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념관 등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 04

드무2 2023. 7. 2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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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 04

 

 

 

 

 

 

 

 

 

 

 

 

 

 

 

 

 

 

 

 

 

 

 

 

 

 

 

 

 

 

 

 

 

 

 

 

이집트문자, 나일의 선물

 

고대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과 함께 하였다. 매년 반복되는 나일강의 범람은 이집트인들에게 풍요와 재탄생을 의미하였다. 나일강을 통해 고대 이집트는 문명을 꽃피웠고, 그 문명의 중심에 문자가 있었다.

이집트문자는 신성하게 새겨진 문자라는 의미로 성각문자 聖刻文字, Hieroglyph로 불린다. 성각문자는 주로 신전이나 왕묘의 벽면 등에 새겨졌다. 피라미드 내부에 새겨진 '피라미드 텍스트 Pyramid Texts'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성각문자가 완전한 문자체계로 발전하면서 성각문자 흘림체 Hieroglyphic cursive · 신관문자 神官文字, Hieratic · 민용문자 民用文字, Demotic 등으로 분화되었다. 성각문자 흘림체와 신관문자는 다소 간략화된 형태를 보이며 행정 문서 · 서신 · 각종 주문 · 문학작품 등에 사용되었다. 민용문자는 심하게 흘려서 쓴 형태로, 기원전 7세기부터 독자적인 문자체계를 이루었다. 이후 민용문자는 행정 문서와 서신 등을 작성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집트문자는 페니키아문자를 거쳐 유럽, 인도 ·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에서 현재 사용되는 대다수의 문자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이집트문자를 '문자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연구자 노트

 

○ 사용 시기 : 기원전 3100 ~ 기원후 450년

○ 사용 지역 : 이집트

○ 기록 언어 : 고대 이집트어

 

헤로도토스 (Herodotus, 기원전 484 ~ 기원전 425)는 그의 저서 『역사 (Histories)』에서 고대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 의미는 조금 와전되었지만, 나일강이 이집트 문명의 원천이며 이집트인들의 젖줄임은 변함이 없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했던 상형문자를 성각문자라고 부른다. 성각문자는 이집트어의 '신성한 언어 (메두 네체르, mdw nTr)'를 뜻하는 그리스어 '산성하게 새겨진 문자 (타 히에로 클리피카 그라마타, τὰ ἱερογλυφικὰ γράμματα)에서 유래하였다.

성각문자는 주로 영구적으로 보존될 가치가 있는 텍스트를 기록할 때 사용하였다. 이 때문에 성각문자는 신전 · 왕묘의 벽면이나 비석 등에 새겨졌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고왕국 시대 제5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우나스 (Unas, 재위. 기원전 2375 ~ 기원전 2345) 치세부터 피라미드 내벽에 새겨진 '피라미드 텍스트'를 들 수 있다. 여러 피라미드의 묘실 · 전실 · 복도에 새겨진 글은 현재까지 약 1,000개에 달한다. 그 내용은 봉헌 (offering) · 봉헌 의례 (offering ritual) · 부활 의례 (resurretion ritual) 등과 관련된 것이다. 피라미드 텍스트는 성각문자가 완벽하게 언어를 표기하였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기록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또한 세계 최초의 종교 문서이기도 하다.

선왕조시대 (기원전 3000년 이전)의 성각문자는 간단한 정보를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을 뿐 아직 완전한 문자 체계를 이루지 못하였다. 초기 왕조시대 제1왕조 (기원전 3000 ~ 기원전 2890)부터 성각문자는 문자 체계에 편입되지 못한 다른 도안 (圖案)들과 함께 일종의 그래픽 디자인을 구성하였다. 이와 같이 초기 성각문자는 문자와 도안을 조합하여 통치 기간에 일어난 특정한 사건이나 왕의 영지 등을 기록하였다.

성각문자가 완전한 문자체계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글자체가 성각문자로부터 분화되었다. 문자를 흘려 쓴 정도, 문자가 사용된 시기, 이집트어의 발전단계에 따라 성각문자 흘림체 · 신관문자 · 민용문자 등으로 구분된다.

성각문자 흘림체와 신관문자는 정자체에 비해 간략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이들은 성각문자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어서 정자체와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였다. 이들 흘림체는 파피루스와 같이 비교적 매끄러운 표면에 펜으로 문자를 빠르게 쓸 때 사용되었다. 주로 행정문서, 서신, 각종 주문, 문학작품 등에 사용되었다.

