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없는 집을 지날 때면]

일러스트 = 이철원
마당이 없는 집을 지날 때면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집
외면하려 고개를 돌리거나 숙여 보지만
악다구니가 고스란히 들린다
이 부부에게도
마음 밖에 가난한 마당 하나 있어야겠다
고욤나무도 좋고 대추나무 한 주도 좋겠지
눈부신 파초 그늘도 좋고
수북이 쌓인 눈 덮고 튤립 구근이 숨 쉬는 마당에
부부의 허밍이 번지는
그런 마당 하나 있어야겠다
ㅡ 김선향 (1966 ~)
* 백무산, 「마당이 있는 집」(『그 모든 가장자리』, 창비, 2012)에서.
시인은 길에 바로 접한, 마당이 없는 한 살림집을 지나간다. 보고 들으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이 거주하는지, 그 생활공간이며 가재도구며 대화하는 목소리까지 다 보고 들을 수 있는 집이다. 시인은 이 집의 깊은 속까지 샅샅이 마주치기를 꺼리어 피하고 또 얼굴을 돌려 지나가지만, 크게 다투는 소리를 그만 듣고 만다. 그러면서 시인은 “마음 밖에 가난한 마당 하나 있어야겠다”라고 바란다. 이 시구는 백무산 시인의 시에서 인용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악다구니를 부리는 마음 밖에 작고 가난한 두어 평 평평한 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가난한 마당은 숨을 돌리는 공간이요, 악다구니를 치는 마음을 생활에서 좀 떼어다 놓을 공간일 테다. 말하자면 마음의 또 다른 마당일 텐데, 시인은 거기에 무언가 한 그루의 나무도 있으면 좋겠고, 시원한 파초 그늘도 있으면 좋겠고, 봄에 필 튤립 구근도 미리 묻어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당 있는 집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 싶지만, 마음 밖에 마당이 하나 있다고 여기면 마음은 숨통이 좀 트일 것이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5년 6월 23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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