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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섭 2

[⑧ 과학 행정가 최형섭]

[⑧ 과학 행정가 최형섭]    1971년 최형섭 (왼쪽) 과학기술처 장관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를 방문한 박정희 (오른쪽) 대통령에게 KIST에서 개발한 제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966년 설립한 KIST의 초대 소장을 지낸 최형섭은 1971년 과기처 장관을 맡아 약 7년 7개월 동안 장관직을 수행했다. 2004년 작고한 그는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 국가기록원    KIST 초대 소장 · 과기처 장관만 7년 7개월··· 한국 과학을 이끌었다   4 · 19와 5 · 16으로 어려움 겪던원자력硏 소장 맡아 정상화해탁월한 과학 행정가로 주목받아 '실리콘밸리 아버지' 터먼과 친분그의 조언으로現카이스트 만들 때최형섭도 설립 초기에 큰 역할 기술투자 국책 금융사 만들어대한민국 벤처 열풍 이끌기..

[공화국 대한민국 ⑤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초대 소장 최형섭]

[공화국 대한민국 ⑤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초대 소장 최형섭] 1970년 1월 9일 서울 홍릉 시절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 멤버 기념사진. 모두 미국 유수 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최형섭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의 설득으로 한국에 돌아온 박사들이다. 1967년 KIST를 방문한 미국 부통령 험프리는 "역두뇌유출 (counter brain drain)" 이라고 부르며 놀라워했다. 대통령 박정희는 "나보다 봉급이 많은 사람이 수두룩하다" 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이들은 미국에서 받던 연봉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대우를 받으며 과학을 연구했고 기술을 개발했다. 박정희 정부 과학기술비서관이었던 현 한국기술경영교육연구원 원장 김주한이 말했다. "조선을 정체시켰던 사농공상 (士農工商) 질서를 무너뜨리고 과학자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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