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02

드무2 2024. 12. 3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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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02

 

 

 

 

 

 

 

이념 갈등과 화해

 

한반도의 분단은 수많은 가족을 생이별의 고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1983년 '이산가족 찾기 특별생방송' 을 통해 10,189명이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났고, 대한민국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 말 90년대 초, 세계를 갈라놓았던 이념 갈등이 완화되며 우리나라는 공산권 국가와 수교를 맺었습니다. 화해의 분위기는 남북한 스포츠 단일팀의 결성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다섯 명의 이야기에 얽힌 갈등과 화해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남북이 단일팀으로 참가한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1991)                                                                                       KTV

 

 

 

https://youtu.be/FKUNlW5UiNM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앨범 사진

 

1991. | 현정화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현정화와 남북단일팀이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남북한은 1991년 2월 판문점 체육회담에서 탁구 단일팀 구성에 합의하였다. 남북단일팀은 결승전까지 올라 중국을 상대로 첫 두 경기는 이겼지만, 그 다음 두 경기는 아쉽게 패배하였다. 2 : 2 상황에서 마지막에 기적적인 역전승을 거둔 팀 코리아는 금메달을 따 한반도기를 가장 높이 걸었고, 경기장 내에는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한 · 소 수교 당시 크렘린 궁전에 태극기와 소련기가 함께 걸린 모습

 

국가기록원, 1990

 

 

 

 

1990년 12월 14일 크레믈린에서 노태우, 고르바초프 국교정상화 협정서명 앞줄 왼쪽 세번째 김장관

 

 

 

 

한국 ㅡ 소련 국교정상화 협정서 서명 사진

 

1990. |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

 

1990년 12월 14일, 소련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국교정상화 협정서에 서명하는 사진이다. 노태우 정부 '북방 외교' 의 결실이었다. 노태우 대통령 바로 뒤에 서 있는 사람이 김진현이다. 이 무렵 그는 한 · 소 과학기술장관 회담을 세 차례 열며 양국간의 교류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

 

 

 

 

 

 

 

KBS 이산가족찾기에서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전민조, 1983

 

 

 

 

 

 

 

『미망』 작가 노트

 

1985. | 호원숙 (수필가)

 

호원숙의 어머니인 박완서 작가가 소설 『미망』에 필요한 정보들은 적은 공책이다. 참고한 도서와 인물들의 나이 등 설정, 당시 역사적 상황이 적혀 있다. 소설 『미망』은 조선말부터 분단에 이르기까지 개성의 어느 상인 집안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다시는 갈 수 없었던 고향 개성에 대한 박완서 작가의 그리움이 담겨 있다.

 

 

 

 

 

 

 

"제 삶을 완전히 비틀어 놓은

아버지의 월북이 그때의 제게 절실했기 때문에

『영웅시대』를 쓴 것"

 

ㅡ 이문열

 

 

 

 

 

 

 

『영웅시대』 초판본

 

1984. | 이문열 (소설가)

 

이문열 자신의 가족사를 담은 소설이다. 6 · 25전쟁 당시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수시로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내야만 햇던 이문열의 기억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설에서는 사회주의자 아버지와 남은 가족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전개되며 비극적인 민조가를 풀어낸다. 이문열은 1987년과 1998년 두 차례 아버지의 편지를 받앗지만 끝내 그와 만나지는 못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잃어버린 30년> 음반

 

1983. | 설운도 (가수)

 

설운도가 KBS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때 부른 곡 '잃어버린 30년' 을 담은 음반이다. 그는 1982년에 데뷔한 후 2집 음반에 실었던 '아버님께' 라는 곡의 가사를 바꾸어 방송에서 불렀다. 첫 방송이 나간 후 반나절 안에 널리 퍼져 '최단기간 히트곡' 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 설운도는 현장 및 방송에서 매일같이 이 노래를 불러 이산가족의 마음을 적셨다.

 

 

 

 

 

 

 

 

 

 

조선일보 <나의 현대사 보물> 중 독자의 보물

 

 

 

 

1940

이상배 / 권문혁 / 박상순 / 장영태

 

 

 

 

 

 

 

1950

서민정 / 신광순 / 연규정 / 이원자 / 최상민 / 변영교 / 안성구 / 이강원 / 서동영 / 문영일 / 윤동현 / 반길현 / 조현상 / 장찬교

 

 

 

 

1960

김정일 / 이기훈 / 조이성 / 이재탁 / 권국진 / 원장희 / 도창종 / 이계섭 / 박정옥 / 윤병국 / 한정현 / 이범영 / 나동호

 

 

 

