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重根 書] 04
다섯 번째 이야기
동지
국내진공작전에 실패한 이후 안중근 의사는 뜻을 같이할 동지들을 모았습니다. 안중근 의사 자신을 포함한 12명의 동지를 모아 단지동맹을 결성했습니다. 단지동맹 동지들은 독립의 의지를 모아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 을 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후일을 도모했습니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북만주를 시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와 뜻을 모아 의거를 결심하고 하얼빈으로 향했습니다. 안중근 의사 자신은 하얼빈 역에서 의거를 준비했고, 우덕순과 조도선은 만전을 기하기 위해 차이자거우 역으로 향했습니다.
장부가 丈夫歌
장부가 세상을 살아감이여, 그 뜻이 크도다.
시대가 영웅을 만듦이여, 영웅이 또한 시대를 만들리니.
우뚝 천하를 노려봄이여, 어느 날에 공업을 이루리오.
동풍은 갈수록 차가운데, 장사의 의기 오히려 뜨겁도다.
분개하여 한번 떠남이여, 반드시 그 뜻을이루리로다.
쥐 같은 도적 이토 伊藤 여, 어찌 살기를 바랄 수 있으리.
이리될 줄 알았으랴만, 이미 돌이킬 수 없노라.
동포여, 동포여, 하루 빨리 대업을 이룰지어다.
만세, 만세를 외침이여, 대한독립을 위함이로다.
만년 또 만만년 이어가라.
우리 대한 동포여.
안중근 의사와 하얼빈 의거 동지들
1910. 2. 4. | 『만주일일신문 滿州日日新聞』
하얼빈 의거 3일 전인 1909년 10월 23일,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이 결의를 다지며 찍은 사진이다. 좌측부터 안중근 의사, 우덕순, 유동하다.
이토는 이번 달 12일 (양력 10월 25일)
러시아 철도총국에서 특별히 준비한
특별열차에 탑승하여 그날 오후 11시쯤
하얼빈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 이 큰일의 성공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으나, 동포의 기도에 힘입어
성공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한 독립 만세
9월 11일 (양력 10월 24일) 오전 8시
안중근 의사가 이강에게 보낸 편지
안중근 의사가 이강에게 보낸 편지
1909. 10. 24. | 일본 류코쿠대학 龍谷大學도서관
안중근 의사가 대동공보사의 이강에게 하얼빈 의거 계획을 알리는 편지다. 편지 왼쪽 아래에는 안중근 의사가 사용했던 태극십자가 인장이 찍혀있다.
안중근 의사가 지은 『장부가』
1909. 10. 23. | 일본 류코쿠대학 龍谷大學도서관
하얼빈 의거 3일 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 동지들과 결의를 다지며 지은 시이다. 안중근 의사의 한글 친필을 알 수 있다.
하얼빈 의거 동지들
1909. 11. | 안중근의사기념관
① 우덕순 : 안중근 의사와 함께 하얼빈 의거를 준비했다.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가 하얼빈 역에 내리지 않을 것을 대비해 차이자거우 蔡家溝역에서 기다렸다.
② 조도선 : 하얼빈 의거 당시 우덕순과 함께 차이거자우 蔡家溝역에서 의거를 준비했다.
③ 유동하 : 하얼빈 의거 당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이동과 통역을 도왔다.
단지동맹 조사 보고문서
1909. | 안중근의사기념관 (복제)
통감부가 작성한 단지동맹 조사 보고문서이다. 안중근 의사가 독립을 위해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대한독립 태극기를 그렸으며, 태극기는 대동공보사에 보관되어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안중근 의사 단지 혈서 엽서
1910. | 독립기념관 (복제)
안중근 의사가 결성한 단지동맹의 혈서 엽서이다. 엽서의 네 귀퉁이에는 안중근 의사 사진이, 가운데에는 혈서로쓴 대한 독립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기유년 2월 초 7일에 안의사중근공이 아라사 (러시아) 연추에서 동지 11인과 한가지로 국가를 위하야 몸을 바치기로 단지동맹을 행하고 그 피로써 쓴 글" 이라고 적혀 있다.
