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 고종황제의 끔찍한 짜르 독재, 대한제국
매국노 고종
우리는
그 시대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1897년 10월 12일
大韓帝國
광무개혁
수수와 반동
"모든 끝의 원인은 시작이었다"
1873년 친정에서 황제까지
1. 군사
2. 경제
3. 독재와 폭정
4. 반동의 시작 : 갑오개혁의 좌절
독립협회와 독립문(1896년)
대한제국 1897년 10월 12일
경북궁이 아닌 덕수궁(경운궁)
"혹자는 경복궁과 창덕궁 두 궁궐이 외국 공관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 있어 의외의 변란이 발생할까 두려우니 새 궁궐을 짓지 않을 수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 '매천야록'
● 10월 1일 > 위치 선정
● 10월 7일 > 천제 담당 사제서 설치
● 10월 10일 > 대보단 고명 상소
● 10월 11일 > 고종 답사 및 밤샘
● 10월 11일 > 국호 '대한' 결정
● 10월 12일 > 천제 / 제국 선포
● 10월 13일 > 황제 선포
독립협회 1898년 3월 ~ 12월
● 3월 10일 > 만민공동회
● 5월 14일 > 서재필 미국 복귀
● 10월 28일 > 관민공동회 '입헌군주정' 언급
● 11월 4일 > 독립협회 해산 명령
● 12월 10일 > 최익현, 서재필 처형 상소
● 12월 25일 > 독립협회 임원 체포 / 와해
권력 독점 1899년
● 5월 > '연좌제' 부활 시도
> 각국 공사 연서로 좌절
● 7월 2일 > '법규 교정소' 설립
● 8월 17일 > 첫 법령 발표
대한국 국제(國制)
제1조 대한국(大韓國)은 세계 만국에 공인된 자주 독립(自主獨立)한 제국(帝國)이다.
제2조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정치는 과거 500년간 전래되었고, 앞으로 만세토록 불변할 전제정치다.
제3조 대한국 대황제는 무한한 군권(君權)을 지니고 있다. 공법에 이른바 정체(政體)를 스스로 세우는 것이다.
제4조 대한국 신민이 대황제가 지니고 있는 군권을 침손(侵損)하는 행위가 있으면 이미 행했건 행하지 않았건 막론하고 신인의 도리를 잃은 자로 인정한다.
제5조 대한국 대황제는 국내의 육해군(陸海軍)을 통솔하고 편제(編制)를 정하며 계엄(戒嚴)과 해엄(解嚴)을 명한다.
제6조 대한국 대황제는 법률을 제정하여 그 반포와 집행을 명하고 만국(萬國)의 공통적인 법률을 본받아 국내의 법률도 개정하고 대사(大赦), 특사(特赦), 감형(減刑), 복권(復權)을 한다. 공법 이른바 율례를 자체로 정하는 것이다.
제7조 대한국 대황제는 행정 각부(各府)와 각부(各部)의 관제와 문무관(文武官)의 봉급을 제정 혹은 개정하며 행정상 필요한 각 항목의 칙령(勅令)을 말한다. 공법에 이른 바 치리(治理)를 자체로 행하는 것이다.
제8조 대한국 대황제를 문무관의 출척(黜陟)과 임면(任免)을 행하고 작위(爵位), 훈장(勳章) 및 기타 영전(榮典)을 수여 혹은 박탈한다. 공법에 이른바 관리를 자체로 선발하는 것이다.
제9조 대한국 대황제는 각 조약국에 사신을 파송주재하게 하고 선전(宣戰), 강화(講和) 및 제반 약조를 체결한다. 공법에 이른바 사신을 자체로 파견하는 것이다.
대한국 국제(國制)
제2조 전제정치(專制政治)
제3조 대황제는 무한한 군권(君權)
제4조 대황제의 군권을 침손(侵損)하는 행위
제5조 대황제는 육해군 통솔
제6조 대황제는 법률 제정 반포 집행
제7조 대황제는 각부(各府) / 각부(各部) 관제 제정
제8조 대황제는 문무관 출척(黜陟)과 임면(任免)
제9조 대황제는 선전(宣戰) 강화(講和) 약조 체결
제2조 전제정치(專制政治)
제3조 대황제
제4조 대황제
제5조 대황제
제6조 대황제 인민의 생사 탈여권
제7조 대황제
제8조 대황제
제9조 대황제
대한국 국제(國制)
"군주가 모든 권한을 장악하며 이 헌법 승인하에 그가 커다란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인민에게 이해시키려고 합니다.
'군주의 권리는 무제한적인 것이다'라고 하고, '이 헌법에 거역하는 모든 신민은 모든 시민권을 박탈하고 더 나아가 추방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절대군주 지배하에 이 나라가 현재 혼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 외교보고서(1885~1913) 115. 「한국의 신헌법」>
대한국 국제(國制)
입법에 의한 독재의 완성
경제 독점
황실 직속 내장원 확대
- 내장원경
- 탁지부 전환국장
- 광무감독
- 탁지부 협판(차관) > 대신서리
이용익
경제 독점
황실 직속 내장원 확대
1905년 황실 수입 491만원
> 국고 165만원
> 내장원 수입 326만원
경제 독점
황실 직속 내장원 확대
1902년 8월 관리들 월급 미지급 사태
탁지부(이용익) > 내장원에 은화 8만원 대출
내장원(이용익) > 그 해 세금이 징수되는 대로 즉각 상환하라고 요구.