 

1970

권기대 / 이경희 / 문봉권 / 백성수 / 김정열 / 민창규 / 황병인 / 이진근 / 황기홍 / 김양자 / 권오명 / 고형필

 

 

 

 

1980

송제희 / 안동현 / 안창윤 / 이강희 / 이경재 / 이은아 / 권정식 / 장은덕 / 박재은 / 김국률 / 윤호기 / 최광익 / 문영희 / 최미옥 / 박종구

 

 

 

 

1990

강예은 / 박영애 / 한경식 / 고순자

 

 

 

 

민주화와 자유에 대한 열망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길거리로 나아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노래를 만들어 부른 사람, 문학을 통해 엄혹한 세상을 고발하는가 하면, 그림으로 사회상을 표현햇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자유로운 표현 속에서 자라나는 대중문화는 곧잘 억압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사람들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네 명의 소장품에 투영된 사람들의 열망을 들여다 봅니다.

 

 

 

 

 

 

 

 

 

 

 

 

 

 

 

 

<공포의 외인구단> 원화와 일본 만화가의 응원 축전

 

1983, 2001. | 이현세 (만화가)

 

위는 야구를 소재로 한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인공들을 그린 원화이다. 군사정권의 스포츠 진흥책에 따라 프로야구가 출범한 후, 이현세는 이 작품을 창작했지만 '분위기를 너무 어둡지 않게 하라' 는 요구에 맞춰 다시 그리는 등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래는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가 재판에서 청소년 보호법 위반 최종 무죄판결을 받은 후 일본 만화가들이 보내 온 축하 메시지이다.

 

 

 

 

 

 

 

 

 

 

「동백아가씨」는 64년 지구레코드사가 출반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65년 '왜색' 이라는 이유로 방송금지됐고, 68년에는 공연 및 앨범제작까지 묶여 대중의 귓가에서 멀어졌었다. 당시 명분은 왜색이었지만 가사내용이 핍박받는 대중을 대변하여 당국이 못 부르게 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조선일보, 1987. 8. 19.

 

 

 

 

 

 

 

<'동백아가씨' 20년 후> 해금가요 음반

 

1988. | 이미자 (가수)

 

이미자가 <동백아가씨> 발매 후 금지곡으로 지정받아 20년 후인 1988년에서야 다시 발매한 음반이다. 이 음반은 1964년에 발표 당시 방송 가요차트에서 최초로 35주 연속 1위를 기록하였으며, 1년 만에 1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하지만 '왜샛풍' 이라는 이유로 1965년에 금지곡이 되었다. 1987년 공연윤리위원회는 '동백아가씨' 를 포함해 186곡의 방송과 공연규제를 풀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슬픔이 기쁨에게』 초판본

 

1979. | 정호승 (시인)

 

공동체적 사랑을 노래한 정호승의 첫 시집이다. 표지는 갓난아이를 업고 있는 맹인부부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담은 목판화인데 시집의 주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시인은 "시대 상황과 서정성을 모두 지닌 시" 를 쓰고자 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시 '슬픔이 기쁨에게' 는 당시 폭압적 정치 상황을 '기쁨' 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고통을 '슬픔' 으로 은유했다

 

 

 

 

 

 

 

 

 

 

 

 

 

 

 

 

<아침이슬> 음반과 청바지

 

1971. | 양희은 (가수)

 

양희은의 데뷔 음반과 그가 입었던 청바지이다. 김민기가 자사, 작곡한 '아침이슬' 은 양희은의 대표곡이자. 1970 ~ 80년대 청년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곳이었다. <아침이슬> 음반 표지에는 당시 기성체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청바지와 통기타를 모두 찾아볼 수 있다. 민주화 시위에서 곧잘 불리던 '아침이슬' 은 1975년에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 울려 퍼진 아침이슬 (1987)

 

 

 

 

민간 국제교류의 시작

 

6 · 25전쟁으로 인해 강토가 폐허로 변한 후, 우리는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절박했던 순간에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준 이웃이 있었습니다. 정부 차원의 지원 외에도, 문화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건넸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인도적 차원의 국제기구에서 약소국의 어린이를 도운 이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신념 하나로 봉사에 임했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던넨 지원의 손길과 격려의 말은 그들의 꿈을 키워주었습니다. 세 명의 소장품을 통해 그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청소년적십자 학생대회                                                                                                                                국가기록원, 1960

 

 

 

 

청소년적십자 국제친선미술전시 플래카드가 걸린 건물 전경                                                 국가기록원, 1956

 

1956년 제3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건물에 함께 걸린 청소년적십자 국제친선미술전시 플래카드를 확인할 수 있다.

