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 "어찌 이런 나라가 있습니까?"
우리는
그 시대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고종 정권
賣 國
무능 + 부패 = 매국
'모든 끝의 원인은 시작이다'
적폐 청산
나라에만 이롭고 백성에게 해가 된다
[利於國而害於民 리어국이해어민]
이때 대원군이 설치한 것은 좋고 나쁜 것을 막론하고 모두 개혁하였다.
- 황현, 매천야록
3. 독재와 폭정
갑신정변에서 동학농민혁명까지
개혁 개방
개혁 : 국내 모순 해결
개방 : 국제관계 + 국가 안보 확인
19세기
개혁 : 노론 + 민씨 > 인재 Pool
노론
권력 확장의
파트너
면암 최익현(1834~1907)
"지금 옛 죄를 사면해 준 사람들 중에 잘못 사면한 자가 있는데, 역적들 중에서도 더욱 심한 한효순과 이현일과 목내선이다.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사이 큰 윤리를 무너뜨리고 공정한 원칙을 어긴다면 이보다 더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이 없다."
남 북인 관직 재박탈 + 만동묘 부활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최익현 '지부상소'
사전
지부상소持斧上疏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머리를 쳐 달라는 뜻으로 도끼를 지니고 올리는 상소.
"필경 찬탈의 변이 조정의 환국換局으로 변하여 서인은 일망타진될 것이고, 서인이 모두 섬멸된다면 (서인의 정신적 지주인) 이이와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 제현은 그 관작과 시호가 깎여 문묘에서 내쳐질 것이고 (효종 때 남인 우두머리였던) 윤휴의 귀신이 우뚝 대종사가 될 것이다."
김평묵 '척양대의' (1876)
1881년 '척사윤음'
"선비의 갓을 쓰고 선비의 옷을 입고 공맹의 가르침을 강론하고 정주의 학설을 외우는 사람이 진실로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할 때에 (중략) 민심은 스스로 안정되어 편안해지고 순박한 종속이 이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리라."
1882년 '임오군란'
1882년 '죄기윤음'
1. 토목공사 2. 화폐 정책 3. 내탕고 허비
4. 종척신 우대 5. 뇌물과 탐학 6. 시장위축
"무슨 면목으로 온 나라의 신민들을 다시 대하겠는가? 대소 인민들은 내가 종전의 과오를 버리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것을 허락하려는가?"
"훗날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들이 잘 살며 다 같이 태평세월을 누릴 때에 가서도 지금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1884년 12월
'갑신정변'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박영효
박규수 제자들
- 청으로부터 독립
- 부패 정권 타도
- 급진 쿠데타
청나라 속국이라 스스로 불러온 사실이 부끄럽다. 나라가 떨쳐 일어나지 못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 굴레를 벗어던지고 완전 자주국이 되어야 한다. 저들을 섬기는 현 정부 인사들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주상께서는 "경이 품고 있는 마음을 내가 잘 알겠다. 무릇 국가 대계에 관계되는 일은 위급할 때에 경의 대책에 일임할 터이니 경은 다시 의심하지 말라" 하셨다.
김옥균
1884년 5월 청불전쟁(베트남)
조선 주둔 청군 3000명 중 1500명
베트남 투입
권력 제한 필연
원세개의 淸軍
개화파 도륙
1884년 '갑신정변'
실패 원인
- 무기고 녹슨 소총
- 청나라 군사 진입
- 고종의 변심
- 과격한 행동
또 다른 끝의 원인
1. 개화파 멸족
2. 권력의 공고화 = 개혁의 후퇴
3. 1885년 천진조약 > 청일 공동 출병
> 동학 농민 대학살
1884년 '상참 윤음'
1. 인재 등용 실패 2. 사무 간섭
3. 간신 척결 4. 재물 탐욕
5. 대신 의견 무시 6. 거짓 없는 국정
원래 좋은 법과 훌륭한 규정이 있는데 준수하지 않아서 폐단이 생겨나게 된 겁니다.
새 법이 아니고 옛 법을 거듭 밝힌 겁니다.
진실한 윤음은 날마다 펴도 결국엔 장황하게 형식만 갖추는 것이 되고 말뿐입니다.
- 판중추부사 김병시
1885~1894
잃어버린 태평성대
영, 일, 러의 각축과 진공상태
고종-민씨 정권의 부패 지속
개혁과 개방에 대한 의지 및 실천 전무
"천조天朝를 섬겨온 지 200여 년이 되므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황은皇恩을 입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 1886년 고종이 원세개에게
노론 '친구'
소론 '저쪽'
남인과 북인 '그놈'
1889년 5월 노론 영수 송시열 비난한
지평(양평) 유생 한용석
>>> 유림 상소와 노론 대신들 요구에
신지도 유배 위리안치
1899년 4월 27일
"공부자의 도를 국교로"
1906년 4월 15일
"성균관을 수리하고 인재를 교육하라"
1894년
2월 21일 김옥균 암살
3월 9일 김옥균 부관 참시
4월 20일 홍종우 삼일제 직부전시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 폭정과 학살 -
동학혁명 / 갑오농민전쟁
● 동학 :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저항한 농민 전쟁
- 새 만석보
- 조병갑 아비 조규순 선정비
- 안핵사 이용태의 탐학
'갑오년(1894) 2월 고부 백성들이 군수 조병갑의 탐학으로 인하여 소요를 일으키자 근처 읍 사람들이 향응하였다. 이에 초토사 홍계훈에게 병사를 이끌고 가서 정벌하고 괴수들을 죽이도록 명령하였다.
