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암동]
일러스트 = 양진경
종암동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느 날 내 집 앞에 와 계셨다
현관에 들어선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
왜 우시냐고 물으니
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ㅡ 박준 (1983 ~)
냄새는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안방이나 이불, 옷장의 옷으로부터 맡게 되는 냄새에는 기억이 배어 있다. 특히 옷은 기억의 실오라기나 기억의 털로 짠 것만 같아서 옷에는 살냄새가 난다. 통 기억이 나지 않다가도 어떤 공간에 들어서거나 사물을 보는 순간 시간의 저 깊은 곳에 먼지를 소복하게 뒤집어쓴 채 있던 기억은 일순에 되살아난다. 마치 소매를 왈칵 잡아당기듯이.
박준 시인은 “흘려보낸 날들의 뒷모습을 봅니다. 사람의 기대 같은 것으로. 뒤늦음으로” 라고 글을 썼는데, 시인은 특유의 예민한 감각을 통해 시행 (詩行)에 옛 기억을 살려낸다. 시인의 아버지에게 종암동은 옛날의 감회가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다. 아버지는 마음 한구석이 짠하고 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글썽인다. 아버지에게도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에게도 어머니가 있음을 가끔 잊고 산다.
내게도 종암동은 옛 기억이 많은 곳이다. 안마당과 몇 개의 화분, 반쯤 열린 대문, 신발이 나란히 놓여 있는 현관, 계단과 옥상, 흐르는 개천, 느티나무와 나무 그늘에 있던 평상이 눈에 선하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5년1월 27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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