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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옥 2

[좌익의 경찰 조직 와해에 맞선 남한 첫 치안총수 조병옥 박사]

[좌익의 경찰 조직 와해에 맞선 남한 첫 치안총수 조병옥 박사] 일러스트 = 한상엽 "친일파와 親직업인은 다르다" 조병옥이 일제 경찰을 등용한 이유 日政 경찰 40%가 조선인 97%는 생계형 하위직 해방 후 간부로 진출 趙, '친일 경찰' 공격에 "업에 충실했던 동포를 친일로 매도할 수 있나"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 직후, 총독부를 비롯한 관공서 굴뚝에서 한여름에 난데없이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거리마다 잿가루와 타다 만 종잇조각이 흩날렸다. 화신백화점 앞 집회에서 한 연사가 거리에서 모은 타다 만 종이 뭉치를 흔들며 외쳤다. “여기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아십니까? 조선 애국자들을 체포하여 총살하라는 명령서, 고문 실시에 대한 중앙기관의 명령서, 밀정들의 명단과 그들이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서울..

[6 · 25 전쟁 60년] 낙동강 혈전 (56) 대구에 떨어진 포탄

[6 · 25 전쟁 60년] 낙동강 혈전 (56) 대구에 떨어진 포탄 다부동 전투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을 때인 1950년 8월 중순, 대구 동북방의 가산산성으로 들어온 북한군이 대구에 포격을 했다. 민심이 흔들리자 신성모 당시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대구 시내에서 마이크를 잡고 “대구를 사수하자”는 연설을 하고 있다. 당시 내무부 장관이던 조병옥 박사도 시내를 다니며 대구 사수를 역설했다. [중앙포토] 내 목숨과 국군 1사단 지휘부를 노린 적군의 야습이 있기 전날인 1950년 8월 18일 새벽에 북한군은 가산산성에 들어왔다. 우리는 포 사격으로 적의 발을 묶은 다음에 증원군을 받아 산성으로 올려 보내 적을 쫓아낼 작정이었다. 유언비어는 후방을 교란한다 … 포탄 7발에 대구는 ‘패닉’ 북한군은 가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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