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좋은 글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소나기]

드무2 2024. 11. 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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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일러스트 = 양진경

 

 

 

소나기

 

노랑멧새들 총알처럼 덤불에 박히고

마루 밑 흰둥이는 귀를 바르르,

 

갑자기 컴퓨터 화면이 시커메졌다

 

화악, 입안 가득 처오르는

화약 같은 생흙 냄새

 

세상이 아픈 자들, 대속 (大贖)의 맨발들이 지나간다

 

전동균 (1962 ~)

 

 

 

 

곧 처서이지만, 중천에 솟은 해는 여전히 화염을 세게 뿜는다. 그나마 소나기가 대지의 더운 기를 조금은 덜어낸다. 여름 소나기는 갑자기 쏟아지다가 뚝 그친다. 우레가 울어 예고를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대비할 겨를을 주지 않고 내리므로 여기저기 소란이 일어난다. 멧새는 황급히 탄환처럼 전속력으로 날아간다. 털빛이 흰 개도 빗소리에 화들짝 놀라 마루 밑에 들어가 비를 피한다. 세상은 일순에 정전이 된 듯 캄캄해진다.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져 내린 땅바닥에서는 흙냄새가 물큰물큰 올라온다.

그런데 시인은 왜 “화약 같은 생흙 냄새” 라고 썼을까. 아마도 이 세계에 내리는 소나기와 흙냄새가 이제는 되레 낯설게 여겨지고 문명의 쇳내마저 풍겨나게 되었으니 그 씁쓸한 심사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편 시인은 생땅의 흙바닥에 세차게 떨어지는 빗줄기를 망연히 바라보면서 삶의 바닥을 생각하고, 아픈 사람을 생각하고, 또 종교적인 희생과 어떤 구원을 떠올리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유는 시 ‘배론’ 에서 “좀더 낮게 / 좀더 아프게 /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염결한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8월 19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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