민용문자는 후기왕조 시대 제26왕조 프삼테크 1세 (Psamtek I, 재위. 기원전 664 ~ 기원전 610) 치세 말엽부터 독자적인 문자체계를 이루었다. 이후 민용문자는 이집트 전역에서 행정 문서와 서신 등을 작성하는 데 사용되었다. 흘려 쓴 정도가 심하여 문자가 한 글자씩 기입되는 대신 단어 전체가 몇 획으로 뭉뚱그려 써졌다. 이로 인해 민용문자는 신관문자와 달리 성각문자와의 일대일 대응이 불가능하였다.

성각문자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문자 체계는 중요한 정치적 · 종교적 메시지를 텍스트의 형태로 고착시켜 보존하였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실용적인 업무나 언어에 기반한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두루 수행하였다.

 

[유성환]

 

 

 

 

 

 

 

 

 

파피루스 에버스

 

파피루스 에버스는 의학에 관한 내용이 파피루스에 기록된 고대 이집트의 대표 실용서이다. 기원전 1559년에 작성되었지만, 본문의 문법적 특성과 특정 주석 등을 고려하면 원문의 작성 시기는 기원전 2345 ~ 2181년까지 올라갈 수 있다.

서문에서 이 파피루스가 지혜와 지식의 신 토트에 의해 작성된 것과 수록된 주문들의 영험함을 강조하였다. 본문은 증례 1장부터 110장으로 구성되었고, 특별한 체계나 기준없이 전체 875개의 치료법과 처방을 기록하였다. 각 장마다 약 20 ~ 22열 정도의 신관문자로 쓰였다. 그 내용은 종양, 탈골, 화상 등의 외상 치료와 내과, 피부과, 치과, 부인과, 독성학 (toxicology) 등의 민간 요법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원본은 낱장 파피루스 49쪽을 이어 붙여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었다.

본 파피루스는 탐험가이자 이집트 학자인 게오르크 에버스 (Georg Ebers, 1837 ~ 1898)가 1872 ~ 1873년 이집트 테베에서 구입하였다. 파피루스는 소유주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 관행에 따라 '파피루스 에버스'라고 불린다.

 

[유성환]

 

 

 

 

 

 

 

 

 

 

 

 

 

 

 

 

 

 

 

 

 

 

 

 

 

 

 

 

 

 

 

 

 

 

 

 

 

 

 

 

 

 

 

 

 

 

 

 

 

 

 

 

 

 

파피루스 에버스

복제품

 

 

 

 

 

 

 

 

 

 

 

 

 

 

 

 

 

 

 

 

 

텐트 하피의 미라 형태의 석관

복제품

 

 

 

이집트문자, 나일의 선물

 

 

 

네페르이브레 사네이스의 파양스 샤브티

기원전 595 ~ 기원전 589년

 

 

 

 

 

 

네페르이브레ㅡ사네이스의 파양스 샤브티

 

샤브티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부장품으로 망자와 함께 매장했던 장례 인형 (funerary figurine)이다.

'샤브티'라는 용어는 '대답하다 (wšb)'라는 이집트어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 '대답하는 자 (answerer)'라는 뜻이다. 샤브티는 망자가 호명되었을 때 망자 대신 대답하게 되어 있다. 이런 내용은 '사자의 서' 6번 주문에 등장하며, 샤브티 몸체에도 이 주문이 새겨져 있다.

초기의 샤브티는 망자의 저승 여행을 동행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후에는 망자를 대신하여 명계 (冥界)에서 부과되는 각종 육체노동을 하는 대리 노동자로서 그 역할이 바뀌었다.

 

[유성환]

 

 

 

 

 

 

 

 

 

 

 

 

 

 

 

텐트ㅡ하피의 미라 형태의 석관

 

 

 

 

 

 

텐트ㅡ하피의 미라 형태의 석관

 

텐트ㅡ하피의 석관은 고대 이집트 마지막 토착 왕조인 제30왕조 혹은 그리스 지배기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이 텐트ㅡ하피 (Tentㅡhapi)인 여인의 현무암 석관으로, 그의 어머니 텐트 제후티 (Tentㅡdjehuty)의 이름도 함께 기록되었다. 석관의 얼굴은 사실감있게 묘사하였으나 인체 비례에는 맞지 않게 크게 형상화되었다. 석관 주인이 여성인 것을 고려하여 통상적으로 턱에 붙여지는 오시리스 (Osiris)의 수염은 생략되었다. 석관의 바깥쪽과 안쪽은 여러 단을 나누어 성각문자와 이집트의 신들, 그리고 석관의 주인과 그의 영혼인 '바'가 새겨져 있다.

