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념관 등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 05

드무2 2023. 7. 2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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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 05

 

 

 

 

 

 

 

 

 

터키석의 여주인, 사랑스러운 하토르

 

<세라비트 엘카딤 스핑크스> 명문

 

 

 

 

 

 

 

 

 

 

 

 

 

세라비트 엘카딤 스핑크스

복제품

 

 

 

세라비트 엘카딤 스핑크스

 

이집트 셈족 광산 노동자들이 터키석의 여신 하토르에게 바친 스핑크스이다. 약 한 뼘 크기의 길이로, 눈 · 코 · 입 · 귀가 있는 사람의 얼굴에 엎드려 있는 데 발 달린 동물의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양면에는 원시나이문자가, 오른쪽 어께에는 고대 이집트 문자가 새겨져 있다.

 

 

 

바알라트님 (여주인님)에게 희생을 드리기 위해

희생을 드리기로 맹세합니다.

 

 

 

 

 

 

 

 

 

 

 

 

세라비트 엘카딤 스핑크스

 

이 스핑크스는 원시나이문자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유물이자 최초로 발견된 유물이다. 인류 최초의 알파벳이 쓰인 유물로서 그 가치가 높다. 1905년 페트리 (W. M. F. Petrei)경이 시나이 반도의 세라비트 엘카딤 (Serâbît el-Khâdîm)에 위치한 하토르 (Hathor) 신전에서 발견하였다. 11년 후인 1916년 가디너 (Alan H. Gardiner)는 이 스핑크스 왼쪽 옆면의 마지막 글자인 "LB LT"를 "바알라트님에게" (또는 "여주인님에게")로 제안하였다. 그는 이 새로운 문자를 원시나이문자라고 불렀고, 지금까지 그의 가설이 폭넓게 수용된다.

스핑크스 오른쪽 옆면의 마지막 글자는 소실되었고, 원시나이문자의 특성상 몇몇 글자는 판독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정확하게 읽고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스핑크스 오른쪽 어깨에 쓰인 고대이집트 성각문자 (hieroglyph) "는 "터키석의 여주인, 사랑스러운 하토르"이므로, 이 스핑크스를 하토르 여신으로 비정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 왕실은 시나이 반도의 구리광산과 터키석 광산을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관리하였다. 세라비트 엘카딤은 두 광산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이곳에서 고대 이집트 중왕국 시대 셈족 계열의 광산 노동자들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셈족 노동자들은 이 하토르 신전을 찾아와 이집트 글자를 퍽 단순화시킨 글자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종교적 염원을 기록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주원준]

 

 

 

 

 

 

 

 

 

 

 

 

라틴문자, 바다를 따라 세계로

 

라틴문자는 기원전 6세기경부터 로마인들이 라틴어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낸 문자이다. 라틴문자는 그리스문자와 마찬가지로 한 개의 문자가 한 개의 음을 표시하는 알파벳 체계이다. 그리스문자의 모태가 된 페니키아문자는 모음을 나타내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문자는 모음 체계를 도입하였다. 이 체계는 라틴문자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초기의 라틴문자는 21개의 문자로 시작하였고, 기원전 1세기에 23개의 문자로 완성되었다. 현대에는 3개의 문자를 추가해 총 26자를 사용하고 있다.

고대 로마의 영역이 지중해 전역으로 확장되며, 라틴문자도 서유럽 각자에 퍼져나갔다. 특히 중세 이후에는 기독교의 전파에 힘입어 새로운 확장기를 맞이하였다. 라틴어가 교회의 언어로 활용되며, 이를 표기하기 위해 라틴문자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17세기 ~ 18세기에는 학술 문자로 활용되었고, 근세 유럽인들의 해외 진출과 식민지 건설로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라틴문자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문자이다.

 

 

 

연구자 노트

 

○ 사용 시기 : 기원전 6세기 ~ 현재

○ 사용 지역 :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외 여러 지역

○ 기록 언어 : 라틴어

 

라틴문자는 로마자 (Roman script)로도 불리며, 기원전 6세기경부터 로마인들이 라틴어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낸 문자이다. 이전에는 그리스문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에트루리아 (Etruria)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난 뒤에는 에트루리아를 거친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이해되고 있다. 그리스문자는 페니키아 문자, 더 나아가 이집트 상형문자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라틴문자 역시 넓은 의미에서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라틴문자는 그리스문자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한 개의 문자가 한 개의 음을 표시하는 알파벳 체계이다. 자음과 모음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리스 문자의 모태가 된 페니키아 문자는 모음을 나타내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문자는 모음체계를 도입하였다. 이 체계는 라틴문자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초기의 라틴문자는 21개의 문자로 시작하였고, 기원전 1세기에 23개의 문자로 완성되었다.

고대 로마의 영역이 이탈리아를 넘어 지중해 전역으로 확장되며, 라틴문자도 서유럽 각지에 퍼져나갔다. 특히 중세 이후에는 기족교의 전파에 힘입어 새로운 확장기를 맞이하였다. 라틴어가 교회의 언어로 활용되며, 이를 표기하고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라틴문자가 사용되었다. 17세기 ~ 18세기에는 학술 문자로서 활용이 되었고, 근세에 들어와 유럽인들의 해외 진출과 제국주의로 인한 식민지 건설로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초기의 라틴문서는 비석이나 기념비 등 돌에 새기는 용도로 사용됐다. 때문에 돌에 새기기 쉽도록 직선획을 사용하고 한 개의 문자가 정사각형 안에 들어가는 비율을 가진 대문자체로 만들어졌다. 이 대문자체는 글을 쓰는 재질이 돌에서 파피루스나 양피지로 바뀌면서도 계속 사용되었고, 대문자체는 서체의 변형과 발달을 거쳐 6세기까지 텍스트 본문 서체로 사용되었다. 이와 동시에 코덱스가 아닌 파피루스에 사용되는 필기체 (cursive)도 대문자체였다. 소문자체는 대문자체의 하나인 언설체 (Uncialis)에서 발달한 반언설체 (HalfㅡUnicial)와 필기체를 기본으로하여 7세기가 돼서야 만들어졌다.

또한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이어쓰기 (scripta continua)로 쓰였다. 문장을 의미 단위로 나누어 띄어쓰는 콤마와 콜라타 (comma and colata) 방식이 대문자체인 연설체에서 사용되기는 하였으나 이어쓰기가 더 보편적인 방식이었다. 중세 후기로 가면서, 특히 고덕 서체의 발달과 더불어 단어와 단어를 띄어 쓰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문장을 대문자로 시작하는 관례 역시 중세 후반부부터 나타났다. 그 전에는 코덱스 전체를 대문자로 쓰거나 소문자체로만 된 텍스트에서 책의 제목을 쓰는 용도로, 또는 문장의 시작이 아니라 쓰는 줄의 첫 번째 문자를 대문자로 쓰는 식으로 사용되었다.

 

[장지연]

 

 

 

 

 

 

 

 

 

 

 

 

 

 

 

 

 

 

 

 

 

 

 

 

파나무와 1세의 하다드 상

복제품

 

 

 

 

 

 

 

 

 

예하우밀크 비석

복제품

 

 

 

 

 

 

 

 

 

 

 

 

 

 

 

 

 

 

대리석 유골함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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