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재미있는 과학

[마랑고니 효과]

드무2 2023. 11. 27. 08:46
728x90

[마랑고니 효과]

 

 

 

 / 그래픽 = 진봉기

 

 

 

잔 표면으로 이동한 와인, 중력받아 눈물처럼 흘러요

 

 

 

액체, 표면 장력 약한 곳서 센 곳 이동

커피 쏟으면 링 모양의 얼룩 생기고

소금쟁이는 물 위에서 빨리 움직여요

 

 

 

최근 권성훈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전기나 석유 같은 에너지원 없이 로봇을 움직이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연구팀이 개발한 로봇은 펜과 잉크만으로 물 위에서 자유자재로 정교하게 움직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와인의 눈물

물체가 움직인다고 하면 가장 먼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중력에 따른 움직임이 떠오릅니다. 분자 단위로 살펴보면 물체가 움직이는 원인은 중력 외에 다양합니다. 기상 현상을 일으키는 기체 분자는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합니다. 단순 기체라면 바람이 되고, 물 분자 (수증기)라면 구름을 만들죠.

염분 농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물 분자가 이동하는 삼투 현상도 있습니다. 채소에 소금을 뿌리면 채소 속에 있던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채소 세포 속과 소금을 뿌린 바깥 염분 농도를 비교했을 때 바깥이 염분 농도가 더 높아서 발생하는 현상이죠. 이 현상을 이용해 배추를 소금에 절여 김치를 만듭니다.

연구진이 이용한 현상은 '마랑고니 효과' 입니다. 마랑고니 효과는 앞의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분자 단위에서 발생합니다. 액체는 다른 물질과 맞닿을 때 최소 면적을 유지하려는 힘, 표면 장력이 있습니다. 이때 표면 장력이 일정하지 않으면 액체 분자가 표면 장력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데, 이를 마랑고니 효과라 합니다.

이 현상을 처음 설명한 사람은 제임스 톰슨 (1822 ~ 1892)입니다. 1855년 '와인 및 기타 주류 표면에서 관찰할 수 있는 흥미로운 움직임에 대해' 라는 논문에서 '와인의 눈물' 이라는 현상을 설명했어요. 그 뒤 이탈리아 과학자 카를로 마랑고니 (1840 ~ 1925)가 1865년 박사 학위 논문에서 이 현상을 설명한 뒤부터 마랑고니 효과라고 알려지게 됐죠.

와인의 눈물은 알코올 농도가 14% 이상인 와인을 잔에 따랐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와인은 마시기 전에 잔을 돌리면 향을 더욱 즐길 수 있습니다. 잔과 함께 휘돌던 와인은 떨어질 때 표면에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주르륵 흐르는 형태를 남깁니다. 재미있는 점은 같은 음료라도 물이나 주스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죠. 톰슨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와인과 주류에서만 보입니다.

주류는 일반 음료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일반 음료는 물에 갖가지 맛과 향 물질을 섞거나 녹인 것이죠. 예를 들어 설탕은 물에 녹긴 하지만 상온에서는 고체입니다. 반면 주류에는 물과 다른 액체 성분 에탄올이 있습니다. 와인이 담긴 잔을 빙글 돌리면 잔 표면에 물과 에탄올이 묻고 대부분은 중력 때문에 아래쪽으로 내려갑니다. 잔 표면에 남은 와인에서 끓는 점이 낮은 에탄올 (섭씨 78.4도)은 날아가고 상대적으로 높은 물 (섭씨 100도)은 더 많이 남죠.

여기서 표면 장력이 나옵니다. 물은 표면 장력이 크고 에탄올은 작습니다. 잔 아래쪽에 있는 와인은 에탄올이 많아서 표면 장력이 작고, 잔 표면에 묻은 와인은 에탄올이 증발하면서 표면 장력이 커집니다. 그래서 마랑고니 효과가 발생합니다. 에탄올이 섞여 표면 장력이 작은 잔 아래쪽에서 표면 장력이 큰 잔 표면으로 와인이 이동하죠. 이렇게 잔 표면에 와인이 모이면 다시 중력 영향을 받아 바닥 쪽으로 와인이 흐릅니다. 이렇게 흐르는 와인이 바로 '와인의 눈물' 이 되는 겁니다.

 

 

커피링 효과와 소금쟁이

마랑고니 효과는 일상 속 다양한 곳에서 나타납니다. 탁자에 커피 같은 음료를 쏟은 뒤 닦지 않아 그대로 말랐을 때를 기억해봅시다. 테두리에 유난히 짙게 얼룩이 남아 있을 겁니다. 이를 '커피링 효과' 라고 합니다. 1997년 로버트 디건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에 커피링 효과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설명했죠.

커피가 쏟아지면 가장자리는 물 분자끼리 잡아당기는 힘이 약해 중심부보다 빨리 액체가 증발합니다. 액체 가장자리는 증발하면서 주위에서 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중심부보다 온도가 낮아집니다. 온도가 낮으면 표면 장력이 커지기 때문에 가장자리는 중심부보다 표면 장력이 커져요. 여기서 마랑고니 효과가 발생합니다. 표면 장력이 낮은 중심부에서 표면 장력이 높은 가장자리로 커피가 이동합니다. 이때 물과 함께 커피 가루도 이동하죠. 가장자리에 커피 가루가 모이면서 커피링이 만들어진답니다.

마랑고니 효과가 나타날 때 액체 이동 속도는 꽤 빠릅니다. 소금쟁이가 포식자를 피해 이동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죠. 소금쟁이는 다리에 잔털이 많고, 이 사이에 공기를 머금고 표면 장력을 최대로 이용해 물에 떠 있습니다. 이때 포식자를 만나면 소금쟁이 다리에서 계면활성제 성분이 나옵니다. 계면활성제는 비누 같은 생활용품에 많이 쓰이는 물질인데, 물의 표면 장력을 약하게 만듭니다. 계면활성제가 나온 방향은 표면 장력이 약해지고, 물 분자는 마랑고니 효과에 따라 표면 장력이 약한 곳에서 강한 곳으로 움직이죠. 물 위에 떠 있는 소금쟁이는 이 물 분자를 타고 빠르게 이동합니다.

 

 

프로그래밍 없이 움직이는 로봇

마랑고니 효과는 분자가 움직여 생기는 효과입니다. 그래서 제어만 할 수 있다면 분자 단위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고, 특별한 동력이 없어도 되죠. 과학자들은 이 가능성을 주목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서울대 연구진이 개발한 로봇이 대표적입니다.

이 로봇은 마랑고니 효과를 이용해 움직임을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습니다. 물의 표면 장력을 조절하는 잉크와 펜이 핵심 기술입니다. 잉크는 물의 표면 장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로봇 바닥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면 잉크가 수면과 반응해 로봇이 자유자재로 움직입니다. 그린 형태 그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을 할 필요 없이 로봇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누구나 펜과 용액만으로 물 위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마랑고니 로봇 제작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오가희 어린이조선일보 편집장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8월 22일 자]

 

728x90

'신문은 선생님 > 재미있는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투구게]  (0) 2023.12.01
[인간 동력]  (0) 2023.11.27
[냉동 인간]  (1) 2023.11.18
[인류세]  (0) 2023.11.17
[물의 순환]  (0) 2023.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