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산 선운사 ㅡ 선 禪에 들고 구름에 눕다] 01

도솔산 兜率山 선운사 禪雲寺
선 禪에 들고 구름에 눕다
2026 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
2026. 4. 22. ㅡ 7. 31.
불교중앙박물관 전시실
불교중앙박물관 / 선운사
박물관 안내
전시안내
관람시간 10 : 00 ~ 17 : 00
* 폐관시간 30분 전부터 입장이 제한되오니, 관람에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휴관일
매주 월요일, 추석연휴
* 5 / 25 운영
관람료
무료
문의
02ㅡ2011ㅡ1960
오시는 길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불교중앙박물관
불교중앙박물관은 1호선 종각역 2번 출구 또는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에서 조계사 방향으로 오시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1층에 있습니다.















선운사 벽화
조선 후기
토벽에 채색
선운사 성보박물관
정확한 원 봉안회는 알 수 없으나 여러 문헌을 통해 1713년 창건된 각황전이 무너져 1821년 영산전을 개축할 때 이탈된 벽화이거나, 『선운사고적』에 1709년 한산전 창건 후 1713년에 회상 繪像과 단청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1713년경 각황전 또는 한산전에 함께 조성된 벽화들로 추정됩니다. <쌍조도>는 연못에서 한 쌍의 새가 서로를 응시하며 노니는 평화로운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한산 · 습득도>는 당나라의 은자 隱者인 한산과 습득을 그린 것이며, 특히 한산의 옆에는 '한산의 손가락 끝엔 둥근 달이 빛나고, 습득의 발아래엔 바위가 층층이 쌓여 있다 [寒山指頭月團 拾得脚下岩層]' 라는 선시가 적혀 있습니다.







불암사 석씨원류응화사적 목판
조선 1673년
나무
남양주 불암사 (불교중앙박물관)
보물
1673년 불암사에서 간행한 목판입니다. 처능 處能 스님의 발문에 따르면, 1631년 정두원 鄭斗源이 명나라에서 가져온 『석씨원류』를 다시 판각한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와 전법 제자들의 행적 등 주요 장면을 양옆으로 나란히 구성하였습니다. 불교 교리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제작된 이 목판의 도상들은 조선 후기 팔상도 八相圖 도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선운사 석씨원류응화사적 목판
조선 1710년
나무
선운사 성보박물관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석가모니부처님의 일대기와 인도 및 중국의 불교 전개 과정을 정리한 『석씨원류응화사적』을 새긴 목판입니다. 조선 전기부터 중국 판본을 바탕으로 여러 차례 간행되었으며, 현재는 1673년 불암사본과 1710년 선운사본 만이 전해집니다. 선운사에서 간행한 이 목판은 상단에 그림을, 하단에 그 내용을 설명하는 글을 배치하였습니다. 판본을 간행하기 위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사찰의 주요 스님들이 주가되어 갑계 甲契를 조직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석씨원류
보성스님
조선 후기
종이에 인쇄
선운사 성보박물관
<선운사 석씨원류응화사적 목판>을 간행한 책입니다. 글과 그림을 결합한 400편의 이야기로 불교사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 200편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와 인도에서 성립된 불교의 역사, 나머지 200편은 불교의 중국 전래와 역대 고승들의 사적을 설명합니다. 명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간행하였으며, 글과 그림을 결합한 편찬 방식은 불전고사화 제작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국사 대웅전
소조가섭 · 아난존자 입상
응매 스님 등
조선 1650년
흙
동국사 대웅전
보물
동국사 대웅전 석가모니부처님의 좌우에는 제자인 가섭과 아난존자가 시립해 있습니다. 가섭존자는 노련한 수행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고, 이에 반해 아난존자는 합장한 채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어 정적인 평온함을 자아냅니다.
「발원문」에 따르면 불상의 조성 불사에는 벽암 각성 碧巖覺性 스님과 호연 태호 浩然太浩 스님이 참여했으며, 수조 각승 응매 應梅 스님을 필두로 6명의 스님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이 존상들은 응매 스님이 수조 각승으로 참여한 사실이 확인되는 유일한 성보입니다.

