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전주여행] 01
광명역 KTX 승차 플랫폼 ㅡ 12호 열차 위치
1일차 (2024년 12월 16일 월요일)
일정 : 2024년 12월 16일 (월) ~ 2024년 12월 18일 (수) (2박 3일)
출발 : 2024년 12월 16일 월요일 KTX #505열차 광명역 08시 58분 출발 ~ 10시 18분 전주역 도착
도착 : 2024년 12월 18일 수요일 KTX #520열차 전주역 19시 30분 출발 ~ 20시 55분 광명역 도착 열차였으나 일정이 앞당겨져 열차를 바꿔 KTX산천 #518열차로 17시 57분 전주역을 출발하여 19시 18분 광명역에 도착하여 귀가
광명역에 도착하는 KTX #505 열차
광명역 출발
오송역 도착
오송역
오송역 출발
공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간밤에 눈이 내렸나 보다
공주역 도착
익산역 도착
익산역 출발
전주역 10시 25분 도착
전주역
전라선 전주역사 증축공사가 한창이다.
전주역에서 숙소(전주한옥마을 옆에 있는 라한호텔)까지 걷기로 함. ㅡ 한일장신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全州中央天主敎會
공구거리 상징물
하모니
작품 하모니는 톱, 펜치, 몽키스패너, 스패너, 톱니바퀴 등 공구를 형상화하여 하나의 조형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객사길
전주 풍패지관
전주 풍패지관 Pungpaejigwan, Jeonju
보물
전주 풍패지관은 전주에 온 관리나 사신이 머물던 전주 객사 (客舍)이다. 조선 시대에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으며,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는 축하 의식을 행하였다. 왕을 상징하는 전패 (殿牌)를 모시는 '주관 (主館)' 과 숙소로 사용하던 '익헌 (翼軒)' * 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관의 처마 아래에는 '풍패지관' 이라고 쓴 거대한 편액 ** 이 걸려 있는데 이는 전주 객사의 위상을 잘 보여 준다. 풍패 *** 란 건국자의 고향을 이르는 말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인 전주를 풍패지향이라 하였는데 이를 본따 전주 객사의 이름도 풍패지관이라 한 것이다.
전주 풍패지관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성종 4년 (1473년)에 전주사고를 짓고 남은 목재로 서익헌을 고쳐 지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597년에 발발한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었고, 고종 9년 (1872년)에 보수공사를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도로 확장 공사로 동익헌을 철거하여 주관과 서익헌만 남아 있었으나, 1999년에 동익헌을 복원하였다. 현재는 주관과 동 · 서익헌, 객사를 관리하는 수직사가 남아 있다.
* 익헌 : 본 건물의 좌우 양쪽에 딸려 있는 건물
** 편액 : 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
*** 풍패 : 중국 한나라 고조가 태어난 곳의 지명
풍패지관 현판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가족회관
전주비빔밥의 세계화에 앞장선
가족회관
1979년 가을!
옛 전라감영이었던 이곳에 어머니는 가족회관의 문을 여셨습니다.
어릴적부터 음식에 관심이 많아 손맛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어머니는 전주의 중심적 위치에 가족회관의 문을 열며 전주의 전통과 인심을 밥상 가득 올려 내셨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음식을 준비하듯 좋은 음식을 만들고자 붙여진 이름 가족회관!
그때부터 이곳에서 어머니의 비빔밥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옛날식 전주 비빔밥은 큰 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 갖가지 나물을 얹어 고추장으로 비벼먹는 서민적인 음식이었으나 가족회관의 전주 비빔밥은 재료를 신선로 형태로 돌려 담고 재료의 색깔을 선명하게 살림으로써 품격있는 음식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사골 육수를 고은 물로 밥을 지어 차별화를 두었으며 비빔밥의 중앙에 신선한 육회와 계란 노른자를 얹어 맛과 멋, 영양의 삼박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화합의 음식으로 전주 비빔밥을 대표하는 표준이 되었습니다.
'본대로, 먹은대로, 느낀대로' 하면 된다. 어머니가 평생동안 해 오신 말씀입니다.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서 온 몸에 섭취되어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니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야 한다' 어머니의 가르침입니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어머니가 제게 해주신 음식 그대로 본대로, 먹은대로, 느낀대로 어머니 음식의 대를 이어가겠습니다.
전주음식명인 1호 / 전라북도무형문화재 39호 / 대한민국식품명인 39호 어머니의 인생은 비빔밥 인생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비빔밥에 헌신하는 인생을 사셨던 자랑스런 어머니!
그 비빔밥 사랑의 대를 잘 이어 가겠습니다.