제1 중간기 (기원전 2160 ~ 기원전 2055)에는 '피라미드 텍스트'의 주문들과 유사한 새로운 주문들도 출현했다. 주문이 주로 관에 새겨졌기 때문에 『코핀 텍스트 (Coffin Texts)』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알려진 『코핀 텍스트』 주문은 약 1,200개 정도이다. 대부분의 주문은 1인칭 화자 시점으로 작성되어 있으며 『피라미드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망자의 '바'가 분묘를 무사히 통과하여 '아크'로서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돕은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유성환]

 

 

 

 

 

 

 

 

 

 

 

 

 

 

 

 

 

 

 

 

 

 

 

 

탈라타트 벽돌

 

 

 

 

 

 

탈라타트 벽돌

 

탈라타트 벽돌은 신왕국 시대 제18왕조의 10번째 파라오 아케나텐 (Akhenaten / 아멘호테프 4세, Amenㅡhetep IV, 기원전 1353 ~ 기원전 1336)의 치세를 대표하는 건축자재이다. 명칭은 아랍어로 '셋'을 뜻하는 '탈라타 (talata)'에서 유래하였다. 벽돌의 크기가 손바닥의 3배 크기였기 때문이다.

탈라타트 벽돌은 종교개혁 단행 후, 단기간에 새로운 도시를 조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거대 석재들을 대신하였다. 공사장의 인부들이 혼자서도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석회암이나 사암을 가로 1큐빗 (cubit), 세로 1/2 큐빗인, 약 55 × 27.5㎝의 벽돌 형태로 만들었다. 비록 내구성은 떨어지더라도, 한 사람의 노동자가 운반할 수 있는 소형 석제 벽돌이 사용된 것이다.

벽돌에는 세로로 세 줄의 성각문자가 새겨졌다. 왼쪽 첫째 열에는 즉위명, 중앙에는 개명한 탄생명, 오른쪽 셋째 열은 훼손이 심해 그 내용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

 

[유성환]

 

 

 

 

 

 

 

 

 

 

 

 

프삼테크 멘티의 카노푸스 단지

 

 

 

 

 

 

프삼테크 멘티의 카노푸스 단지

 

카노푸스 단지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은 사람을 미라로 제작하면서 시신에서 꺼낸 장기를 보관하던 특수용기이다. 일반적으로 용기의 몸체 부분과 뚜껑으로 구성되며, 뚜껑은 사람 혹은 동물 형태의 수호신으로 형상화하여 만들었다.

이 카노푸스 단지는 신관이었던 프삼테크 멘티 (Psamtekㅡmenty)의 것이다. 몸체에는 성각문자로 생전에 그가 맡았던 다양한 직함이 새겨졌다. 신전 수석 재무관, 셈 (sem) 신관, 미라 제작자, 모든 미라 제작소 감독관, 향 담당 신관 등의 직함을 통해 당시 신전의 여러 업무를 관리했던 전문 신관의 업부 범위 등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몸체에 적힌 글은 두아무테프ㅡ자칼과 관련 있지만, 뚜껑은 하피ㅡ개코원숭이로 표현되었다. 이를 통해 몸체와 뚜껑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물체에 적힌 두아무테푸라는 글자를 통해 본 단지에 담겨있던 장기가 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성환]

 

 

 

 

 

 

 

 

 

 

 

 

 

 

 

 

 

 

프삼테크 멘티의 카노푸스 단지

 

 

 

 

 

 

네페르이브레 사네이스의 파양스 샤브티

 

 

 

 

 

 

탈라타트 벽돌

 

 

 

 

 

 

 

 

 

 

 

 

로제타석

복제품

 

 

 

 

 

 

 

 

 

로제타석

 

로제타석의 세 종류 문자는 각각 다른 독자를 대상으로 하였다. 성각문자는 프톨레마이오스 5세를 영원히 축복할 이집트의 신과 신관들을 위해, 민용문자는 피지배 계층인 이집트 현지인들을 위해, 그리스문자는 당시 공용문자로 그리스 지배자들을 위해 새겨졌다.

로제타석이 발견되고 20년후인 1822년, 프랑스의 젊은 언어학자 장 프랑수아 상폴리옹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자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특수하게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서 성각문자의 기본적인 체계를 밝혀냈다.

로제타석은 고문자 해독의 역사에서 비석이 차지했던 상징적 지위 덕분에 '미지의 무언가를 해독할 수 있는 열쇠'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유성환]

 

 

 

 

 

 

 

 

 

 

 

 

 

 

 

 

 

 

 

 

 

 

 

 

왕이시여, 이 배움은 이집트 사람들을 더 지혜롭고

더 잘 기억하게 해 줄 것입니다.

기억의 약이자 지혜의 약이 발견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플라톤, 『파이드로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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