- 순종실록 '고종행장'
1893년 3월 10일 보은집회
> 최제우 신원요구
1893년 3월 25일 어전회의
고종 : "동학당 소요가 매우 통탄스럽다. 지난 번에 이 무리들이 상소를 할 때 즉시 엄히 징계했더라면 혹 오늘날처럼 창궐하는 폐단은 없지 않았겠는가."
우의정 정범조 : "근본 원인은 탐관오리 때문입니다."
좌의정 조병세 : "500년 동안 가르치고 길러 온 백성들입니다. 침해를 견디지 못하고 우물에 들어가는 듯한 형상입니다."
고종 : "다른 나라 군사를 빌려 쓰는 경우도 나라마다 전례가 있다."
"중국에서는 전에 영국 군사를 빌려 쓴 일이 있었다.
동학혁명 / 갑오농민전쟁
● 원인 : 만연한 가렴주구
● 결과 : 참혹한 진압
이미 전주가 함락되고 적 세력이 성해지니 정부에서 비밀리에 원세개와 의논하고 청나라 조정에 구원을 청하였다. 청나라 조정에서는 군함을 파견하여 인천과 한성에 가서 청나라 상인을 보호하게 하는 동시에 세 군영 군사 1500명을 아산에 상륙하게 하였다.
- 고종실록 1894년 5월 1일
민영준(민영휘)
고종-민영휘의 매국 행각
민영준 : "적 세력이 갈수록 확대되니 이 사실을 (청나라에) 전보로 연락하여 원병을 요청하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 같습니다."
고종 : "대신들과 잘 상의하여 처결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민영준 : "이미 원세개와 밀약을 햇으므로 번거롭게 비밀 자리를 마련하지 마시고 대신을 불러 물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고종 : "옳은 말이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 1
「청국에의 원병 요청 논의 중지건」 1894년 5월 22일
4월 30일 어전회의, 민영휘
"탐관오리가 어디에 있나이까. 인심이 거칠어져 모두 억울하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동학도라고 하는 자들은 모두 난민이요 망명자일 뿐입니다. 이들을 설득하는데 그치고 죽이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악을 조장하는 것이 되옵니다. 폐하께옵서 만일 치안을 도모하여 기강을 바로 잡으시기를 원하신다면 속히 외국 군대를 빌려서 이들을 초멸하는 것이 옳습니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 1
「조선 정부에서 청국에 원병을 청한 문제」 1894년 6월 21일
4월 30일 어전회의, 여러 대신들
'만일 청군이 오면 일군 역시 올 것이다. 두 나라 군대가 조선에 주둔해 충돌하게 되면 그 해를 입는 것은 오로지 조선뿐'이라고 하면서 이의를 주창하였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 1
「조선 정부에서 청국에 원병을 청한 문제」 1894년 6월 21일
4월 30일 어전회의, 고종
"반대 논의도 좋기는 하지만 장차 벌어질 일을 헤아릴 수가 없고 모든 대신들이 마땅히 원병을 청해야 한다고 하니 청관淸館에 이를 속히 알리도록 하라."
'고종시대사' 3집 1894년 고종31년 4월 30일
5월 14일 민영휘-원세개 대화
"다행히 천병天兵이 와서 위세를 떨쳐 적이 풍문을 듣고 간담이 서늘하여 겁을 먹게 되었다. 경군이 용맹할지라도 미친 벌狂蜂과 궁한 개떼窮狗가 어찌 또 독毒이 없겠는가. 오늘 흩어진 것은 오로지 천병이 왔기 때문이니 이 황은皇恩은 모두 대인大人이 진력한 덕택이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 1
「일본 군대 입경에 관한 한국조정 및 경성 내 상황 탐보」 1894년 6월 20일
5월 12일 고종 담화문
'천도天道를 어기고 간사하고 망령된 행동을 하면서 죽어도 깨달아 뉘우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죽여서 제거하고 베어서 없애지 않을 수 없다.'
1894년 고종 31년 5월 12일 '고종실록'
5월 20일 영돈녕부사 김병시가 고종에게
"어찌 이런 나라가 있습니까!"
寧有如此國乎
'갑오실기' (동학농민혁명자료총서) 갑오년 5월 20일
청나라 군사 파병
일본군 파병
청일전쟁 발발
우금치 이후 동학군 궤멸
청일전쟁 평양전투 : 조선군이 청일 양쪽 투임됨
1895년 7월 3일 동학 관련자 사면
민영준, 조병식, 민영주, 민형식, 김세기, 민병석, 이용태, 김문현, 이용직,
조필영, 조병갑, 민응식, 김창렬, 조만승, 임치재, 서정철, 심능필, 조준구,
민영순 외 260명
1898년 1월 2일 법부 인사
4품 조병갑 법부민사국장
동학군 재판 기록
1898년 7월 18일
2대 교주 최시형 사형
1898년 7월 18일
판사 조병갑
동학혁명 / 갑오농민전쟁
● 원인 : 만연한 가렴주구
● 결과 : 참혹한 진압
● 모순 잔존 및 심화
● 나라 고물됨
4. 반동의 시작 : 갑오개혁의 좌절과 대한제국
https://www.youtube.com/watch?v=g5hQ1yLa4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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