3대를 잇는 전주비빔밥 명가
ㅡ 가족회관 올림 ㅡ
기본 반찬
육회비빔밥 2개와 떡갈비 1개 주문 (계란찜은 기본)
無時禪 無處禪
때 없는 마음공부 어디나 선방
전통식품의 맥을 이어가는 장인
대한민국식품명인
서울 · 경기도
7. 이기춘 / 문배주 / 경기 김포
10. 유민자 / 옥로주 / 경기 용인
12. 최옥근 / 계명주 / 경기 남양주
26. 김규흔 / 유과, 약과 / 경기 포천
29. 김순자 / 포기김치 / 경기 부천
37. 권기옥 / 어육장 / 경기 용인
38. 유정임 / 포기김치 / 경기 수원
42. 김왕자 / 노티떡, 신과병 / 경기 과천
43. 이기숙 / 감홍로주 / 경기 파주
57. 강순의 / 백김치 / 경기 광주
58. 이인자 / 해물 섞박지 / 경기 남양주
62. 서분례 / 청국장 / 경기 안성
69. 김택상 / 삼해소주 / 서울 종로
77. 문왕기 / 식혜 / 경기 성남
87. 송성자 / 가리적 / 경기 동두천
충청남 · 북도
2. 김창수 / 금산인삼주 / 충남 금산
4ㅡ가. 이성우 / 계룡백일주 / 충남 공주
11. 임영순 / 구기자주 / 충북 청양
13. 남상란 / 가야곡왕주 / 충남 논산
19. 우희열 / 한산소곡주 / 충남 서천
52. 이연순 / 승검초단자 / 충북 제천
63. 김영근 / 도토리묵 / 충남 서천
71. 정영석 / 인삼정과 / 충남 금산
78. 조정숙 / 된장 / 충북 청주
79. 김용세 / 연잎주 / 충남 당진
88. 박준미 / 청주신선주 / 충북 청주
전라남 · 북도 · 제주도
1. 조영귀 / 송화백일주 / 전북 전주
9. 조정형 / 전주이강주 / 전북 전주
14. 홍쌍리 / 매실농축액 / 전남 광양
18. 신광수 / 야생작설차 / 전남 순천
21. 유영군 / 창평쌀엿 / 전남 담양
22. 양대수 / 추성주 / 전남 담양
33. 박순애 / 엿강정 / 전남 담양
35. 기순도 / 진장 / 전남 담양
36ㅡ가. 조종현 / 순창고추장 / 전북 순창
39. 김년임 / 전주비빔밥 / 전북 전주
40. 한안자 / 동국장 / 전남 해남
41. 임장옥 / 감식초 / 전북 정읍
44. 송화수 / 홍삼 / 전북 진안
47. 전중석 / 초의차, 초의병차 / 전남 무안
48. 송명섭 / 죽력고 / 전북 정읍
50. 윤왕순 / 천리장 / 전북 완주
53. 김영숙 / 복령조화고 / 전남 진도
54. 서민수 / 황차, 말차 / 광주 동구
60. 안부자 / 유과 / 전남 담양
61. 김견식 / 병영소주 / 전남 강진
64. 강순옥 / 순창고추장 / 전북 순창
65. 백정자 / 즙장 / 전남 강진
68. 강경순 / 오메기술 / 제주 서귀포
72. 임화자 / 쇠고기육포 / 전남 함평
75. 양정옥 / 제주 막장 / 제주 서귀포
76. 오숙자 / 반지 / 광주 동구
80. 원이숙 / 쌀엿 / 전북 임실
81. 구경숙 / 기정떡 / 전남 화순
82. 박규완 / 가리구이 / 전남 담양
84. 김희숙 / 고소리술 / 제주 서귀포
85. 김순옥 / 찹쌀조이당조청 / 전남 순천
경상 남 · 북도
6. 박재서 / 안동소주 / 경북 안동
16. 박수근 / 수제녹차 / 경남 하동
17. 송강호 / 김천과하주 / 경북 김천
20ㅡ가. 김연박 / 안동소주 / 경북 안동
25. 오희숙 / 부각 / 전남 곡성
27. 박흥선 / 솔송주 / 경남 함양
28. 김동곤 / 우전차 / 경남 하동
30. 홍소술 / 죽로차 / 경남 하동
45. 성명례 / 대맥장 / 경북 청송
46. 김현의 / 찹쌀유과 / 경남 의령
49. 유청길 / 산성막걸리 / 부산 금정
51. 최명희 / 소두장 / 경북 안동
56. 정계임 / 진주비빔밥 / 경남 진주
66. 윤미월 / 배추통김치 / 경남 밀양
67. 정승환 / 죽염홍된장 / 경남 하동
73. 현경태 / 흑초 / 경북 영천
74. 곽우선 / 설현주 / 경북 칠곡
83. 최송자 / 쌀엿 / 경북 울진
86. 임경만 / 보리식초 / 경북 영천
강원도
59. 심영숙 / 유과 / 강원 강릉
70. 김명자 / 옥수수엿 / 강원 원주
백년가게
LONGㅡLASTING SMALL BUSINESS
SINCE 1979
가족회관
● 1979년 옛 전라감영터 자리에 1대 김년임 창업
● 1982년 사업자 등록
● 1996년 2대 양미 (딸) 대표 경영승계
● 2006년 전주음식명인 1호 지정
● 2008년 전북무형문화재 39호 지정
● 2010년 농림수산식품장관상 수상
● 2010년 대한민국식품명인 39호 지정
● 2018년 롯데백화점 본점 진출 (현재 직영점 6곳)
● 2020년 백년가게 선정
전주비빔밥의 세계화와 고급화에 앞장
전주비빔밥의 풍미를 좌우하는 대표 식자재인 전주콩나물과 육회, 황포묵 등 모든 재료를 국내산으로 고집하며 꼼꼼하고 엄격하게 선별한다.
