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념관 등

[한국근대문학관] 03

드무2 2023. 6. 23.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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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관] 03

 

 

 

 

 

 

1910 ~ 1919

자유로운 리듬으로

개인의 정서를 노래하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 후 우리의 시문학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일본에서 근대문학 수업을 받은 유학생들은 서구 문학 이론을 공부하면서 시문학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신체시가 주로 계몽적인 내용을 다루면서 집단의 목소리를 드러냈다면, 유학생 시인들은 개인의 정서를 개성적 정서를 개성적 목소리에 담아 노래했다. 1918년 김억, 황석우 등이 주도한 <태서문예신보>는 서구 문학 이론을 소개하면서 많은 번역시와 창작시도 실었다. 이와 함께 『청춘』, 『학지광』 등의 잡지 발간은 1920년대 이후 근대적 자유시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최초의 산문 자유시라 할 수 있는 주요한의 「불놀이」 (1919)는 개인의 정서를 자유로운 문장에 담아낸 작품으로, 1920년대 본격적인 자유시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김억과 주요한 등은 민요시의 실험을 통해 민족적 정서를 개인의 감성과 결합시켜 자유롭게 노래함으로써 자유시의 새로운 형태를 개척했다. 이러한 노력은 1920년대 민요시론으로 구체화되며, 김소월의 시를 통해 그 성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해파리의 노래』 ㅡ 최초의 근대창작시집

 

 

 

 

 

<태서문예신보>

 

 

 

 

 

 

『학지광』

 

 

 

 

 

 

근대적 자유시 「불놀이」의

등장 배경과 영향을 알아봅시다

 

창가와 신체시

<극복>

· 정형률 탈피

· 집단에서 개인으로

 

서양 및 일본의 자유시

<영향>

· 자유율

· 개성적 정서

 

번역 및 시적 교유

<교류>

· 김억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

· 주요한의 일본시 번역 경험

 

 

김소월 등 1920년대 이후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침

 

 

 

 

 

 

1910 ~ 1919

식민지 근대의 확장과

무단 통치의

강화 속에서

근대 문학이 출발하다

 

1910년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무단통치의 시기를 맞는다. 그동안 발표된 우리 문학은 일제의 가혹한 검열과 규제를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시대문학은 정치 사회적 문제가 배제되는 대신, 신교육과 자유연애, 근대문명 예찬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작품이 주를 이룬다. 또한 무기력한 지식인의 우울과 고뇌를 묘사한 단편소설들도 발표되었다.

다른 한편 이수일과 심순애의 이야기로 대표되는 『장한몽』 (1913), 몽테크리스트 백작 이야기인 『해왕성』 (1916)처럼 외국 문학을 우리 상황에 맞게 각색하여 재창작한 번안소설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대중적 흥미를 고취하는 내용이 많았다. 시 쪽에서는 근대적 개인의 내면과 정서를 노래하는 자유시가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근대적 '작가'와 '문학'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이 시기의 대표작 이광수의 『무정』 (1917)은 근대 문명을 동경하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꿈을 그렸다. 장편 『무정』은 문체나 인물, 사건 등의 묘사 면에서 이전 시기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 최초의 본격 근대소설로 평가받는다. 초기 자유시의 형식적, 내용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로는 주요한의 『불놀이』 (1919)와 김억의 『봄은 간다』 (1918)를 꼽을 수 있다.

 

 

 

1910

한일 강제 병합

각종 신문, 잡지 통폐합

독립 관련 책 압수 및 소각

이해조 「자유종」

 

1911

『소년』 폐간

 

1912

이인직 「모란봉」

최찬식 「추월색」

김교제 「현미경」

 

1913

조중환 번안 「장한몽」

 

1914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일본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 기관지 『학지광』 창간

종합지 『청춘』 창간

 

1915

시정 5주년 공진회 개최

안국선 단편집 『공진회』

 

1916

이상협 번안 「해왕성」

이광수 평론 「문학이란 하오」

 

1917

러시아 혁명

종합지 『반도시론』 창간

이광수 장편 『무정』

 

1918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태서문예신보> 창간

양건식 단편 「슬픈 모순」

나혜석 단편 「경희」

 

1919

3 · 1독립만세운동

순 문예지 『창조』 창간

최초의 한국 영화 <의리적 구투> 단성사에서 상영

주요한 시 「불놀이」

김동인 단편 「약한자의 슬픔」

 

 

 

 

 

 

『창조』 창간호 창조사, 1919.

