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

일러스트 = 김성규
작약
매화나무 그늘 아래 작약 한 그루 심어 놓고
나는 이쯤이 좋구나, 생각했다
옛글에는 부자유친이라 말했는데도
어쩜! 네 마음에 미치지 못한 애비 될까 봐
매화 그늘 아래
나는 이쯤이 좋구나, 했다
너무 허심타 생각 말지
숨어서 몰래 훔쳐보는 이 마음 태연자약
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태연자약
나는 이쯤이 정말 좋구나
옛글은 옛글대로 마음이 가고
지금 내 이 마음 이 마음대로 좋으니
매화나무 아래 작약 한 그루 심어 놓고
나는 이쯤이 좋구나, 생각했다
옛글에도 부자유친이라 말했는데도
어쩜! 네 눈에 못난 애비일까 봐
매화 그늘 아래
나는 정말 이쯤이 좋구나, 생각했다
숨어서 몰래 훔쳐보는 이 마음 태연자약
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태연자약.
ㅡ 성선경 (1960~)
시인은 아들과 함께 매화나무의 그늘 한쪽에 작약을 심었나 보다. 작약을 심을 자리를 두고는 고민이 깊었던 것 같다. 아마도 아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까 염려를 했던 모양인데, 그래서 생각 끝에 “이쯤이 좋구나” 라고 말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친애 (親愛)가 벌어지고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해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고는 이런저런 궁리가 조금도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어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체한다.
그런데 시인은 “이쯤” 이라는, 이만한 정도라는 말에 묘한 끌림을 느낀다. ‘이쯤’ 이나 ‘그쯤’ 이나 ‘저쯤’ 이라는 말에는 앞일이나 무언가를 잘 헤아려서 생각하되 그때그때의 형편을 보아서 일을 처리하는,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있고, 양보와 배려가 있고, 융통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완고하지 않고, 가능성과 여지를 두는 말이기도 한 탓일 테다. 너무 철저하거나 명확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것이 나을 때가 있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3월 9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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