이익보다는 좋은 재료와 기본에 충실하여 제대로 된 음식을 선보이겠다는 창업주의 신념이 이유 있는 고집으로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
노랗고 푸르고 붉은 비빔 재료들을 보듬은 놋그릇과 정갈하면서도 풍성한 밑반찬에선 한국적 미와 정이 느껴지고 잘 비벼진 한 숟가락에 우리 들녘의 풍미가 입만 가득 퍼진다.
김년임 명인은 오랜 기간 미국, 프랑스, 아프리카까지 수많은 나라를 돌며 전주비빔밥 시연, 한국요리 강습 등으로 전주비빔밥의 세계화에 기여하였다.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콩보다 콩나물이 몸에 좋다
머리 ㅡ 꼬리에 숙취 ㅡ 골다공증의 효능
콩보다 콩을 발아시킨 콩나물이 숙취해소와 골다공증에 효과가 있는 각종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고 (농촌진흥청 호남농업시험장 발표)
콩나물의 기능성 성분을 분석해 본 결과 콩보다 콩나물에서 "아이소플라본" 과 "아미노산" 함량이 증가해 풍산나물콩의 경우 총 아미노산 함량 361.73㎎보다 머리와 꼬리에 훨씬 능가하는 영양소를 고루 갖추었다 한다.
콩나물에 다양한 기능성 물질이 만성질환이나 질병 예방 특히 (통풍) 의 치료 효능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잔뿌리를 제거하지 말고 모든 부위를 섭취하는게 좋다 한다.
아이소플라본은 여성의 갱년기 장애를 줄이고 호르몬과 관련된 유방암, 골다공증, 관상동맥, 심장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전주 거꾸로 자란 두레박 콩나물
무공해 콩나물 재배법 발명특허 (제103342호)
이곳은 전라도를 다스린 전라감영 앞길로 감영 앞 개울에 있었던 '돌다리' 자리를 화강석으로 위치를 표시하였다.
사진 우측 건물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정문인 포정루 (布政樓)이며, 멀리 전주부성의 남문인 풍남문 (豊南門)과 전주천 넘어 초록바위로 불린 산이 보인다. 전라감영 앞 쪽으로 선정비 (善政碑)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이며, 포정루 왼쪽에 하마비 (下馬碑)가 보인다.
國家軍儲 皆靠湖南 (국가근저 개고호남)
若無湖南 是無國家 (약무호남 시무국가)
나라의 군수품을 다
호남에 의지하고 있으니
만약 호남이 없다면
곧 나라가 없는 것이다
載在李忠武公全書下卷
後學剛菴宋成鏞謹書
재재이충무공전서하권
후학강암송성용근서
이 글은 이충무공전서 하권에 실려 있다
후학 강암 송성용이 삼가 쓰다
전라감영은
조선 초기에 건립되어 전라도 (전북 · 전남 · 제주)를 관할하는 관청
선화당은 1598년 (선조 31)과 1771년 (영조 47), 1792년 (정조 16)에
중건된 후 1951년 한국전쟁 때 소실
1996년부터 전라감영 복원과 전라북도청사 이전 논의 시작
2000년 9월 8일 전라감영터 도지정문화재 (기념물 제 107 호) 지정
2005년 7월 전라북도 신청사 개청 후 복원 논의 본격화
2009년 9월 '전라감영 복원 통합추진위원회' 감영 복원 논의 구체화
2017년 11월 1일 '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위원회' 감영 복원 착공
전북의 자긍심을 드높이기 위해 전라감영 복원에 즈음하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각이 남긴 글을 새겨 비를 세우다.