 

 

 

 

 

 

 

 

 

 

 

 

오뇌의 무도 懊惱의 舞蹈

김억 (金億) 역, 조선도서 (주), 1923.

최초의 서양시 번역시집

최초의 현대시집

 

 

 

 

 

 

 

 

 

주요한 신원진술서

주요한 (朱耀翰)

1976. 개인소장.

 

 

 

 

 

 

아름다운 새벽

주요한 (朱耀翰)

조선문단사, 1925.

 

 

 

 

 

 

 

 

 

1910 ~ 1919

자아각성과 근대 문명을 외쳤으나

식민지 현실과 유리되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으로 자유로운 창작이 불가능하게 되면서 신소설도 통속적으로 변화하거나 구소설로 퇴행한다. 한편, 근대적 신교육을 받은 일본 유학생 출신의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문학을 주도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들은 앞 시기의 신소설 및 역사전기물과 같이 계몽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문학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문학에 표현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문학을 통해 식민지 조선을 문화적으로 깨우치고 개별적인 인간의 생활과 내면을 진실하게 형상화하는 것이야말로 문학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 된 것이다.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무정』은 이러한 1910년대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인 『무정』은 이전의 소설과 달리 구체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현실성있는 인물과 사건을 다루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 그대로를 소설 문장으로 사용함으로써 근대소설의 문체를 뚜렷하게 확립하였다. 세밀한 묘사와 생동감있는 인물 창조 면에서도 이전 시기의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광수는 구시대의 도덕과 윤리 등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문화건설을 열망하였다. 이를 위해 근대적 학교교육, 자유연애, 풍속개량 등 이전 시기와는 달라진 내용의 계몽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이광수의 주장은 식민지 지배체제가 타파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문화와 문명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계몽주의였다. 『무정』 이외에 현상윤, 양건식 등은 당대 지식인의 시대적 고뇌를 묘사한 단편들을 발표하였다.

 

 

 

『무정』이 연재되던 때의 1910년대 매일신보사

 

 

 

이광수 친필

 

 

 

 

 

 

 

 

 

이광수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이광수 (李光洙), 연도 미상, 노양환 소장.

 

 

 

 

 

 

영화 <무정> 시사회에서 박기채 감독과 주연 한은진 (박영채 역)과 함께

1939, 노양환 소장

 

 

 

 

 

 

 

 

 

개척자 開拓者

이광수 (李光洙)

홍문당 서점, 1922 [1917 ~ 1918 첫 발표]

 

 

 

 

 

 

 

 

 

자녀중심론 新生活論

이광수 (李光洙)

박문서관, 1926 [1918 첫 발표], 개인 소장.

 

 

 

 

 

 

무정 無情

이광수 (李光洙)

회동서관, 1925 [6판]

최초의 근대 창작 장편소설

 

 

 

 

 

 

무정 無情

이광수 (李光洙)

박문서관, 1938 [8판], 개인 소장.

 

 

 

 

 

 

 

 

 

바로잡은 무정

이광수 (李光洙)

문학동네, 2003.

 

 

 

 

 

 

한국 최초의 창작 근대 장편소설

이광수의 『무정』

 

 

 

 

 

 

 

 

 

1919 ~ 1925

청년 시인들, 감상적 비애와

좌절을 토로하다

 

1920년대에는 3 · 1운동 실패로 인한 좌절감과 현실도피 의식을 표현한 감상적 낭만주의 시가 주로 창작된다. 이상화, 홍사용, 박종화, 박영희, 김기진 등은 동인지 『백조』에서 영탄적 어법으로 슬픔과 좌절, 파멸과 죽음에 대한 감상적 동경을 주로 노래했다. 이런 경향에는 3 · 1운동의 실패 이후보다 나은 미래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식민지 조선 시인의 좌절감과 불안한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었으므로 청년 특유의 과잉된 정서도 여기에 작용했다. 박영희의 「월광으로 짠 병실」 (1923), 박종화의 「흑방비곡」 (1922)과 「사의예찬」 (1923) 등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몽환적이며 감상적인 꿈의 세계를 담아 노래한 시들이다. 『백조』 발간과 운영에 주도적 역할을 한 홍사용도 슬픔과 감상적 정조를 노래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왕이로소이다」 (1923)에서 보여지듯 무작정 현실도피로만 흐르지 않고 민요에 바탕을 둔 리듬과 민중 정서에도 주목했다.