선운사 대웅보전 목조불패
조선 후기
나무
선운사 대웅보전
선운사 대웅보전의 중심인 비로자나 삼불좌상과 함께 봉안된 <목조불패>는 불단의 엄숙함과 화려함을 더해줍니다.
패두, 패신, 패좌로 구성된 조선시대 불패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줍니다. 용과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 구름 등을 섬세하게 새긴 투각 기법과 화려한 단청은 당시 불교 공예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선운사 대웅보전 목조범천 · 제석천상 대좌
조선 후기
나무
선운사 대웅보전
선운사 대웅보전 비로자나부처님 좌우에 봉안된 <범천 · 제석천상>의 대좌입니다. 일상의 범천 · 제석천상은 17세기의 존상으로 추정되는 반면, 대좌는 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어 시기적 차이가 존재합니다. 대좌는 불상을 구성하는 핵심요소 중 하나로, 본래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자리를 상징합니다.





도솔산 선운사, 선 禪에 들고 구름에 눕다
꽃무릇과 동백꽃이 철마다 향기를 전하는 도솔산 자락에는 깊은 법향 法香을 간직한 선운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는 한때 89개의 암자와 189채의 요사를 갖추어 산중 곳곳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었던 유서 깊은 도량입니다.
선운사는 예로부터 지장 신앙의 성지로 추앙받아 왔습니다. 그 신앙의 결정체인 선운사 지장보궁, 참당암 지장전, 도솔암 내원궁의 세 지장보살님은 자비로운 미소로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정유재란이라는 역사의 거센 풍랑 속에서도 선운사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전란의 상처를 딛고 일어난 선운사는 오늘날까지 우리 불교문화유산을 가장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꽃피우고 있습니다.





선운사 팔상전 석조천불좌상
조선 후기
돌
선운사 팔상전
본래 천불전에 봉안되었으나, 전각 소실 이후 현재는 팔상전에 100여 존이 남아 있습니다. 천불 신앙은 『현겁경』과 『관약왕약상이보살경 觀藥王藥上二菩薩經』등에 근거한 다불신앙으로 시방삼세 十方三世에 수많은 부처님이 상주한다는 내용과 연결됩니다. 재료는 불석을 사용하였으며, 머리 크기가 전체 높이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조선 후기 소석불상 小石佛像 특유의 신체 비례가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검단 · 의운 양대화상도
석초 스님
일제강점기 1915년
면에 채색
선운사 산신각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 黔丹 스님과 참당사를 창건한 의운 義雲 스님을 그린 불화입니다. 20세기에 활동한 석초 봉영 石蕉 琫榮 스님이 그렸습니다. 검단 스님과 의운 스님은 바위와 소나무에 걸터 앉아 서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화면 중앙에는 익살스러운 호랑이와 과일을 든 동자가 스님들을 보필하고 있습니다. 진영임에도 산신도의 형식을 취하고 산신각에 봉안된 점이 독특합니다.



