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넝쿨의 생존법]

일러스트 = 김성규
담쟁이넝쿨의 생존법
벽을 만나면 벽이 되고요
담장을 만나면 담장이 되고요
집을 만나면 집이 되고요
나를 만나면 내가 되고요
쓰레기를 만나면 쓰레기를 먹고요
죽은 나무를 만나면 죽은 나무를 먹고요
죽은 자전거를 만나면 죽은 자전거를 먹고요
썩은 우물을 만나면 썩은 우물을 삼키고요
먹는 대신 쓰레기에도 심장을
먹는 대신 죽은 나무에게도 심장을
먹는 대신 죽은 자전거에게도 심장을
삼킨 대신 썩은 우물에도 심장을
심장을
심장을
푸른 심장을
켜로 달아주고요
나도 담쟁이넝쿨처럼 너를 삼키고 싶고요
나도 담쟁이넝쿨처럼 너를 먹고 싶고요
나도 담쟁이넝쿨처럼 너를 품어주고 싶고요
너에게도 심장을
심장을
숨을
앗, 다시 담장을 넘어가야 할 시간이네요!
너를 타 넘어야 할 시간이네요!
ㅡ 승한 (1958 ~)
이 시는 시인인 승한 스님이 최근에 펴낸 시집 ‘응시와 가장 가까운 곳’ 에 실려 있다. 담쟁이넝쿨의 덩굴손은 담장이나 벽, 나무에 달라붙어서 그 위를 타고 넘는다. 작고 푸른 잎은 심장 모양이다. 그런데 시인은 담쟁이넝쿨이 수직의 벽을 만나서 기어오를 때 벽에 대해 어떤 장애도 느끼지 않고, 벽이 될 뿐만 아니라 벽에게 “푸른 심장” 을 달아준다고 바라본다. 죽은 자전거를 만나면 죽은 자전거를 먹고, 죽은 자전거에게 푸른 심장을 달아준다고 노래한다. 앞이 가로막혀도 곤경이라고 여기지 않고 되레 상대에게 심장을 달아주어 푸른 숨을 쉬게 한다고 여긴다. 맞닥뜨린 곤란을 자기의 희생을 통해 사랑으로 되돌려준다는 것이니, 구도자 (求道者)의 면모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도 누구를, 무엇을 만나더라도 푸른 심장을 열정적으로 나눠주다 보면 그 사랑의 실천 끝에 여름의 뜨겁고 높은 담장을 마저 넘어서고 마침내 선선한 가을의 현관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5년 9월 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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