1910. 2.
일본 간센지 願船寺 소장
류코쿠 대학 龍谷大鶴 수탁
獨立 독립
안중근 의사의 독립에 대한 의지와 염원이 집약된 유묵이다. 안중근 의사는 "천국에 가서도 반드시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힘쓰리라" 유언을 남길 정도로 독립을 간절히 염원하였다. 힘 있고 간결하게 쓰인 독립 獨立 두 글자에서 안중근 의사의 기백과 염원을 느낄 수 있다.
戒愼乎其所不睹
계신호기소부도
1910. 3.
일본 조신지 靜心寺 소장 | 류코쿠대학 龍谷大學 도서관 수탁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삼가한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소홀히 행동하지 않고 항상 준비되어 있는 군자의 자세를 일컫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독립운동을 모색했던 안중근 의사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글씨라 생각된다. 안중근 의사는 연해주 지역 의병의 침체에 연연하지 않고 단지동맹, 우덕순 등과 함께 후일을 도모했다.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
장부수사심여철 의사림위기사운
1910. 3. | 보물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그 마음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그 기풍 구름 같도다."
안중근 의사의 장부로서의 비장함과 의사로서의 기개를 느낄 수 있는 글씨이다.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을 장부이자 의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큰 뜻이라고 여겼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의거를 결행하기 전 장부가를 지어 의지를 다졌다.
天與不受 反受其殃耳
천여불수 반수기앙이
1910. 2. | 보물
김화자 소장 | 국립제주박물관 수탁
"하늘이 주는데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게 된다."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뜻으로, 안중근 의사의 결단력을 엿볼 수 있는 글씨가 아닐까 싶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들은 안중근 의사는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일을 도모하기 어렵다" 는 생각으로 우덕순 · 조도선 · 유동하와 하얼빈 의거를 계획하였다.
안중근 思 사
안중근 의사에게 글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동양평화 사상을 설파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동양의 대세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루고, 동양평화를 이루지 못하니 슬프고 원통하다는 글씨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에 대한 신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동양을 보호하려면 침략정책을 고쳐야 하지만,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가엾다는 말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글씨에는 스스로를 희생하여 인 仁을 이루는 지사의 마음으로 하얼빈 의거를 준비한 안중근 의사의 철학과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여섯 번째 이야기
동양
1909년 10월 26일 아침, 하얼빈 역. 안중근 의사는 국권을 강탈하고 동양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 제국주의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습니다. 체포 후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의 15가지 죄를 열거하고, 하얼빈 의거가 대한국 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벌인 독립전쟁이라고 밝혔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동양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의거를 결행하였습니다.
하얼빈 의거를 알리는 『경성일보』 호외
1909. 10. 27. | 안중근의사숭모회
『경성일보』는 하얼빈 의거 다음날 호외를 발행했다. 의거 후 안중근 의사가 체포되었으며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ㅡㅡㅡㅡ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가지 ㅡㅡㅡㅡ
1.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한국의 고종황제를 폐위한 죄
3. 5조약 (을사늑약)과 7조약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4.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6. 철도, 광산, 산림, 하천을 강제로 빼앗은 죄
7.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게 한 죄
8. 군대를 강제로 해산한 죄
9. 민족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한 죄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
14. 대륙 침략으로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15.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
하얼빈 의거 장면 목판화
일제강점기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하얼빈 정거장에서 이토 공 조난의 그림" 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오른쪽에는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가 러시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 역에 도착한 내용 등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을 적은 문서
1909. |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 (복제)
안중근 의사가 밝힌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의 죄상 15가지를 적은 문서이다.
『안응칠 역사』에도 동일한 죄상이 적혀 있는데 이 문서와는 순서가 다르다.
