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한국 단색화 1 세대' 하종현의 초기작품展]

드무2 2025. 4. 19. 13:03
728x90

['한국 단색화 1 세대' 하종현의 초기작품展]

 

 

 

하종현, '접합 74-98' (1974). 225 × 97cm. 마대 자루를 캔버스 삼아 뒷면에 물감을 짠 뒤 앞면으로 밀어내 작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아트선재센터

 

 

 

뒤에 물감 칠해 밀어내기··· 젊은 하종현 <단색화 거장>의 실험정신

 

 

 

뒤에 물감 발라 배어 나오게 한 기법 탄생까지

1959 ~ 1975년 청년 시절 작품 40여 점 전시

캔버스 길게 잘라 엮어 단청 문양 만들고

철사 구부려 박거나 스프링 붙이는 실험도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서 4월 29일까지

 

 

 

전시장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작가 하종현.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5.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단색화 거장 하종현 (90)은 전매특허 ‘접합’ 시리즈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미군이 군량미를 담았던 마대 자루를 잘라 뒷면에 물감을 짠 뒤 앞면으로 밀어내는 배압법 (背押法)을 창안했다. 캔버스 표면에 물감을 칠한다는 회화의 고정관념을 깬 혁신이었다. 올 굵은 마대 뒷면에 두껍게 올린 물감을 나무 주걱으로 짓이겨 밀어내면 성긴 틈새로 물감이 배어 나온다. 1974년부터 시작한 ‘접합’ 연작이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하종현 5975’ 는 ‘접합’ 이 나오기까지 다양한 실험으로 분투했던 청년 하종현의 패기와 열정을 보여준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1959년부터 ‘접합’ 연작을 시작한 직후인 1975년까지 격동의 한국 사회 속에서 탄생한 40여 점의 초기 작업을 집중 조명했다.

 

 

 

하종현, _ 자화상 _, 1959, 캔버스에 유채, 63 x 40 cm. 작가 제공. / 아트선재센터

 

 

 

깡마른 얼굴을 어두운 톤으로 그린 20대의 자화상으로 전시의 문이 열린다. 1959년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그는 당시 유럽에서 등장한 앵포르멜 운동의 영향을 받아 전후 (戰後)의 황폐한 현실을 화면에 담아냈다. 정형화된 회화의 틀을 깨고 즉흥적이고 격정적인 표현을 중시하는 앵포르멜을 한국적인 맥락에서 재구성했다. 어두운 색조로 물감을 두껍게 바르거나 실뭉치를 캔버스에 붙이고 불에 그을린 거친 작품을 1부에서 볼 수 있다.

 

 

 

하종현, _ 도시계획백서 67 _, 1967, 캔버스에 유채, 112 x 112 cm. 작가 제공. / 아트선재센터

 

 

 

1960년대 후반이 되면 그림의 채도가 높아진다.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 도시화와 경제 성장이 이뤄지던 사회상을 기하학적 추상으로 표현했다. 이 시기 대표작 중 하나인 ‘도시계획백서’ 연작은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고 경제개발계획이 진행되면서 달라지는 도시 경관을 강렬한 색채와 반복적인 패턴으로 담아냈다.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빨라진 이동 시간을 캔버스 하단을 여러 겹 접는 형태로 압축한 1967년 작품이 눈길을 끈다. 또 다른 연작 ‘탄생’ 에선 캔버스를 길게 잘라 돗자리 엮듯 단청 문양을 만들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도시화라는 새로운 ‘탄생’ 을 이야기하면서도 근대화로 소멸해가는 전통적인 미학을 잃지 않은 작업” 이라고 했다.

 

 

 

캔버스를 잘라 엮어 단청 문양을 만든 '탄생 - B' (1967). 145.5 × 193.9 cm.

 

 

 

1969년 하종현은 평론가 이일 등 작가 · 이론가 12명으로 구성된 ‘한국아방가르드협회 (AG)’ 를 결성한다. 검은 철조망, 못, 용수철을 캔버스에 부착하는 등 실험정신이 극대화되는 시기다. 평면 위에 철사를 구부려 박거나 화면에 스프링을 붙이고, 가시철망으로 캔버스를 감싼 작품들은 시대적인 억압을 상징한다. 조희현 전시팀장은 “캔버스 자체를 철망으로 감싸는 작업은 억압되고 경직된 당시 사회를 반영하면서 회화에 입체성을 불어넣는 시도” 라고 했다. 특히 도면으로만 남아 있던 거울 설치 작업 ‘작품’ (1970)을 재현해 55년 만에 선보였다. 여러 개의 거울과 두개골, 골반 엑스레이 필름을 활용해 거울 속에 엑스레이 필름의 이미지가 반사된다.

 

 

 

하종현, 〈작품〉, 1970 (2025 재제작), 거울, 두개골 및 골반 엑스레이, 혼합매체, 가변크기.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5.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하종현, _ 작품 73 _, 1973, 패널에 철조망, 60 x 60 cm. 작가 제공. / 아트선재센터

 

 

 

하종현, _ 접합 74 - 17 _, 1974, 마포에 유채, 80 x 100 cm. 국제갤러리 소장. / 아트선재센터

 

 

 

전시는 대표작인 ‘접합’ 연작의 초기 작업으로 마무리된다. 배압법을 이용한 여러 시도를 마지막 4부에서 보여준다. 김선정 예술감독은 “1959년부터 1975년 사이에 했던 물질과 재료, 기법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어떻게 하종현 작가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지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고 말했다. 치열하게 씨름했던 젊은 하종현을 통해, 거장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4월 20일까지. 관람료 5000 ~ 1만원. 3월에는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작가의 최근작을 소개하는 개인전이 열린다.

 

 

 

☞ 하종현 (90)

 

 

 

 

 

 

1959년 홍익대 회화과 졸업. 홍익대 미술대학 학장,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역임했다. 재료와 물질성에 대한 실험을 꾸준히 이어가며 독창적 화풍을 구축해왔다. 특히 캔버스 뒷면에서 물감을 두껍게 밀어넣는 기법과 그 위를 쓸어내고 긁어내는 행위를 통해 흔적을 남긴다. 박서보 · 정상화와 함께 한국의 단색화를 대표하는 1세대 화가로 꼽힌다.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5년 2월 20일 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