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념관 등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 03

드무2 2023. 7. 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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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 03

 

 

 

 

 

 

 

 

 

 

 

 

함무라비 법전

복제품

 

 

 

 

 

 

 

 

 

함무라비 법전

함무라비 왕이 반포한 법전으로, 성인 남성의 키가 훌쩍 넘는 크기의 석비이다. 맨 위에는 의자에 앉은 태양신 샤마쉬 (Shamash)가 함무라비에게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하사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석비의 앞 · 뒤에는 쐐기문자로 282개의 법 조항이 새겨져 있다.

 

 

 

함무라비 법전 축소모형 (왼쪽)

함무라비 법전의 196조 (오른쪽)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면, 그의 눈도 멀게 될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

 

 

 

함무라비 법전

 

이 석비는 바빌로니아 (바빌리)의 여섯 번째 군주인 함무라비 (재위. 기원전 1792 ~ 기원전 1750 추정)가 반포한 법률 문서이다.

검은 섬록암 상부에 함무라비가 태양신 샤마쉬 (Shamash)로부터 왕권을 상징하는 '재는 줄'과 '재는 막대기'를 받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석비 앞 · 뒤로 새겨진 쐐기무나 명문은 함무라비의 업적을 찬양하는 서문과 282개 법조문 그리고 왕의 복을 빌면서 후대인들을 훈계하며 경고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함무라비가 왕위에 올랐을 때 바빌로니아는 소국에 불과했으나, 북동부 변방 지역부터 점차 세력을 넓혀나가 최종적으로 북부 앗슈르 (Ashur)와 서부의 마리 (Mari)를 지배하는 왕국은 세우게 된다. 함무라비는 지지 세력에게 보상하기 위해 '그 땅 위에 정의를 확립하였다'는 명분으로, 백성들의 빛을 탕감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런 관습은 그의 후계자들에게도 이어졌고, 고대 서아시아 문화 속에 정의롭고 관대한 지배자를 상징하는 징표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함무라비 법전은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을 법률로 규정하는 자가 정의로운 지도자라는 서아시아의 전통을 계승한 유물이라 평가할 수 잇으며, 현존하는 고대 법률 문서들 중 가장 방대한 내용의 규정을 보존하여 고바빌로니아 사회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윤신덕]

 

 

 

 

 

 

 

 

 

비쏘툰 명문

 

 

 

비쏘툰 명문은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1세 (Darius I, 재위. 기원전 522 ~ 기원전 486)가 반란군에게 승리한 후 비쏘툰산에 새긴 다국어 (多國語) 기념비이다. 같은 내용이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아카드어 총 세 가지 언어로 되어 있어 쐐기문자 해독에 큰 역할을 하였다.

비쏘툰산은 고대의 주요 도시인 바빌론과 엑바타나 (Ecbatana, 오늘날 Hamadan)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이 명문은 두 도시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페르시아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명문의 내용은 다리우스왕의 이름과 그의 조상들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다리우스는 메대 왕족의 가우마타 (Gaumata) 등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열아홉 차례 전투를 치렀다. 그는 아후라마즈다 (Ahura Mazda, 우리미즈다) 신의 은총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명문의 상부 중앙에 새겨진 부조는 명문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다리우스왕은 한 손에는 활을 들고, 한 발로 적을 밟고 서 있다. 그의 앞으로 반란군 아홉 명이 밧줄에 묶인 채 줄지어 있다. 그들 위로 날개 달린 아후라마즈다가 공중에서 지켜 보고 있다.

명문의 해독은 19세기 영국인 헨리 롤린슨 (Henry Rawlinson, 1810 ~ 1895)에 의해 진행되었다.

 

[윤성덕]

 

 

 

 

 

 

 

 

 

 

 

 

 

 

 

 

 

 

 

 

 

 

 

 

 

고대 문자 지도

마야 문자

 

 

 

라틴 문자, 에트쿠리아 문자, 그리스 문자, 선형문자 A · B, 아람 문자, 페니키아 문자, 원시 나이 문자, 이집트 문자,

쐐기 문자, 페르시아 문자, 원 엘람 문자, 카로슈티 문자, 인더스 문자, 브라흐미 문자, 한자

 

 

 

마야 문자, 사라진 문자와 문명

 

 

 

마야문자, 사라진 문자와 문명

 

미야문자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메소아메리카지역 Mesoamerica (현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에서 사용되던 문자이다. 5세기 ~ 10세기 사이에 가장 많은 기록을 남겼고, 16세기경 문명과 함께 사라졌다.

마야문자는 종교적인 성격을 강하게 띤 문자이다. 신에게 기도하고 신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서 듣고자 했던 마야인들의 삶과 세계관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마야문자 기록은 달력 (마야력)이 절반에 가까운 내용을 차지한다. 달력은 제사장에 의해 기록되었다. 지도자들의 연대기, 전쟁, 종교 행사, 천문학 자료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마야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달력은 현재의 과학적 수치와도 큰 오차를 보이지 않는다.

마야문명은 외침으로 인해 상당수의 기록이 소실된 탓에, 남아있는 일부의 기록만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사라진 문명의 흔적을 추적하기 위해 지금도 마야문자를 해독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연구자 노트

 

○ 사용시기 : 기원전 3세기경 ~ 기원후 16세기경

○ 사용지역 : 메소아메리카의 마야지역 (현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

○ 기록언어 : 마야어

 

마야문자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3114년경에 그들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때부터 이미 문자가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대략 기원후 150년경에 이르러 문자로서의 구조적 체계를 정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기원후 5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가장 많은 기록을 남겼다.