선운사의 창건과 역사
선운사는 577년 백제의 검단선사 黔丹禪師께서 창건한 이래, 오랜 세월 불법 佛法이 머무는 수행의 도량으로 자리해 왔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자복사 資福寺로서 지정될 만큼 드높은 위상을 자랑했습니다. 비록 15세기 후반 일부 석탑만이 전할 정도로 사세가 위축되기도 했으나, 행호 幸浩 스님의 간절한 원력과 조선의 제7대 국왕인 세조 世祖의 아들 덕원군 德源君의 후원에 힘입어 중흥의 전기를 맞이했습니다. 1473년을 전후로 이루어진 중창은 선운사의 법통 法統을 한층 공고히 세운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때 깃든 신앙의 힘은 오늘날까지 선운사의 공간마다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참당사사적기
조선 1794년
종이에 먹
선운사 성보박물관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참당사 (현재 참당암)의 연혁과 기원을 기록한 책입니다. 의운 스님이 참당사를 창건한 내용과 함께 신라 진흥왕 眞興王이 선운산 좌변굴 左邊窟에서 머물던 중 꿈속에 나타난 미륵 삼존이 암석을 깨고 출현하는 영험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선운사, 도솔암 등을 창건하게 했다는 설화가 담겨 있습니다. 사찰의 시작부터 중창에 이르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선운사적
조선 1746년
종이에 먹
선운사 성보박물관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선운사의 전각 규모와 내부에 봉안된 불상 및 불화 등을 상세히 기록한 자료로, 『선운사 사적기』중 한 책입니다. 무명으로 엮은 표지에 닥지를 사용하여 내용을 썼으며, 글과 여백마다 '선운사주지인 禪雲寺住持印' 도장을 찍어 기록의 공신력과 관리 주체를 명확히 하였습니다. 책 끝부분에 '건륭 乾隆 11년' 이라는 묵서와 참여 인물의 직위 및 명단을 통해 1746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선운사의 운영 방식과 물목 관리 실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입니다.


선운사중신기
조선 1698년
종이에 먹
선운사 성보박물관
정유재란으로 전소된 선운사를 조선 후기에 다시 중수한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선운사사적기』중 한 책으로, 사찰의 연혁과 중수 경위는 물론 불사에 참여한 스님과 사부대중 260여 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찰의 흥망을 천운과 시대의 이치로 설명하며, 중수를 통해 산문의 기강을 바로 잡고 삼보 三寶의 인가 아래 제도를 정비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선운사 대웅보전 신중도
오봉 스님 등
조선 1807년
비단에 채택
선운사 성보박물관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선운사 대웅보전에 봉안되었던 이 <신중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호법신인 신중을 그린 불화입니다. 1807년 오봉 鰲峯 · 보월 寶月 · 완월 玩月 · 환익 環益 · 민선 敏詵 · 학윤 學允 · 복순 福順 스님이 함께 조성하였으며, 수화승 오봉 스님의 유일한 현존 불화라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화면은 상단과 하단의 2단 구성을 이루며, 상단 중앙에는 제석천과 범천이 서로 마주한 채 합장하고 있으며, 하단에는 정면을 향해 합장한 위태천을 중심으로 팔부중, 사금강, 동자가 좌우에 균형있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용문사 천불도
도문 스님 등
조선 1709년
비단에 채색
용문사 성보박물관
보물
<용문사 천불도>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천불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인 1709년 조성되었으며, 붉은 색의 바탕 위에 부처님의 형상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가로 44위, 세로 23위로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추어 배치하였고, 다만 상단의 첫 번째 줄 중앙의 4위가 비어 있어 전체 존상수는 1008위입니다. 가사의 착의 방식이나 수인 등을 달리함으로써 미묘한 조형적 변화를 주었습니다. 화가를 통해 도문 道文 스님을 비롯하여 설잠 雪岑 · 계순 戒淳 · 해영 海英 스님 등이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운사 천불도
천불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무량하게 존재하는 부처님을 표현한 다불 多佛 사상에 근거한 불화입니다. 선운사에서는 1476년 천불대광명전을 조성했으나 전쟁으로 소실되었고 이후 1618년에 천불전을 창건하였으며, 1668년에 천불상과 천불도를 조성하였습니다. 현재의 천불도는 1668년에 조성한 천불도가 낡자 새롭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선운사 천불도>는 이백십불회도 2폭, 이백이십오불회도 2폭으로, <동운암 천불도>와 함께 천불을 구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천불 신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선운사 동운암 천불도
조선후기
비단에 채색
고창 동운암 (석전기념관)
대승불교의 발전과 함께 과거와 미래를 포함한 무수한 세계의 부처님을 신앙하는 다불신앙이 등장하였으며, 특히 천불은 숫자를 넘어 무수히 많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현겁경』등 여러 경전에 나타났습니다. <동운당 천불도>는 석가모니 · 약사 · 아미타부처님 세 분과 과거의 일곱 부처님을 포함한 130위의 부처님을 그렸습니다. 화기가 소실되었으나, 화면 구성과 화풍 등을 살펴보았을 때 1754년 <선운사 천불도>와 함께 하나의 구성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이 천불도는 총 다섯 폭 중 주불도로 추정됩니다.



