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03
2부
나의 인생, 문화를 엮다
2부에서는 우리 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 36명의 이야기를 네 가지 주제로 묶어 소개합니다. 첫 번째로 출판문화, 학문 탐구, 그리고 문학으로 보는 사회상을 살펴봅니다. 두 번째는 영화와 TV 방송 등 영상 문화, 이어서 세 번째는 우리 대중음악의 발자취입니다. 마지막으로,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체육인과 예술인, 기업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지성, 사회를 깨우다
전쟁 후 나라를 재건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 속에서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민은 학문과 문학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책이 귀했던 시절부터 국민들의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각 학문 분야에서 초석을 다진 학자들의 노력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온 문학인들, 당대의 사회상을 무대에서 풀어낸 배우들도 있었습니다. 열세 명의 개인이 각자의 시대에 했던 고민을 들어봅니다.
集大成 집대성 刊行物 간행물의 「붐」
〓 淨化 정화와 安定線 안정선에의 整理期 정리기 〓
해방 이후의 이 나라 출판계는 무술년 1958년으로 확실히 하나의 분수령을 획한듯 하다. 이른바 대중 오락잡지의 쇠퇴와 더불어 교양종합지의 진출, 문잡지의 지반확보, 나아가 금년의 수획의 백과사전을 비롯한 사전류와 세계문학 및 한국문학의 전집 간행 "붐" 은 마치 출판계의 르네상스적인 양상을 띠어 잡지계의 정화 안정과 더불어 출판도 비로소 올바른 궤도에 놓여진 감을 보여주고 있다. (···) 교양종합지가 대두하기 시작하였으니 오랜 전통으로 지식인 독자를 꾸준히 끌어온 '사상계' 가 더욱 전통으로 지식인 독자를 꾸준히 끌어온 '사상계' 가 더욱 확고한 지반을 세웠고, '신태양' 역시 그의 독자적인 성격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
경향신문, 1958. 12. 14.
"태어나서 제일 먼저 본 종이가 원고지였고,
집에는 원고지가 휴지보다 더 많이 쌓여 있었다."
ㅡ 황주리
『신태양』 1957년 6월호
1957. | 황주리 (화가)
황주리가 집에서 늘 보며 화가의 꿈을 키웠던 잡지 중 하나이다. 『신태양』은 아버지 황준성이 1952년에 창간하여 1959년까지 발행한 종합잡지로, 당대 한국 미술작가들의 그림을 표지로 실었다. 전시된 1957년 6월호 표지는 김환기의 작품이다. 1950년대에는 『신태양』과 더불어 『사상계』, 『희망』 등 종합잡지가 많이 발행되어 1950년대의 문화교양을 선도하였다.
韓國 한국 野談 야담 全集 전집
領相 영상과 초립동
陽山歌 양산가의 忠魂 충혼
香娘 향랑과 山有花歌 산유화가
英主廣開土大王 영주광개토대왕
李朝五百年奇譚 이조오백년기담
『한국야담전집』
1964. |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
김종규가 근무한 삼성출판사에서 출간한 전집으로 역사 속 한국의 여러 민간 이야기들을 모았다. 1964년 당시 1인당 연 국민소득이 123달러에 불과했지만, 전집의 유행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30만 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삼성출판사는 이후 『토지』, 『세계문학전집』, 『제3세대 한국문학』과 같은 대표 전집들을 출간하였다. 전집은 1960년대 출판시장을 주도하였다.
삼성출판박물관
"우리는 우리 시대에 미만해 있는 건축에의 혐오나 출판에의 불신을 씻어내고
이 땅에 건강한 출판문화와 건축문화를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려 한다.
다시 말해 민족과 국가 앞에 숭고한 책의 가치를 드높이며 자랑스런 우리 건축문화의 전통을 되살려,
우리의 도시가 추진 건설되는 과정이나 완공된 이후의 현장과 시설이 출판문화의 중흥과
국민 교육의 마당으로 쓰이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2000년 4월 26일 청명한 봄날 파주출판도시 인포룸에서
파주출판단지 이사장 이기웅
파주출판단지 건축코디네이터 승효상
파주출판도시 초기 모형
1999. 6. | 이기웅 (파주출판도시 명예이사장)
이기웅이 1989년부터 파주출판도시 건립을 이끌며 만들었던 초기 모형이다. 도시 내 한 공간에서 출판 생태계를 만들어 입주사들이 다같이 발전하는 것이 출판도시의 목표이다. 2000년에는 출판인과 건축인이 협력한 일명 '위대한 계약' 을 체결하였다. 이 계약으로 출판도시는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성장하여 현재는 900개 이상의 업체가 입주해있다.