 

 

 

 

'여러분이 여러분 나라 사람을 돕든, 다른 사람을 돕든

여러분은 여전히 큰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어렵게 모셔서 더 없는 기쁨입니다."

 

ㅡ 1962년 8월 29일 케네디 대통령의 환영사

 

 

 

 

 

 

 

케네디 대통령과 찍힌 사진과 축하 카드

 

1962, 2006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이 1962년 케네디 대통령과 함께 찍힌 사진이다. 훗날 2006년 유엔 사무총장이 된 반기문에게 케네디의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이 사진을 그에게 선물하였다. 케네디 의원은 축하의 말과 함께 "J. F. K meets J. F. K. (Just From Korea) ㅡ 케네디가 (한국에서 온) 반기문을 만나다" 라고 적었다. 반기문 총장은 고등학생 때인 1960년대 초 청소년 적십자단에서 활동하며 청소년 적십자 국제대회 한국 대표로 선발되어 미국을 다녀 왔다.

 

반기문재단

 

 

 

 

 

 

 

 

 

 

"그 시절 대한민국은 의사도 없고, 돈도 없고,

환자들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던 때였어요.

병원은 아파서 오는 곳이 아니라 죽기 전에 오는 곳이었죠.

아, 이런 의사가 있구나,

넋이 나갈 정도로 감동을 받았어요.

평생 잊을 수 없는 커다란 깨달음이었습니다."

 

ㅡ 이길여

 

 

 

 

군산도립병원에서 만난 골든 박사와 이길여 총장                                                            가천대학교, 1950년대

이길여 총장이 "돈이 있어도 없어도 받는 병원" 을 외치는 건, 대학 졸업 후 군산도립병원에서 만난 '퀘이커 Quaker 의료 봉사단' 골든 박사의 영향이다.

 

 

 

 

 

 

 

 

 

 

청진기

 

1960년대 |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

 

이길여가 산부인과 의사 시절 사용하던 청진기이다. 그는 청진기의 차가운 금속이 몸에 닿을 때 놀라던 환자를 배려하여 항상 가슴에 품어 체온으로 데웠다. 개원하기 전, 그는 미국과 영국 등에서 온 퀘이커 의료봉사단과 함께 수련의 생활을 하며 환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키웠다. 퀘이커 봉사단은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던 1953년부터 1958년까지 군산 도립의원에서 구제활동을 펼치며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가천박물관

 

 

 

 

칼파워스와 김장환                                                                                                               극동방송, 1950년대

 

 

 

 

 

 

 

"자기도 가난했지만 그는 여기저기서 모금해

내 학비를 지원했어요. (···) 파워스는 참전 용사이기 때문에

군인들이 와서 장례를 치렀는데

하관한 후에 관에 씌웠던 성조기를 삼각형으로 접더니

'이건 당신이 받으라' 며 제게 줬어요."

 

ㅡ 김장환

 

 

 

 

 

 

 

미군 상사의 관을 덮었던 성조기

 

2013. | 김장환 (목사,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에게 부모와도 같았던 미군 상사 칼 파워스의 관을 감쌌던 성조기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김장환은 미군부대에서 허드렛일을 거들던 일명 하우스보이였다. 당시 미군이었던 칼 파워스는 김장환을 눈여겨보아 미국 으로 유학을 데려갔다. 미군부대에는 그와 같은 처지의 하우스보이들이 다수 있었고, 몇몇 미군은 그들을 도와주며 우애를 나누기도 하였다.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역사가 됩니다."

 

 

 

 

교통경찰 | 1971. 11. 10.

 

 

 

 

기관사 | 1988. 8. 2.

 

 

 

 

구두 수선원 | 2007. 2. 20.

 

 

 

 

농부 | 1982. 7. 14.

 

 

 

 

 

 

 

서점 주인 | 2006. 9. 30.

 

 

 

 

시계 수리공 | 2006. 3. 7.

 

 

 

 

시장 상인 | 2007. 3. 3.

 

 

 

 

액자점 주인 | 2006. 8. 18.

 

 

 

 

어부 | 2007. 7. 11.

 

 

 

 

여공 | 1986. 10. 30.

 

 

 

이발사 | 2006. 3. 29.

 

 

 

 

여성 광부 | 1990. 5. 10.

 

 

 

 

 

 

 

해녀 | 1989. 5. 12.

 

 

 

 

치과의사 | 2006. 11. 8.

 

 

 

나의 보물, 시대를 담다

 

개인들의 보물에 담긴 우리 현대사를 영상으로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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