2020년 8월 27일
전라북도와 전주시 공동
내삼문 內三門
내삼문은 전라감영 선화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전라감영의 정문 포정루로 들어와 중삼문을 거쳐 내삼문을 지나면 전라감사의 집무처 선화당이다. 내삼문은 솟을삼문 형태로 어칸에서 협칸, 퇴칸으로 가면서 지붕의 높이가 낮아지는 형태이다. 1884년 11월 11일에 전주를 방문한 미국 임시 대리공사 George Clayton Foulk 1856 ~ 1893는 '포정루에서 150피트정도에 첫 번째 대문 (중삼문으로 추정)과 직각으로 100피트 정도에 두 번째 대문 (내삼문으로 추정)이 있다' 라고 기록하였다.
전라감영은 조선 초부터 1896년까지 약 500년 동안 지금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제주도를 관할하던 감사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곳이다. 조선시대의 전라감영은 정문인 포정문 布政門, 감사의 집무실인 선화당 宣化堂, 감사의 주거 공간인 연신당 燕申堂, 감사 가족의 처소인 내아 內衙, 누각인 觀風閣 등 건물이 모두 40여 채가 있었다. 1896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라감영은 전라북도 도청의 행정업무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감영 건물 대부분은 근대화 과정에서 없어지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선화당도 1951년에 폭발사고로 불타버렸다.
이곳은 조선시대 전라도 행정의 중심지였으며,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 자치 기구인 집강소의 총본부 대도소 大都所가 설치된 장소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2015년에 옛 도청 건물을 철거하고, 2017년부터 전라감영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선화당, 연신당, 내아, 관풍각 등을 복원하였다.
옛 도청사의 흔적
이곳에서는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를 지나 근 · 현대까지 역사가 중첩되어 있는 것을 건물의 흔적을 통해 알 수 있다. 내삼문은 조선시대 때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1921년 도청사 흔적은 적벽돌 포장 부분이며, 화강석 판석은 1956년 도청사의 흔적이다.
가석과 폐석
가석은 섬돌 아래 왼쪽 (동편)에 설치하여 죄인들로 하여금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표석이고, 폐석은 오른쪽 (서편)에 설치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억울함을 하소연하게 하는 신문고 같은 표석이다. 가석과 폐석은 감영의 사법적 기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감사로 하여금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여 깨우치게 하고 재판을 공정히하여 억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법을 다루는 형조의 섬돌 아래에도 가석과 폐석이 있다. 『주례 周禮』에 따르면 가석은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돌로 잘못을 저지른 자들이 이를 보고 뉘우치고, 폐석은 붉은 돌로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이 이 돌 옆에 서 있으면 억울한 일을 해결해 준다고 하였다.
선화당 宣化堂
선화당은 전라감사의 집무처이다. 선화당이라는 당호는 '왕명을 받들어 교화를 펼친다' 는 승류선화 承流宣化에서 나온 말이다. 1597년 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그 이듬해 1598년 전라감사 황신 黃愼이 중건하였으며, 1771년에 전라감사 윤동승 尹東昇이 개건하였다. 이후 1792년 정조 16에 화재로 소실되어 전라감사 정민시 鄭民始가 다시 중건하였다. 선화당은 광복후까지도 남아 있었으나 한국전쟁 중 1951년 경찰청 무기고로 쓰이던 도청 문서고에서 로케트탄이 폭발하여 도청 본관과 함께 소실되었다. 선화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로 약 78평에 달하는 큰 건물이며, 전주부성내에서 객사 다음으로 컸다.
동학농민혁명과 선화당
전라감영 선화당은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동학농민군의 염원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은 정부에 폐정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이를 수용한 조선정부는 전라감사 김학진을 통하여 전봉준과 이곳 선화당에서 전주화약을 맺었다. 이후 전라도 일대에 동학농민군 자치조직인 집강소가 설치되었고, 이를 총체적으로 관리 · 감독하기 위한 대도소가 선화당에 세워졌다. 선화당은 민관상화의 기치를 내걸고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최초로 실현된 상징적인 곳이다.
선화당 현판
측우대
측우기
측우기와 측우대
측우기는 비가 내린 양을 측정하는 기구로 세종 때 처음 만들었다. 각 도의 감영과 군현에 측우기를 설치하여 강우량을 재고 농사에 활용하였다. 이 측우기는 충청감영에서 사용했던 측우기를 재현한 것이다. 측우기를 받치고 있는 측우대는 경상감영의 것을 본떠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