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활박물관] 03
화성능행도 병풍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1795년(정보 19) 윤 2월 11일 향교 대성전에 참배하는 정조를 호위하는 군사들
동개
21C
화살을 휴대하기 위한 시복과 활을 휴대하기 위한 궁대를 결합해 겨드랑이에 차는 기구로 고건, 궁시대라고도 한다.
『목민심서』에서는 창복이라고 했다. 의장용으로 얹은활은 궁대에 넣었을 때 반만 들어가고 기패같은 의장용 화살을 시복에 꽂았다.
육군박물관 소장품 복제
성시구장식
21C, 4㎝
화살을 휴대하기 위해 담는 통을 꾸미는데 사용하는 장식품이다. 통모양을 호록 · 시통 · 전통, 넓적한 모양을 시복이라 한다. 삼국시대의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는데, 특히 시복은 지배자 무덤들에서 출토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복제
촉돌이
20세기, 31㎝ × 8㎝
과녁에 박힌 화살촉을 뽑은 후 흔들린 촉을 눌러서 고정시키는 도구로 사슴뿔로 만들었다.
김박영 소장품
깍지
21C, 3㎝ × 5㎝, 3㎝ × 7㎝
깍지는 활시위를 당길 때 손가락이 많이 아프기 때문에 손가락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것은 엄지손가락에 끼고 활시위를 걸어서 당겼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백인 김장환 선생
(1909 ~ 1984)
일월오봉도
왕의 복식
익선관 : 국왕의 평상복에 쓰던 모자로 매미 날개 모양이 위쪽을 향해 달려 있다. 이는 매미의 오덕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곤룡포 : 가슴과 등, 양어깨에 용무늬를 금으로 수놓은 원보를 붙인 평상시 정복이다.
옥대 : 띠돈을 옥으로 만든 허리띠이다.
김혜옥 제작
경기감영도
보물 제1394호, 리움소장
돈의문 밖 경기 감영(현 도청) 중심으로 '신설약국(新設藥局)', '만병회춘(萬病回春)'을 써넣은 약국, 미투리를 파는 신발가게, 쌀가게, 행상, 좌고 등이 길가에 늘어서 있다. 감영의 긴 행렬과 구경꾼들, 가위를 든 엿장수,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낙네, 동자와 마부를 거느리고 말을 타고 외출하는 양반 등 당시의 길거리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중 5개의 관혁을 놓고 활쏘기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또한 중국 사신을 위한 영은문과 모화관 맞은편 연향대(宴享臺)의 활쏘기하는 모습도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화약무기와 화포
우리나라에서는 1377년(우왕 3) 최무선에 의해 화통도감(火㷁都監)이 설치되면서 화약병기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었다. 화통도감에서는 대장군포, 화포, 주화(走火) 등 18종의 화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구성이나 규모, 화약 병기의 위력 등에 대해서는 문헌자료가 소략하여 그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다.
고려는 다양한 화약병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군사들을 양성하였다. 고려는 화기의 전술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1378년 4월, 화통방사군(火㷁放射軍)을 대형관청에 3명, 중형관청에는 2명, 소형관청에는 1명을 배치하였다. 또한 고려는 화기를 무장시켜 활용할 전함인 누선(樓船)을 건조하였다. 화기로 무장된 고려의 전함은 이후 왜구와의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하여 1380년 진포해전과 1383년 남해의 관음포해전에서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것은 함포전술로 해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혁신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북방개척 및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각종 화기가 발달하였다. 특히 세종 때에는 각종 화기와 사거리와 발사 방법을 많이 개량하여 대마도 정벌과 북방영토의 개척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특히 문종 때 만든 화차(火車)는 신기전(神機箭)과 결합하여 신기전 10발을 단발 또는 연발로 발사할 수 있는 다연장로켓식 화기이고, 총통과 결합하면 세전총통 50자루로 세전 200발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무기였다.
정왜기공도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천자총통
130㎝
『융원필비』에 따르면 정제한 구리로 주조한 중량이 1,209근으로 1회 발사 시 화약 30량이 사용되었다. 50근짜리 대장군전을 쏠 때 1,200보까지 나가고 납을 입힌 무쇠 탄환을 쏘면 10여리를 나갔다고 한다.