출판도시문화재단
"왜 우리는 이렇게 분단돼 서로 싸워야 하나?
당초 왜 식민지로 떨어졌나 (···)
나를 비롯한 4 · 19세대 학자들은 사명감을 갖고 스스로를
실학의 후예라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만약 조선 후기에 실학이 건의한 대로만 정책을 수립했더라도
우리는 식민지로 떨어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ㅡ 신용하
『실증 철학 강의』
1864. | 신용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신용하가 프랑스에서 구해 소장하고 있는 '사회학의 창시자' 오귀스트 콩트의 전집이다. 그는 식민지와 분단을 경험했던 민족의 문제를 연구하고자 사회학을 선택하였다. 그에게 사회학은 콩트가 주장하듯 사회의 변동과 발전을 철저하고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었다. 신용하는 사회학이 한국 학계에 정착되던 1960년대에 1세대 사회학자인 최문환, 이상백 등의 지도를 받았다.
김병익 『문학과 지성』 관련 구술
조선일보
이 시대의 병폐는 무엇인가? (···)
현재를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병폐를 제거하여
객관적으로 세계 속의 한국을 바라볼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기를 희망한다.
ㅡ 문학과 지성 발간사
『문학과 지성』 창간호 초판본
1970. | 김병익 (문학평론가)
김병익이 동료들과 함께 창간한 계간지로 순수 문학을 지향한다. 문학인에게 1960년대는 4 · 19혁명과 5 · 16군사정변을 지나 오며 앞으로 사회에서의 향방을 고민하던 때였다. '문학과 지성' 은 문학을 사회 참여의 수단이 아닌 문학 그 자체로 다루고자 했던 순수파였다. 하지만 '문학과 지성' 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로 이어져 최인훈의 『광장』,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참여문학도 발간하였다.
정부는 내년부터 82년까지 7개년 계획으로
전국행정기돤에 전자계산조직을 보급
중앙에서 읍면에 이르기까지
전국행정업무를 컴퓨터화할 계획
조선일보, 1975. 6. 20.
『컴퓨터개론』, 『어셈블리어 프로그래밍』, 『정보공동활용체제』
1979., 1979., 1980. | 문송천 (KAIST 명예교수)
한국 전산학박사 1호인 문송천이 집필한 첫 컴퓨터 교재들이다. 각각 대학교재, 고등학교 국정교과서, 공무원 교육교재로 활용되었다. 『정보공동활용체제』는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행정전산화 지시 (1975년)로 출간되어 전국 공무원 대상 데이터베이스 교재로 사용되었다. 당시 소프트웨어 기술 뿐만 아니라 전산학 대학원 과정도 없던 시절에 이 교과서들은 훗날 IT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 한국신문사』 목차 초안과 출판된 『한국신문사』
1950년대 |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정진석의 스승인 최준 교수가 작성한 저서 『한국신문사』의 목차 초안으로, 정진석은 그의 영향을 받아 한국 신문사의 밑바탕을 다졌다. 정진석은 최초의 근대 신문인 1883년의 한성순보부터 대한매일신보,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의 신문까지 정리하는 작업을 해왔다. 최준 교수의 이 책은 개항 이후부터 1910년까지 언론 역사를 6개 장으로 구분하였으며, 일제 침략에 저항하는 언론 활동을 강조하였다.
"한국의 언론사는
탄압과 저항으로 점철된 질곡의 역사였습니다.
민족의 운명이 위태로울 때는 민족생존권을 위해 투쟁했고
자유가 억눌릴 땐 자유를 찾아 싸웠습니다."
ㅡ 정진석
성철 스님 백일법문 릴테이프와 복사 카세트테이프, 녹취 노트
1967., 1970 ~ 1980년대 | 원택 스님
성철 스님이 1967년에 해인사에서 진행한 백일 동안의 법문 자료이다. 불교의 핵심 교리를 설파한 법문을 녹음한 릴테이프를 다시 카세트테이프에 재녹음하였고, 원택 스님은 그것을 계속 돌려 들으며 녹취 노트를 작성하였다. 세계 불교학의 흐름을 망라한 이 법문을 정리하여 출간한 것은 1992년 4월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성철 스님 입적 1년 전이었다.