선운사 천불도
성옥 스님 등
조선 1754년
비단에 채색
동국대학교박물관
<선운사 천불도>는 1754년에 성옥 性玉 · 설심 雪心 · 회현 會玄 · 사인 思仁 · 체일 體一 · 도경 道敬 · 돈영 頓英 스님이 조성하였습니다. <선운사 천불도>는 1668년에 조성한 천불도가 낡자 새롭게 조성된 것으로 짐작되며, 현재 이백십불회도 2폭, 이백이십오불회도 2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용문사 천불도>와 더불어 조선시대 천불도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례입니다.



선운사의 선지식
선운사에는 부용 영관 芙蓉靈觀 (1485ㅡ1571), 청허 휴정 淸虛休靜 (1520ㅡ1604) 스님 등 문중의 조사 祖師를 비롯하여 여러 선지식 善知識의 진영이 전해 내려옵니다. 특히 설파 상언 雪坡尙彦 (1707ㅡ1791), 백파 긍선 白坡亘琁 (1767ㅡ1852) 스님은 선운사에서 수행의 기틀을 다졌으며, 조선 후기 불교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여러 스님들의 활동을 통해 선운사의 교학 敎學의 깊이와 선풍 禪風의 기개는 시대를 넘어 오늘날 선운사를 지탱하는 단단한 정신적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불조도
조선 말
종이에 먹
석전기념관
선운사에는 3점의 불조도가 전해지며, 행과 열에 맞춰 부처님과 역대 조사의 이름을 기록하였습니다. <불조도 1, 2>의 앞면 상단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포함한 과거의 일곱 부처님, 서천 (인도)의 28조사, 중화의 28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우리나라 고승의 법호와 법명이 적혀 있습니다. <불조도 3>은 상단에 서천 28조사, 중국 28조사, 우리나라 12조사를 언급하고, 고승 72분의 법호를 기록하였습니다. 설파 상언 雪坡尙彦 스님과 백파 긍선 白坡亘璇 스님을 직계로 배치하며 20세기 초 선운사의 문중 의식과 정체성을 강하게 표출하였습니다.



부용당대선사 진영
조선 후기
비단에 채색
선운사 성보박물관
조선시대 선지식인 부용 영관 芙蓉靈觀 스님의 모습을 그린 진영입니다. 부용 스님은 좌측을 바라보며 가부좌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양손에는 염주를 쥐고 있습니다. 푸른색 장삼에 붉은 색 가사를 수하였으며, 금구 장식으로 가사끈을 고정하였습니다. 부용 스님의 진영은 선운사에만 현존하고 있어 의미가 있습니다.



청허당대선사 진영
조선 후기
비단에 채색
선운사 성보박물관
서산대사로 유명한 청허 휴정 淸虛休靜 스님은 선과 교를 두루 겸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국 팔도의 승군을 이끄는 팔도도총섭으로써 호국 정신을 몸소 보이셨습니다. 스님은 옅은 푸른색의 장삼을 걸치고 붉은 색 가사를 수하였으며, 오른쪽을 향하고 의자에 앉아 왼손으로는 불자를 들었습니다.