안중근 의사가 작성한 내용을 일본인이 옮겨 적으면서 순서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欲保東洋 先改政略 時過失機 追悔何及
욕보동양 선개정략 시과실기 추회하급
1910. 3. | 보물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동양을 보호하려면 먼저 정략을 고쳐야 한다. 때가 지나 기회를 놓치면 후회한들 무엇하리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이 잘 담긴 글씽다. 동양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침략정책을 고쳐야하며, 고치지 않는다면 동양을 보호할 기회를 놓칠 것이라는 경고가 담겨있다. 안중근 의사는 서양 열강이 동아시아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3국이 힘을 합쳐 이에 맞서야 함에도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豈安眠
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강개 정략불개진가련
1910. 3. | 보물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두우니, 뜻있는 사나이가 편한 잠을 어이 자리.
평화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분개한지고, 정략을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가엾도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에 대한 열망이 절절히 표현된 유묵이다. 동아시아의 평화가 위협받는 모습을 보며 잠 못 이루고, 침략정책을 고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을 보며 가엾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동양평화론자로서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다른 유묵과 달리 안중근이 아닌 안응칠 安應七이라는 어린 시절 이름을 사용한 점도 독특한 점이다.
일곱 번째 이야기
평화
하얼빈 의거 직후 일본은 러시아령 하얼빈에서 자신들의 관할구역인 뤼순으로재판정을 옮겼습니다. 안중근 의사 측 변호는 막혔고, 방청객은 일본인과 기자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럼에도 안중근 의사는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외치며 치열하게 법정에서의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많은 글씨와 「동양평화론」, 『안응칠 역사』를 남겨 독립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고 동양평화 사상을 설파하였습니다. '대한국인 안중근' 은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글 書로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습니다.
志士仁人 殺身成仁
지사인인 살신성인
1910. 3. | 보물
안중근의사숭모회
"지사와 어진 사람은 자신을 희생하여 인 仁을 이룬다."
스스로를 희생하더라도 큰 뜻을 이루겠다는 안중근 의사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는 글씨이다. 대의를 위해 몸을 내던지는 안중근 의사의 기개와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국권의 회복과 동양평화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고 하얼빈 의거를 결행하여 그 뜻과 의지를 세상에 알렸다.
言忠信 行篤敬 蠻邦可行
언충신 행독경 만방가행
1910. 3. | 보물
"말에 성실과 신의가 있고,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야만의 나라에서도 이를 따를 수 있다."
『논어』의 구절 일부를 딴 글씨로 말과 행동에 신의가 있고 경건하면 다른 나라 사람이라도 따를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마치 뤼순감옥에서 안중근 의사의 실천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뤼순감옥 수감 당시 일본인 감옥장과 간수는 안중근 의사의 언행에 감화되어 안중근 의사를 기리고 추모하였다.
① 왼쪽부터 유동하, 조도선, 우덕순, 안중근 의사
② 안중근 의사 공판이 열린 관동도독부 법원
안중근 의사 공판
1910. 2. | 안중근의사기념관
일본은 자신들의 관할지에서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안중근 의사를 관동도독부 뤼순으로 이송하였다.
뤼순 감옥에서 면회 중인 안중근 의사
1910. | 일본 류코쿠대학 龍谷大學 도서관
뤼순 감옥 수감 당시 안중근 의사가 빌렘 N. J. M. Wilhelm 신부, 안정근, 안공근과 면회하고 있다.
동양평화론
지금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침략의 손길을 뻗쳐 오고 있는데,
이 환란을 동양 인종이 일치단결해서
힘껏 방어함이 최상의 방법 임은
어린아이라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일본은
이러한 자연스러운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인종인
이웃 나라를 강제로 빼앗고
친구의 정을 끊어, 스스로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물고
물리는 형국이 되어
어부를 기다리듯 하는가.
안중근 의사 공판 방청권
1909. 2. | 안중근의사숭모회
일본인 신문기자 코마츠 모토고 小松元吾 가 안중근 의사 공판 방청을 위해 받았던 방청권이다.
안중근 의사 공판 장면이 담긴 스케치북
1910. 2. | 안중근의사숭모회
뤼순 법정에서 안중근 의사가 진술하는 모습 등을 일본인 신문기사가 스케치로 남겼다.