"제 시 쓰기의 토양은 전통적 가부장 사회였어요. 일생동안 부엌과 안방을 오가며 남성의 보조자로서 살아야했던 가부장 사회에서 태어났지만, 산업 사회로 전환하는 시기에 성장했죠. 달라진 시대에 교육을 받은 덕분에 가부장적 언어로 시를 쓰지 않은 첫 여성 시인이 됐습니다."
ㅡ 문정희
『꽃숨』과 '바람과 진실' 원고
1965, 1968 ~ 1969 | 문정희 (시인)
『꽃숨』은 문정희가 당시로서는 최연소인 고등학교 3학년 때 펴낸 시집이다. '바람과 진실' 은 시인이 등단 직전에 썼던 소설 육필원고이다. '내가 만든 사막' 이라는 부제를 가진 이 소설은 뒤틀린 듯 보이는 도시 청년들의 사랑과 외로움을 그려내지만, 그 이면에 1960년대 당시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려던 여성들의 시도가 돋보인다. 이런 문제의식이 발전하여 그는 훗날 '여성적 생명주의' 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숨길 수 없는 80년대의 자화상
이념 · 실연이 휩쓸고간 내면풍경 '솔직'
여성주의 바람 타고 8개월만에 40만 부
『서른, 잔치는 끝났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초판본
1994. | 최영미 (시인)
최영미의 대표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 가 수록된 시집으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 세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담겨있다. 민주화를 이룬 후, 시위에 참여했던 다수는 개인적으로는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채 취업을 준비해야만 했다. 최영미는 고등학생 때 일기장에 '진실. 진실을 가장 사랑합니다' 라고 썼듯 사회 부조리에 대해 비판하는 시를 많이 창작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대본, 무대용 신발
1991. | 박정자 (배우)
박정자가 주연으로 출연한 연극의 대본과 무대에서 실제로 신었던 신발이다. 연극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는 엄마의 삶을 거부하는 엄마와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는 딸 간의 갈등을 그리지만, 그 안에서 깨닫는 사랑을 말하고자 하였다. 박정자는 그런 엄마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서 직접 이 신발을 골라 무대에서 신었다. 산울림 극단의 임영웅이 연출하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주부들 연극배우 팬클럽 "열기"
박정자 씨 후원 「꽃봉지회」
여성문제 공감 ··· 1년새 백50명
주부들이 중심이 된 연극후원운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 꽃봉지회는 박정자 씨의 연극을 보고 공감한 주부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만남에서 시작됐다. (···)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공연 때 세 차례동안 관객과 배우가 만나는 다과회를 열면서 첫 대외활동을 시작했던 것. (···) 요즘은 중년 여성의 문제를 절실히 보여주는 연극을 스스로 만들어볼 꿈도 키우고 있다.
조선일보, 1992. 8. 4.
<담배 피우는 여자> 대본
1996. | 손숙 (배우)
손숙이 밑줄과 각종 표시를 하며 보고 연습하던 연극 대본이다. 이 연극은 1990년대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평범한 주부를 통해 여성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표현한 김형경의 원작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손숙은 연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이 연극을 이끌어 가야했기에 더욱 철저히 연습해야만 했다. 산울림 극단의 임영웅이 연출한 여성문제를 다룬 작품 중 하나이다.
손숙 모노드라마 '담배 피우는 여자'
"이혼 생각해 보신적 있나요"
경남 밀양 출신인 손씨는 사투리 밴 억양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펼치듯 평범한 중년여성의 외로움과 소외를 풀어놓는다. 여성관객이 압도적이지만 연령층은 다양하다. 연출자 임영웅 씨는 『주말엔 부부관객들도 10여 쌍이 온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1997. 7. 3.
<신이춘풍전> 대본
1992. | 김성녀 (배우)
김성녀가 출연 전 직접 보고 연습했던 마당놀이 <신이춘풍전> 대본이다. 조선시대 고전소설 <이춘풍전>을 각색한 것으로 이춘풍이 가산을 탕진하고 기생의 하인 노릇까지 하게 된 상황에서, 그의 아내인 김씨가 이춘풍을 구해냄과 동시에 개과천선케 했다는 내용의 풍자극이다. 마당놀이는 한국적인 연극으로 전통 연희와 판소리를 토대로 한다. 김성녀가 속한 극단 미추는 1981년부터 마당놀이를 공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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