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25 전쟁 60년] 낙동강 혈전 (52) ‘하늘의 요새’가 펼친 융단폭격
1950년 8월 15일을 며칠 앞둔 시점, 낙동강 전선에선 위기감이 시시각각으로 커가고 있었다. 다부동 쪽에서 적은 심하게 우리를 압박해 왔다. 나는 병력 증원(增援)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지상의 모든 소리가 멈췄다 …
하늘 뒤덮은 B-29 융단폭격
26분간 폭탄 3200발 쏟아부어
미군 고문관 메이 대위를 불렀다. 나는 “상황이 매우 심각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메이 대위도 심각한 표정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는 내게 “지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사령부에 전달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전화통을 들었다. 그는 “지금 상황이 아주 급하다”고 보고한 뒤 “병력 증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 8군 사령부도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던 모양이다. “증원부대를 보내도록 하겠다”는 회답을 받았다.
그런데 미8군 사령부에서 연락이 다시 왔다. “8월 16일 정오에 전선의 모든 부대는 호를 깊이 파고 머리를 절대 바깥으로 내밀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융단폭격(絨緞爆擊: carpet bombing)을 한다는 통고였다.
우리는 힘을 다시 추슬렀다. 나는 전 부대에 역습 명령을 내렸다. “우리가 힘이 들면 적도 그 이상으로 힘들 것이다. 증원부대가 곧 오고 공중지원도 받을 것”이라며 반격을 재촉했다. 16일 오전 중에 15연대는 328고지를 탈환했다. 12연대는 유학산 8부 능선까지 치고 올라갔다. 11연대도 가산(架山) 능선에 올라선 적을 물리치고 천평동 도로 정면에서 버티고 있었다.
1950년 연합군의 B-29 폭격기 편대가 북한군을 폭격하고 있다. ‘수퍼 포트리스(수퍼 요새)’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 폭격기는 대당 최고 9000㎏의 폭탄을 싣고 최장 9000㎞를 날아 폭격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미 육군부 자료]
11시58분이었다. 모든 소리가 멎는 것 같았다. ‘우우웅-.’ 하늘을 울리는 거대한 소리에 지상의 모든 소리가 눌린 것 같았다. 곧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왔다. 거대한 폭음이 땅을 뒤덮었다.
오키나와에서 발진한 B-29 폭격기 5개 편대 98대가 끊임없이 지상으로 폭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폭격 시간은 26분. B-29에서 지상으로 떨어진 대형 폭탄은 모두 3234발, 총중량 900t에 이르는 폭탄이었다. 포탄으로 환산하면 3만 발 분량의 화력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뤄진 것으로는 최대 수준의 공중지원이었다. 낙동강 서쪽인 약목(若木)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龜尾) 사이 가로 5.6㎞, 세로 12㎞의 직사각형 구역이 폭격 대상이었다. 대구를 공격하기 위한 적의 주력이 몰려 있던 곳으로 판단했던 지역이었다.
미 공군은 이 직사각형 지역을 남에서 북으로 정밀하게 구획해 빈틈없이 폭탄을 퍼부었다. 그 지역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지역 사람들이 “미군 폭격 뒤 10년 동안 풀이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적의 일선 부대는 이 폭격에서 살아남았다. 상당수 병력이 이미 낙동강을 건너 우리와 맞붙은 전선에 대거 몰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떠받쳐주는 전선 후방이 미군의 폭격에 의해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더 큰 것은 심리적인 공황이었다. 나중에 포로의 입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번 미국의 대규모 융단폭격은 그들의 전투 심리, 싸움의 의지를 크게 꺾어 놓았다.
아울러 융단폭격으로 낙동강 전선의 북한군은 왜관의 전진기지에 준비해 뒀던 예비 병력과 야포, 그리고 탄약과 장비를 비롯한 군수품을 대거 잃었다. 전투를 장기간 치를 여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래도 전선의 북한군은 산등성이를 계속 넘어오고 있었다.
백선엽 장군
◆융단폭격=수많은 폭격기가 일정 지역에 양탄자를 깔아가듯 빈틈 없이 철저하게 연속적으로 폭탄을 투하하며 지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1937년 4월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파 파시스트 군대를 항공 지원하던 독일의 콘도르 군단과 이탈리아의 항공군단이 공화파 지역인 바스크 주민 거주지 게르니카 마을을 공습한 것이 효시로 통한다. 피카소는 작품 ‘게르니카’에 이 사건을 담았다.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미군과 영국군이 1만2000여 대의 항공기를 동원해 작전 예상 지역을 융단 폭격한 일이 있다.
[출처: 중앙일보] [6 · 25 전쟁 60년] 낙동강 혈전 (52) ‘하늘의 요새’가 펼친 융단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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