화엄종주 설파당 진영
조선 후기
비단에 채색
석전기념관
설파 상언 雪坡尙彦 스님은 고창 출신으로, 19세에 선운사에 출가하였으며 1739년 용추사에서 15차례에 걸쳐 화엄경 강의를 할 정도로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영찬에는 화엄학에 뛰어났던 스님을 화엄종 제4조인 청량 징관 淸凉澄觀 스님에 빗대어 그 행적을 찬탄하였습니다. 이를 보여주듯 스님의 뒤로는 화엄경함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금봉당대종사 진영
조선 19세기
비단에 채색
선운사 성보박물관
금봉대종사는 선운사에 전하는 불조도를 통해 18세기에 활동했던 금봉 청감 金峰淸鑑 스님으로 추정됩니다. 금봉 스님은 1781년 도화주로써 선운사의 불상 게금과 시왕도 조성 불사를 이끌었습니다. 왼손으로는 용두와 불자가 달린 주장자를 쥐었으며,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올렸습니다. 스님의 우측에는 경상을 배치하고 그 위에 『미타경』을 올려 수행자로서의 면모를 강조하였습니다.






선운사 영산전 목조제석천상 및 복장유물
삼우 스님 등
조선 1681년
나무
선운사 영산전
제석천상은 상투를 틀고 높은 보관을 썼습니다. 방형에 가까운 얼굴은 두 볼의 양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간결한 착의와 장식의 절제, 문양 없는 원형 대좌 위에 선 형식 등에서 절제된 조형감을 보여줍니다. 복장유물 조사과정에서 「원문」이 발견되었으며, 1981년 삼우 三愚, 준계 俊戒, 학련 學連 스님 등이 조성에 참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조선 후기 조각승들의 유파 계보와 활동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묵담 대화상 진영
조선 19세기
비단에 채색
선운사 성보박물관
묵담 전해 默湛典海 스님은 대흥사 13대 강사로 이름이 높았던 호암 체정 虎巖體淨 스님의 8세손입니다. 1809년부터 1840년까지 선운사에서 석상함 중수, 영산전 조성 등 다양한 불사에 참여하며, 사중의 큰 어른으로 존경받았습니다. 묵담 스님은 진영에서 푸른색 장삼과 붉은색 가사를 수하고 오른쪽을 향한 채 의자에 앉아 있으며, 양손으로 긴 염주를 쥐고 있습니다.



설송당대종사 진영
조선 후기
비단에 채색
선운사 성보박물관
설송 대종사는 불조도의 설송 의홍 雪松義弘 스님으로 추정됩니다. 왼손에는 주장자, 오른손에는 염주를 들었으며 몸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바닥에는 화문석이 깔려 있고. 의자의 오른쪽에 위치한 경상에는 『미타경』이 올려져 있어, <화엄종주 설파당 진영>, <금봉당대종사 진영>과 유사한 형식입니다. 설송 스님의 얼굴은 다른 진영보다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정와 편액
이광사
조선 후기
나무
선운사 선방
청색 바탕에 글자를 양각하여 흰색으로 칠하고 홍색 테두리목에 흰 덩굴무늬를 그려 넣었습니다. 이 편액에는 '원교 圓嶠' 라는 두인 頭印과 '이광사인 李匡師印' 이라는 성명인 姓名印이 찍혀 있어 원교 이광사가 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광사는 1755년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신지도로 유배되었고, 유배샹활 중 쓴 편액이 호남 지역의 사찰과 고택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청와는 고요한 처소라는 의미이며, 서체는 중후하면서도 바르고 변화가 있습니다.


