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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스카이 3

[중국의 신문화운동]

[중국의 신문화운동]    ▲ 1919년 5월 4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천안문) 광장. '산둥반도를 중국이 돌려받아야 한다' 고 주장하는 군중으로 발 디딜 데가 없는 모습이에요. 이른바 '5 · 4 운동' 의 한 장면인데요, 이때 베이징 내 대학교 13곳에서만 대학생 총 3000명이 참여했다고 해요. 이들은 파리강화회의에서 원래 중국 땅이었던 산둥반도의 이권을 강대국 멋대로 독일에서 일본으로 넘기자 이에 항의하며 모인 것이에요. 결국 같은 해 6월 28일 프랑스 파리에 파견됐던 중국 대표단은 파리강화회의 결정에 조인 (동의한다고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어요. 이런 5 · 4운동은 1915년부터 중국의 제도와 사상 등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한 '신문화운동' 이 젊은층을 각성시..

[<17> 1931년 만주사변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 1931년 만주사변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주국은 일제가 세운 괴뢰 국가였다. 하지만 본질을 숨기기 위해 ‘오족협화(五族協和·다섯 민족의 협력과 화해)’를 내세웠다. 왼쪽 깃발은 1911년 신해혁명군 깃발, 중앙의 오색기는 장쉐량 군대 깃발, 오른쪽은 장제스군의 청천백일기다. 아래에는 ‘공화만세’라고 적혀 있다. / 위키피디아 '동양의 화약고' 된 만주··· 臨政이 상해로 간 건 '신의 한 수' 였다 신해혁명 후 만주, 중국 파벌들과 소련 · 日 뒤엉키며 무주공산 상태 위안스카이를 계승한 장쭤린 장제스에 밀려 만주 가다 日에 피살 관동군은 그의 아들 군대 공격하며 15년 전쟁의 지옥문을 열기도 韓中 좌익협력 아닌 우익협력 활발 이봉창 · 윤봉길 의거에 쓰인 폭탄 장제스 북벌에 참가한 인물이 제공 러시..

[원세개 (위안스카이)와 조선]

[원세개 (위안스카이)와 조선] 갑신정변 실패 후 조선에 급파된 청나라 군대의 지휘관 오대징이 서울에 들어와 수포교를 지나고 있어요. / 조선일보 DB 고종에 삿대질, 서양과의 외교 방해··· 개화 발목 잡았죠 1882년 임오군란 때 조선 들어와 26세에 총독 같은 권세 누리며 10년 가까이 횡포 일삼았어요 싱하이밍 (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가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자리에서 "미국의 승리에 베팅 (결과가 불확실한 일에돈을 거는 일)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취지의 말을 해 '부적절하고 무례한 발언' 이라는 논란을 빚고 있어요. 일각에선 싱하이밍 대사가 옛날 원세개 (袁世凱 · 위안스카이 · 1859 ~ 1916)를 연상케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해요. 원세개는 누구일까요? 내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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