부패
매관매직
'관직 임용에 뇌물 수수 관행이 너무도 심하여, 이를 작업을 삼는 일본인 임대업자까지 등장했다.'
- 미국인 고문 윌리엄 샌즈
부패
무명 잡세
갑오개혁 : 조세법정주의
- '세금은 모두 법령으로 정한 비율에 의하고, 함부로 명목을 더 만들어 불법 징수할 수 없다.'
무용지물 :
- 물고기, 소금, 선박, 인삼, 땔감, 풀, 갈대, 소나무, 밤, 대나무, 완도 우뭇가사리와 서천 연어와 함경북도 염전
- 징수는 지방관 : 배달사고
군사독점
원수부 창설 및 군사규모 확대
군사독점
원수부 창설 및 군사규모 확대
1902년 지방 진위대 7600명 / 친위대 6000명 평양진위대 3000명
1902년 군부 예산 518만원
1902년 국가 예산 1421만원
군사독점
무기수입
1899년 프랑스 소총 1만정
1901년 독일 소총 300점 + 탄알 1만발
1901년 일본 소총 1만정
1902년 영국 대포
- 맥심 기관총 6정
- 야전포 4정
- 산전포 8정
1903년 프랑스 소총 1만2000정
군사
막강한 군사 대국
무기 쇼핑
무기체계 대혼란
전투 수행 불가능
군사
측근 중심의 무절제한 군부 인사
1899~1907년 군부대신 34명
1899~1904년 원수부 군무실 총장 24명
군사
측근 중심의 무절제한 군부 인사
육군참장 백성기 상소
"장수는 병졸을 알지 못하고 병졸은 장수를 알지 못한다. 어느 겨를에 은혜와 위엄과 교육을 시행하겠는가."
1900년 고종 37년 4월 17일 '고종실록'
군사
치안과 황실 수비
- 혼잡한 무기체계
- 와해된 군령
- 비군사적 운영 : 백성 향한 총구
대한제국 선포 사흘 뒤
1897년 10월 15일 탁지부
- "곳간이 텅 비어 군색하기 짝이 없다"
- 의정부에 예비비 1만 원 긴급 요청
- 황제 어보 제작용 황금 1000냥 포함
공적 황실 사업비는 모두 탁지부
만성 재정적자 > 민간에 의시 전가(조세)
> 동전 발행 >>> 악순환
비자금
독립자금?
사적 부패?
광무개혁
정상적 정부의 일상적 행위
- 철도
- 전철 / 전기
- 도로 정비 / 하수구 정비
- 공장과 상공학교
- 의학교
개혁 = 자금
광무개혁
1896년 세출예산 631만 6831원
- 학부예산 12만 6752원(2.0%)
- 황실비 50만원(7.9%)
1903년 세출예산 1076만 6115원
- 학부예산 16만 4743원(1.5%)
- 황실비 100만 4000원(9.3%)
광무개혁의 실체
1902년 10월 19일 경운궁 중화전 완공
"제왕의 궁실을 이렇게 해야 임금의 지위가 더 없이 엄하여 높고 낮은 구별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니라."
광무개혁의 실체
"1894~1904년 사이 발전상에 놀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 결과는 실망스럽다. 감옥에는 중세의 공포가 부활했고 백성의 목숨과 재산은 군주와 그 측근에게 내놓고 있다.
- 영국 언론인 메켄지
개혁을 위장한 부패와 사치
- 고종 생일 파티
- 고종 칭경40주면 파티
- 경운궁 중건 공사
- 왕실 각종 생일 파티
- >>> 1897년~1904년 총 593만원
- 평양 행궁(풍경궁) >>> 216만원
809만원
1902년 세출예산 : 758만원
개혁을 위장한 부패와 사치
양무호
개혁을 위장한 부패와 사치
1904년 6월 제물포(?) '하퍼스'지 러일전쟁 종군기자
작심한 상소
"백성이 도탄에 빠진 것이 전보다 더 심해졌다. 백성이 들고 일어나 살 길을 도모하는 것이 괴이할 것이 있겠는가."
1904년 9월 2일 의정부참정 신기성
러시아제국 황제 니콜라이에게
거지제국 황제 고종, 1905년
"2천만 국민이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닭과 개들이 지지 않을 정도로 살 수 없을 지경이다. 원인은 무능력과 무방비이며 우리의 통치가 근본 원인이다."
호러스 알렌이 친구에게, 1905년
"황제는 로마를 불태우며 놀아난 네로와 다를 바 없이 무희들과 놀면서 시간을 축낸 지도자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이제 음울하고 차가운 침묵의 아침에 돼 버렸다."
광무제 고종
매국노
"모든 끝의 원인은 시작이었다"
황제가 집을 버린 7관파천(~1905)
https://www.youtube.com/watch?v=7xjctPQPd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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