『백조』의 한계를 돌파하고 근대 자유시의 새로운 전형을 창조한 시인으로는 단연 이상화가 손꼽힌다. 그는 「나의 침실로」 (1923)를 통해 동굴과 밀실로 대표되는 새 생명의 세계를 자유로운 리듬과 형식 속에 담아냈다. 이후 이상화는 자기 시의 감상주의적 경향을 극복하며 이 시대의 가장 빼어난 시로 평가되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6)를 발표했다. 이상화는 이 작품에서 식민지로 전락한 민족 현실에 대한 냉철한 자각과 비판을 기초로 해방된 민족의 미래를 정열적으로 노래했다.이 작품은 『백조』가 가졌던 사상적, 미학적 한계를 단숨에 극복했고, 이후 한국시의 내용과 형식, 사상과 이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전범으로 우뚝 서세 되었다.

 

 

 

『백조』 제1호

 

 

 

 

 

 

『백조』 제2호

 

 

 

『백조』 제3호

 

 

 

 

 

 

퇴폐적 낭만에서 현실에 대한 눈뜸으로

 

「사의 예찬」

박종화

 

보라!

때 아니라, 지금은 그때 아니라.

그러나 보라!

살과 혼,

화려한 오색의 빛으로 얽어서 짜놓은

훈향 (薰香)내 높은

환상의 꿈터를 넘어서

검은 옷을 해골 위에 걸고

말 없이 주토 (朱土)빛 흙을 밟은 무리를 보라,

이곳에 생명이 있나니

이곳에 참이 있나니

장엄한 칠흑 (漆黑)의 하늘 경건한 주토의 거리!

해골! 무언!

번쩍거리는 진리는 이곳에 있지 아니하냐.

아! 그렇다 영겁 (永劫) 위에.

 

젊은 사람의 무리야

모든 새로운 살림을

이 세상 위에 세우려는 사람의 무리야,

부르짖어라, 그대들의

얇으나 강한 성대 (聲帶)가

찢어져 폐이 (廢弛)될 때까지 부르짖어라,

격분에 뛰는 빨간 염통이 터져

아름다운 피를 뿜고 넘어질 때까지

힘껏 성내 보아라,

그러나 얻을 수 없나니,

그것은 흐트러진 만화경 조각

알지 못할 한 때의 꿈자리이다.

마른 나뭇가지에

곱게 물들인 종이로, 꽃을 만들어

가지마다 걸고,

봄이라 노래하고 춤추고 웃으나

바람부는 그 밤이 다시오면

눈물나는 그 날이 다시오면,

허무한 그 밤의 시름 또 어찌하랴.

 

얻을 수 없나니 참을 얻을 수 없나니,

분먹인 얇다란 종이 하나로

온갖 추예 (醜穢)를 가린 이 시절에

진리의 빛을 볼 수 있나니,

아ㅡ 돌아가자

살과, 혼,

훈향 내 높은 환상의 꿈터를 넘어서,

거룩한 해골의 무리

말 없이 걷는

칠흑의 하늘, 주토의 거리로 돌아가자.

 

『백조』 3호, 1923년 9월.

 

두 시를 보라색 문장파란색 문장을 비교하며 감상해보세요

두 시인의 감정과 생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의 예찬 黑房秘曲

박종화 (朴鍾和)

조선도서주식회사, 1924 [1923 첫 발표]

 

 

 

 

 

 

 

 

 

 

 

 

 

 

 

나의 침실로 尙火와 古月

이상화 (李相和)

청구출판사, 1951 [1923 첫 발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개벽

이상화 (李相和)

개벽사, 1926.

 

 

 

퇴폐적 낭만에서 현실에 대한 눈뜸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ㅡ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지옥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긴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기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자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ㅡ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개벽』 70호 1926년 6월.

 

두 시를 보라색 문장파란색 문장을 비교하며 감상해보세요

두 시인의 감정과 생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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