『안중근 선생 공판기』
1946.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해방 직후, 안중근 의사의 재판 관련 기록이 한글로 발간되었다.
『동양평화론』
1910. |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 (복제)
안중근 의사가 순국을 앞두고 동양평화 사상을 집약하여 쓴 글이다. 제국주의가 동아시아를 위협하고 있는데, 일본의 침략으로 동아시아가 서로 협력하지 못하니 각국이 독립을 유지한 채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갑작스럽게 사형이 집행되면서 전체 5개 절 가운데 <서>와 <전감>만이 집필되었다.
"안응칠" 수형표를 달고 있는 안중근 의사
1909. | 일본 류코쿠대학 龍谷大學 도서관
뤼순 감옥에서 "안응칠 安應七" 이라는 수험표를 가슴에 달고, 단지한 손가락이 잘 보이도록 가슴 가까이 얹은 채 촬영한 모습이다.
안중근 의사의 모습
안중근의사기념관
① 뤼순 감옥 입감 당시 안중근 의사 (1910)
② 하얼빈 의거 당시 복장을 한 안중근 의사 (1909)
③ 순국 직전 한복 수의를 입은 안중근 의사 (1910)
에필로그
추모하며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오로봉을 붓으로 삼아 시를 쓰는 기개와 천국에 가서도 독립을 위해 힘쓰겠다는 의지는 동아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독립과 동양평화를 이야기했던 안중근 의사의 정신은 제국주의에 맞서는 동아시아 연대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 사진엽서
1910. |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사진엽서는 안중근 의사를 숭모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일본은 발행을 금지하고 압수하였으나, 한국과 해외에서 계속 제작되었다.
고토쿠 슈스이가 소지하였던 안중근 의사 사진
1910. | 일본 고쿄 메이지가쿠인 明治学院 대학 도서관 기념문고 (복제)
고토쿠 슈스이 幸德秋水 가 일본 천황 암살모의로 체포될 당시 소지하였던 안중근 의사 사진이다.
안중근 의사를 찬양하는 한시가 적혀있다.
"삶을 버려 의를 취하고, 목숨을 바쳐 인을 이룬다. 안중근의 거사에 천지가 진동하네"
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오로봉위필 삼상작연지
靑天一丈紙 寫我腹中詩
청천일장지 사아복중시
1910. 2. | 보물
홍익대학교 박물관
"오로봉을 붓으로 삼고 삼상의 물로 먹을 갈아 푸른 하늘을 한 장 종이 삼아 내 마음 속에 담긴 시를 쓰련다."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의연했던 안중근 의사의 기개를 느낄 수 있는 글씨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 李白의 시를 인용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이 결정되었음에도 굴하지 않고 많은 글씨와 「동양평화론」, 『안응칠 역사』를 써 書 자신의 뜻과 사상을 세상에 남겼다.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나니
백 세의 삶은 아니나 죽어서 천추에 드리우리
약한 나라 죄인이요 강한 나라 재상이라
그래도 처지를 바꿔 놓으니 이등도 죄인되리
쑨원 (孫文, 1866 ~ 1925)
중화민국 초대 임시대총통
만 섬의 끓는 피여! 열 말의 담력이여!
벼르고 벼른 기상 서릿발이 시퍼렇다
별안간 벼락치듯 천지를 뒤흔드니
총탄이 쏟아지는데 늠름한 그대 모습이여
만해 한용운 (韓龍雲, 1879 ~ 1944)
독립운동가 · 승려
역사에 근거허여 안중근을 평가할 때
대한 사람은 몸 바쳐 나라를 구한 지사라 하였고
또는 한국을 위해 복수한 열렬한 협객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런 찬사에 그친다면 미진한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근은 세계적 안광을 가지고 평화의 대표를 자임한 사람이다.
ㅡ 『한국통사』 중
백암 박은식(朴殷植, 1859 ~ 1925)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 민족사학자
안중근 의사 유언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 返葬 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라.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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