죠.
캐나다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를 수산화칼륨 코팅 박막 (薄膜)에 통과시켜 탄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기술을 개발해 시험 중이에요. 이 박막을 도로에 깔면 차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죠. 도로에서 발생하는 자동차 배출 가스가 사라지면 한결 숨 쉬기 편하게 될 거예요.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9월 19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