마야 문자를 가리켜 상형문자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으나, 단순하게 상형문자로 보기는 어렵다. 마야 문자는 소리글자 (表音文字, 표음문자)와 뜻글자 (表意文字, 표의문자)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또한 약 1,000개 이상의 기호와 약 250개 정도의 자음모음글자 (silabogramas), 약 500개 정도의 뜻글자를 가지고 있다. 그 밖에 도시의 이름, 달력의 이름 등을 표시하는 다양한 문자가 존재하고, 쓰는 사람, 지역, 시기, 글자를 쓰는 매체에 따라 다양한 문자 형태를 사용하였다.

마야 문자 하나의 글자는 위치에 따라 문자의 기본 골격이 되는 부호인 기본문자 (Signo Principal), 기본문자의 앞에 붙는 부호인 전치사 (Prefijo), 기본문자와 함께 중간에 들어가는 부호인 위 중치사 (Seperindice), 아래 중치사 (Subindice)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 중치사
                          전치사                                           기본문자                                       접미사
                                                                              아래 중치사

 

문장은 달력 부분과 서술 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서술 부분보다 달력 부분이 더욱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문의 처음은 물론이요, 각 문장의 처음도 역시 달력으로부터 시작한다. 우리 식으로 옮겨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년 ○○월 ○○일은 음력으로는 ○○이고, ○○달이 뜨고 ○○일이 지난 날이며,

이 날은 또 다른 달력으로는 ○○일인데, 이날 ○○가 태어났다.

그 후로 ○○일이 지난날은 ○○월 ○○일인데 이날 그가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그 후로 ○○일이 지난날은 ○○월 ○○일인데 이 날 그가 피 공양을 했다."

 

한 문장은 "달력ㅡ동사ㅡ목적어 (혹은 주어)"의 순서가 일반적이다. 예를들면 "○○년 ○○월 ○○일에 탄생하다 방패 표범"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한국말 어순으로 바꾸면 "○○년 ○○월 ○○일에 방패 표면이 탄생하였다"가 되는 것이다.

 

마야 문자는 문서 (책), 비석, 기둥, 제단, 건물장식, 벽화, 도자기 또는 목걸이나 귀걸이와 같은 장신구 등에 적혀 있다. 문자의 내용은 대부분 마야의 종교와 깊은 연관이 잇기에 지도자와 종교인들이 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시민들이 모이는 장소에 비석이나 조각 등 누구나 볼 수 있는 기념물들을 만들어 문자와 그림을 함께 적었다는 것을 보면, 일반 시민들도 마야문자에 대한 일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잇을 것이다.

유럽이 원주민 문명을 정복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마야문자로 기록된 수많은 책이 있었으나, 우상 숭배의 한 형태라는 이유로 금지되어 대부분 불태워지거나 없어지고 말았다. 마야문자를 사용하거나 마야문자가 쓰인 책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사형에 처하다 보니 마침내 오늘날에는 그 맥이 끊어지게 되었다. 결국 마야 문자는 역사 사료, 고고학적 발굴, 언어학적 접근 그리고 상상력을 동우너한 형태 연구자들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송영복]

 

 

 

 

 

 

드레스덴 문서

900년경 ~ 1492년

 

 

 

드레스덴 문서

복제품

 

 

 

 

 

 

 

 

 

 

 

 

 

 

 

 

 

 

 

 

 

 

 

 

드레스덴 문서

 

드레스덴 문서는 유럽 침략 이전의 마야에 대해 알 수 있는 세 개의 문서 중 하나로, 아코디언 형태로 접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드레스덴 문서 · 마드리드 문서 · 파리 문서로 각각 불리는 이 문서들은 소장처를 따라 명명되었는데, 후고전기 (900 ~ 1492)에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멕시코 총독이던 에르난 코르테스 (Hernán Cortés, 1485 ~ 1547)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이던 카를 5세 (Karl V. 재위. 1516 ~ 1556)에게 바치려 가져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책 대부분이 여러 가지 색깔로 그려진 화려한 그림책이었으므로, 당시 신대륙이라 불리는 곳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유럽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주로 종교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마야의 신관들이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한 일종의 기도서와 같은 역할을 하거나 과학적인 기록을 적어 놓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종교적인 행사를 준비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39장의 종이에 78쪽이 기록되어 있는데, 내용을 크게 7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반째는 신들의 이야기, 두 번째는 금성과 연관된 천문학 지식, 세 번째는 개기일식과 개기월식 등의 천문학 지식, 네 번째는 뱀과 연관되거나 뱀으로 형상화된 과거의 사건들, 다섯 번째는 비의 신과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용구들, 여섯 번째는 커다란 괴물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홍수, 일곱 번째는 새해를 준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드레스덴 문서를 통해서 마야인들이 고도로 발달한 수학 · 과학 · 천문학적 지식을 가지고 잇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숫자 '0'의 개념을 일찍이 사용하고 있었던 흔적과 20진법을 이용하여 달력을 계산한 내용 등이 보인다. 이 중 특히 달을 관측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드레스덴 문서에서는 보름달에서 다음 보름달까지의 음력 한 달의 주기를 29.53086일로 보는데, 정확한 과학적 계산치인 29.53059일과 매우 유사하다.

현재 침략 이전의 마야에 대해 알 수 있는 단서는 앞서 언급한 세 개의 문서가 전부이다. 하지만 마드리드 문서의 경우 보존 상태가 좋지 않고, 파리 문서는 일부분만이 남아 있다. 그에 반해 드레스덴 문서는 현재 남아 있는 3권의 문서 중 가장 양호한 상태로 발견되었고 보존 상태가 좋아 대부분의 내용을 식별할 수 있다.

 

[송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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