육군박물관 소장품 복제
총통(천자총통)
조선 전기에 청동으로 제작한 유통식 화포이다. 크기와 구경에 따라 천지현황으로 불린 조선 전기의 화포 중 가장 큰 것이 천자총통이며, 제작 시기가 명확하다. 포구와 포미까지의 굵기 변화가 거의 없으며 8개의 죽절이 배치되어 있다.
지자총통
103㎝
『화포식언해』에 따르면 1회 발사 시 화약 20량으로 조란환 200개를 쏠 수 하였다. 29근 8량짜리 장군전을 쏠 때 800보에 이른다고 하였다.
육군박물관 소장품 복제
새로운 화약무기와 활
조총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조총은 화승을 이용해 화약에 불을 붙여 탄환을 발사하는 총이다. 조총이 탄생하기 이전의 휴대용 화약 무기들은 크기가 작은 대포에 나무자루를 부착한 형태였다. 따라서 점화를 한 다음에는 조준할 새도 없이 발사되었기 때문에 명중률이 낮았다. 조총은 방아쇠를 당기면 불 붙은 화승이 화약접시의 점화용 화약에 불을 붙여 탄환을 발사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정확하게 조준한 상태에서 원하는 시점에 사격할 수 있었다.
새로운 화약무기인 조총은 관통력과 사거리가 길어서 전투에 있어서 살상력이 높았으며, 또한 병사들이 단기간의 훈련에 의해서 어느 정도 사격이 가능하였다. 그리하여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허적이 "군대무기에서 조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린아이도 항우(項羽)를 대적할 수 잇게 하는 것으로 참으로 천하에 편리한 무기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화약 및 화기의 제조에는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발사시간의 지연 및 우천 시의 문제 등은 문제점이었다. 이를 보완시켜 줄 일반무기로 활과 칼도 전투에 병행하여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과 청의 침입을 받은 뒤 조선에서는 신무기 제조에 국가적 차원에서 진력하였다. 전란을 통하여 조총을 불랑기포, 호준포, 삼안총, 홍이포 등과 같은 화약 무기를 제조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1860년대에 열강의 직접적인 침략을 받으면서 무기발달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고, 신무기 개발과 서양무기의 모방 등이 이루어졌다.
평양성탈환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자총통
95㎝
『화포식언해』에 따르면 1회 발사 시 화약 4량으로 철환 100개를 쏠 수 있다 하였다. 차대전을 쏠 때 800보에 이른다고 하였다. 차중전은 화약 3량으로 1,500보에 이른다 하였다.
육군박물관 소장품 복제
삼총통
31.2㎝
『국조오례의서례』에 길이 1척 6분 2리, 무게 1근 3량으로 나왔다. 차중전을 발사할 때는 모병에 긴 나무막대를 꽂아 사용한다.
육군박물관 소장품 복제
세총통
13.9㎝
『국조오례의서례』에 길이 4척 8리, 무게 3량 5전으로 나왔다. 차세전을 발사할 때는 철흠자로 세총통을 집어 사용한다.
육군박물관 소장품 복제
황자총통
89㎝
『화포식언해』에 따르면 1회 발사 시 화약 3량으로 철환 40개를 쏠 수 있다 하였다. 피령차중전을 쏠 때 1,100보에 이른다고 하였다.
육군박물관 소장품 복제
울산성전투도
나베시마 보효회[鍋島報效會] 소장, 국립진주박물관 복제
전통 箭筒
화살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인 전통은 전쟁을 하거나 사냥을 할 때 화살을 담았다. 창원 다호리에서 기원후 1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옻칠을 한 전통이 발견되었다. 화살을 쏘는데 있어 활과 화살 그리고 화살을 담는 전통, 이 세 가지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전통은 대부분 조선시대의 것으로 용도에 따라 취미와 전쟁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전쟁용 전통은 많은 화살을 운반하기 위해 길이가 짧고 둘레가 큰 것이 특징이다. 전통은 2년 이상 자란 대나무를 가장 많이 사용했으며, 종이, 오동나무, 거북딱지, 상어가죽 등의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기도 했다. 전통은 옻칠, 조각, 나전을 이용해 표면을 장식하기도 했는데 주된 문양은 십장생, 용, 나무였으며 활쏘기에서 지켜야 할 교훈적인 내용을 새겨 넣기도 했다.