선운사 종두패
조선 1590년
나무
선운사 성보박물관
1590년 사찰의 종을 관리하는 소임인 종두가 알아두어야 할 전각과 요사의 현황을 기록한 것입니다. 앞면에는 선운사 내 주요 전각드르이 명칭이 나열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제작시기인 '만력 萬曆 18년', '선운사 종두패' 라는 기록이 새겨져 있습니다. 조선 전기 선운사의 사세와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무장현선운사대법당중수기
조선 1849년
나무
선운사 성보박물관
1839년 여름 장마로 피해를 입은 대법당 (현재의 대웅보전)을 이듬해 가을에 중수한 뒤 그 경위를 기록하여 새긴 것입니다. 찬성 贊誠, 의홍, 성찬 成贊 스님 등이 도화주 都化主로 나서 불사를 이끌었습니다. 중수에 참여한 전라감사, 무장현감을 비롯하여 백파 긍선 白坡亘璇 스님과 묵담 전해 默湛典海 스님 등 사중의 소임자, 목수, 단청 화원 등이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승속 僧俗이 협심하여 대법당을 중수한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선운사의 재건
선운사는 1597년 정유재란으로 가람 대부분이 소실되는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스님들은 무너진 터전을 마주하며 재건을 발원하였고, 허허로운 터 위에 전각을 하나씩 세우며 산사의 숨결을 되살렸습니다. 이 시기 대웅보전과 만세루 등이 재건되고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과 같은 대형 크기의 불상이 조성되면서 사찰의 중심 공간은 옛 위용을 되찾았습니다. 18세기에는 「석씨원류」간행과 전각 건립이 이어지며 선운사의 사격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이렇듯 전란의 상흔을 딛고 조성된 성보들은 무너진 자리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신앙의 힘과 선운사가 지켜온 유구한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선운사 대웅보전 소조약사불좌상 복장유물
조선 후기
저고리 / 개금중수기 / 후령통 / 황초폭자
선운사 성보박물관
선운사 대웅보전의 약사부처님 복장에서 발견된 「개금중수기 改金重修記」에 따르면, 1632년 화주 법정 法淨 스님이 불상의 조성을 시작하여 이듬해에 마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의 본존불 대좌에 남아있는 묵서에는 1633년 조성을 시작해 1634년에 완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연대에 차이를 보입니다. 불사를 총괄한 증명은 지훈 智訓 스님이며 참여 인원은 40여 명에 이릅니다.
복장에 넣은 짙은 녹색의 <저고리>는 붉은색 고름과 곁마기, 끝동을 갖춘 삼회장 저고리로,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중엽 여성 저고리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고리의 안쪽에는 '경거고창현감심씨양위 京居高敞縣監沈氏兩位' 라는 기록이 남아 있고, 이는 서울에서 온 고창 현감 심씨 부부를 뜻하는 것입니다.





선운사 영산전 목조십육나한상
삼우 스님 등
조선 1681년
나무
선운사 영산전
선운사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나한상들은 제각각 다른 표정과 미묘한 자세 변화를 통해 수행자의 생동감을 드러냅니다. 모두 나무로 만든 암좌 위에 앉아 있으며, 고개를 약간 숙인 정면 자세를 기본으로 일부는 측면으로 기울어 조형적 변화를 더합니다. 상호는 넓은 이마와 다양한 표정이 특징으로 옅은 미소를 띠거나 입을 벌려 빠진 앞니가 드러나는 등 소박하고 무구한 인상을 보입니다. 또한 머리까지 가사를 덮은 복두의 覆頭衣를 착용하고 소매로 두 손을 감싼 표현, 서수 瑞獸를 안은 모습 등에서 각 존상의 개성이 잘 드러냅니다.





선운사 명부전 목조동자상
조선 1676년
나무
선운사 명부전
선운사 명부전의 동자상은 보살님 또는 시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존재입니다. 관모를 쓰거나 댕기머리, 쌍계 雙髻 머리를 한 채 아이 특유의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선운사 명부전 목조사자상
조선 1676년
나무
선운사 명부전
선운사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삼존상을 중심으로 시왕, 귀왕, 판관, 동자, 사자, 장군 등 총 27존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사자는 망자의 죄를 판별하는 전령 傳令이자 집행자로 조선 후기 명부전의 사자상은 대개 감재 監齋 · 직부 直符 사자 형식이 주를 이룹니다. 장대와 문서를 지니고 관복 차림과 절제된 표정을 통해 공정한 집행자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상, 그 돌아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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