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전 네 잎]

일러스트 = 이철원
백동전 네 잎
동네 안과에서 간이 시력검사 뒤
의사 앞에서 눈 한 번 크게 뜨고
5천 원권 내고 받은 거스름돈
재킷 호주머니에 넣었다
한참을 걸어왔는데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거 떨어졌어요
꼬마가 달려와
백동전 네 잎을 내민다.
그적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물끄러미 뒷모습 바라보려니
왠지 슬퍼졌다
기특한 앞날이 고단하리니.
ㅡ 유종호 (1935 ~)
병원에서 진료비를 내고 받은 거스름돈 동전을 윗옷 주머니에 넣었으나 걸어가다 빠뜨려 바닥에 흘리고 만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줄을 모르고 계속 걸어가는데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된다. 어린아이가 손에 꼭 쥐고 온 “백동전 네 잎” 을 가만히 내밀어 보인다. 시인이 떨어뜨린 백동전이었다. 시인은 그 순간 꼬마의 말과 행동이 신통하고 귀염성이 있다고 느끼고, 또 얼핏 시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데, 무슨 까닭인지 슬픈 느낌을 갖고 만다. 짐작하건대, 그 아이가 앞날에 마주하게 될 세상사 (世上事)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시 ‘남몰래 흘린 눈물 - 젊은 벗에게’ 를 통해 “어찌 내겐들 없었겠느냐 / 별을 그리다 스러진 꿈이 / 좋아하면 아니 되는 사람이 / 문득 먼 산 바라기의 적막이 / 어찌 내겐들 없었겠느냐 / 세상은 갈수록 수미산” 이라고 노래했다. 시인은 그 아이에게서 자신이 지녔던 꿈과 사랑과 적막을 보았을 것이니 아이의 앞날은 시인이 겪었던 과거보다 덜 막막하고 덜 힘겹기를 바랐을 것이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5년 6월 30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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