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유 탄생 100주년 기념전]

김상유, ‘대산루’ (1990). 캔버스에 유채, 52.5 × 45㎝. 경북 상주의 2층 누각 대산루에 앉아 가부좌 틀고 명상하는 남자를 그렸다. 서울미술관 소장.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소장한 ‘대산루’ 와 같은 제목의 연작이다. / 서울미술관
RM <BTS 리더>도 빠진 무해함··· 전시장 '위로의 공간' 되다
한국 아름다움 탐구한 '은둔의 화가'
"작품 하나에 4개월··· 수행하듯 작업"
달관한 남자 유화 등 150여 점 공개
석파정 서울미술관서 8월 17일까지
고즈넉한 정자 안에 한 남자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얼굴, 평온한 표정이 달관한 듯 보인다. 관람객들도 그림 속 남자처럼 무사무념 (無思無念)의 세계에 빠져든다.
서울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상유 (1926 ~ 2002) 회고전 ‘쉽게 닳지 않는 사람’ 이 명상과 힐링 스폿으로 관람객 발길을 모으고 있다. 작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세상에서 잊히던 화가 김상유를 다시 꺼낸 전시다. 관람객들은 “무해함의 극치” “힘든 하루를 위로받는 그림” 이라며 호응하고 있다.

김상유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미술관 전시장 전경. / 뉴시스
김상유는 은둔의 화가다. 어릴 적 화가를 꿈꿨지만 6 · 25 전쟁으로 포기하고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어느 날 미국 잡지의 동판화 특집 기사를 읽고 가슴이 뛰었다. 생업도 내려놓고 30대에 작가의 삶에 뛰어들었다. 손수 국수 기계를 개조해 프레스를 만들어 국내 처음으로 동판화 분야를 개척했다. 1970년 제1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았고, 이후 목판화와 유화로 작업을 확장했다. 1990년 제2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며 미술계 주목을 받았지만 화단의 대소사와는 연을 끊었다. 장욱진 그림의 단순 · 소박함과 닮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생전의 그는 “장욱진 선생은 진짜 화가고, 나는 발밑에도 못 간다” 고 했다.

인천 동산중학교 교사 재직 시절의 김상유 작가. 그는 연희전문학교 (현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30대에 돌연 사표를 내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 서울미술관
전시는 800평 규모 공간에 150여 점을 대규모로 선보이며 김상유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복원했다. 1960년대 초기 동판화부터 전국의 고택과 정자를 찾아다니며 한국적 아름다움을 탐구한 판각, 1980년대 이후 ‘무위자연’ 을 구현한 유화까지 연대기별로 짚어준다.

김상유, 에칭 동판 'Works #75-2' (1975). / 서울미술관

김상유, '달밤'. 1980년대, 운심석면 소장. / 서울미술관
발길이 오래 머무는 건 역시 유화 작품들이다. 화면은 지극히 단순하다. 작가가 1970년대부터 10여 년간 카메라 들고 훑었던 고건축 누각들이 배경이다. 한결같이 작은 방 한가운데에 눈을 지긋이 감은 남자가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후기 그림엔 지붕도 주춧돌도 잘려 방과 사람만 덩그러니 남았다. 작가는 “명상하는 사람은 나 자신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자화상” 이라고 했다.
안진우 서울미술관 이사장은 “단순해 보이는 그림이지만, 김상유는 물감을 칠하고 천으로 닦고, 또 칠하고 닦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수행하듯 작업했기 때문에 작품 하나에 3 ~ 4개월씩 걸렸다” 며 “동판화를 제작했던 시절부터 초산에 노출됐던 눈이 녹내장으로 실명 위기까지 겪었다. 그만큼 치열하게 작업한 화가” 라고 했다. 방탄소년단 (BTS) 리더 RM이 소장해 유명해진 ‘대산루 (對山樓)’ 연작도 나왔다. 미술관 측은 “RM은 전시 개막 직후 목발을 짚고 방문해 꼼꼼하게 작품을 관람하고 갔다” 고 전했다.

김상유, '강'. 1990년대, 더프리마뮤지엄 소장. / 서울미술관
이번 전시가 가능했던 건 미술 애호가이자 컬렉터인 서울미술관 설립자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의 치열한 수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병광 회장은 2002년 1월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김상유 개인전을 보고 작품에 반해 당시 전시에 나왔던 작품을 거의 모두 사들였다고 한다. 출품작 150여 점 중 100점이 그의 소장품이다. 안 회장은 “김상유는 충분히 평가받아야 할 작가였다. 이번 전시가 그의 작업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고 했다.

김상유 탄생 100주년 기념전 전시장에서 한 관계자가 김상유의 유화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뉴시스
김윤섭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는 “김상유 작품의 진면목은 ‘기교 없는 기교의 멋’” 이라며 “조용하고 단정하며 세심한 그림 속의 안분지족 정신이 곧 한국적 정서를 투영하고 있는 것 아닐까” 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성인 2만원.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4월 2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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