전통을 만드는 장인을 전통장(箭筒匠), 통개장(筒介匠)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활과 화살, 그리고 부속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국가기관인 상의원 경공장에 소속됐다. 각 지방에서는 감영, 병영, 수영 등에도 전통장이 소속되어 있었다.
단원풍속화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두루주머니
아래는 둥글고 위는 모가 진, 허리에 차는 주머니이다. 아가리에 잔주름을 잡고 끈 두 개를 좌우로 꿰어서 여닫게 되어 있다. 끈을 졸라매면 전체가 거의 둥글게 되어 두루주머니라고도 한다. 전통에 달린 두루주머니에는 깍지 등을 넣었다.
전통
1960년대, 4.5㎝ × 84㎝
화살을 휴대하기 위해 담은 통이다. 넓적한 모양은 시복이라 하고, 통모양을 호록 · 시통이라고도 한다. 화살의 개수는 5의 배수로 넣었다. 김장환 선생이 사용했던 전통에는 춘포 조영기가 그린 수렵도 그림과 '경기도 소사 김장환'이란 글씨가 있다.
전시소감을 써보아요
프로타주 기법으로 표현하는 수렵도
프로타주 [frottage]
'마찰시키다, 비비다, 어루만지다, 쓰다듬다'가 본래의 의미입니다.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사용하던 문질러내기의 수법으로 표현되었으며 목탄, 크레용 등을 이용했습니다. 문질러내는 볼록 부분에 댄 종이를 비켜 놓거나 다른 색으로 문질러 색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 ㅡ 무용총 수렵도
중국 길림성 집안현 여산 남록에 있는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서도 무용총의 수렵도는 말을 탄 인물들이 달아나는 짐승을 향해 활을 당기는 순간을 박진감있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 고구려 고분벽화는 300 ~ 500년대에 중국의 집안, 환인, 우리나라의 평양, 안악지역에 분포하고 있어 고구려가 강성했던 시기의 영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사 속 인물을 찾아라!
조선시대 울산성 전투도 일부분입니다.
역사 속 인물이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 나라를 위해 울산성 전투에 참가햇을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부천활탐험대원은 활동지 속에 있는 역사 속 인물을 찾아주세요.
중신기전
145㎝, 복제
중신기전은 대나무 앞에 쇠촉을 달고 그 뒤에 약통을 달앗다. 중신기전의 발사는 한 개씩 빈 화살통 같은 곳에 꽂아 발사하기도 했다. 문종이 1451년(문종 1년)에 화차를 제작한 뒤로부터는 화차의 신기전기에서 주로 발사되었다. 중신기전의 사정거리는 150㎝ 가량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신기전은 임진왜란 때에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대신기전
100㎝, 복제
1448년(세종 30년) 고려 말기에 최무선이 화약국에서 제조한 로켓형 화기인 주화를 개량하여 명명한 것으로 대신기전, 신화신기전, 중신기전, 소신기전 등의 여러 종류가 있다. 병기도설에 기록된 신기전에 관한 내용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켓병기의 기록이다. 대신기전은 대나무로 만들어진 화살대의 윗부분에 종이로 만들어진 약통(로켓엔진)을 부착했다. 폭탄에 해당되는 발화통을 약통 위에 올려 놓고 도화선을 약통과 연결해 신기전이 목표 지점에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폭발하도록 설계되었다. 사정거리는 1,000m 이상이며, 세종 때 90개가 제조되어 의주성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다.
소신기전
90㎝, 복제
소신기전은 대 · 중신기전과 달리 폭발물이 장치되어 있지 않다. 소신기전의 발사는 한 개씩 빈 화살통 같은 곳에 꽂아 발사하기도 했다. 문종이 화차를 제작한 뒤로부터는 화차의 신기전기에서 주로 발사되었다. 소신기전의 사정거리는 100m 가량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신기전은 임진왜란 때에도 사용된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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