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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최종태,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에 작품 155점 기증]

드무2 2024. 7. 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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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최종태,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에 작품 155점 기증]

 

 

 

서울 연남동 작업실에 즐비한 조각상과 함께 선 최종태는 “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에 홀려 평생 사람 조각만 만들었다” 고 했다. 연초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작품 155점을 기증한 그는 “별것 아니다. 공간만 만들어준다면 어디든 줄 수 있다” 고도 했다. / 남강호 기자

 

 

 

다 내줄 수 있다, 하늘서 보면 네 것 · 내 것 경계 없어

 

 

 

내일 '최종태 기증 전시실' 개관

기증작 30점 소개하는 전시도

 

미술로 종교의 경계 허문 거장

전국 성당 · 성지 곳곳 聖像 제작

법정 스님이 머물던 길상사에는

성모마리아를 닮은 관음보살상

 

때 묻지 않은 반가사유상에 홀려

한평생 평온한 인물 조각에 몰두

"내 나이 아흔 둘, 작업이 즐겁다"

 

 

 

“별것 아녀. 방을 만들어준다고 해서 한겨.”

구순 넘은 거장의 말은 그의 작품처럼 간결했다. 원로 조각가 최종태 (92 · 서울대 명예교수)가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자신의 작품 155점을 기증했다. 우리나라 대표적 천주교 순교 성지에 자리 잡은 박물관에 그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최종태 기증전시실’ 이 15일 문을 연다. 왜 이곳에 기증했는지 묻자, 역시 덤덤한 답이 돌아왔다. “공간만 만들어주고 관리 잘해준다면, 어디든 다 줄 거여.”

최종태는 인물 조각의 대가이자 성상 (聖像)을 현대화하고 한국화한 주역이다. 절두산 성지의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 (1973)을 시작으로 명동성당 등 전국의 크고 작은 성당과 성지에 그가 만든 성상이 있다. 기증실 개관을 앞둔 지난 7일, 서울 연남동 작업실을 찾았다. 그가 평생 천착해 온 소녀상과 여인상, 성모상 등 조각들이 늘어서 있었다. 요즘도 새벽에 눈뜨면 작업실로 내려간다는 그는 “이 나이 되니까 작업이 즐겁다. 몰입하면 외부와 차단되는 어떤 공간에 있게 되는데, 스님들이 참선하면서 선정에 드는 것과 비슷할 것” 이라고 했다.

 

 

 

최종태 작가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작품 '피에타'. 브론즈.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지만, 미술로 종교의 경계를 허문 거장이다. 법정 스님이 머물던 서울 길상사에는 성모마리아를 닮은 흰색 관음보살상이 머리에 화관을 쓴 채 지금도 서 있다. 최종태가 빚은 관음상이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서 ‘제가 만약 관음상을 만들어서 절에다 놓으면 천주교에서 저를 파문할까요’ 물었더니, 추기경이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며 “땅에는 경계가 있지만, 저 하늘엔 경계가 없다. 높이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내 것 네 것이 없고, 내 종교 네 종교도 없다” 고 했다.

 

 

 

 

그래픽 = 정인성

 

 

 

1932년 대전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강점기와 6 · 25, 4 · 19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인물 조각, 특히 여인상에 천착했다. 30대 초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보고 감동해 ‘내 갈 길은 여기다’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반가사유상이 갖고 있는 정신성, 깨끗함이 내 길” 이라며 “남들이 다 추상 조각할 때 나는 그 길로 안 가고, 평생 사람 조각을 만들었다” 고 했다. 당시 많은 작가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인체 조형을 통해 추구하거나, 형태를 벗어난 추상과 비구상의 조형으로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했지만, 최종태는 한결같이 ‘인간’ 을 주제로 작업을 펼쳐왔다.

“비너스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정신적인 게 없거든. 나는 영혼이 깃든 인간상을 만들려고 했어요. 때 묻지 않은 것, 깨끗한 것. 그래서 소녀상을 만들었고, 내가 나이가 드니까 소녀상이 나이가 들어 여인상이 됐고···. 성모상도 관음상도, 세상의 어려움을 어루만져 감싸주는 영원의 어머니, 여성상이에요.”

 

 

 

 

최종태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작품 '성모자'. 나무에 채색, 2014.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한국 근대 조각의 선구자인 김종영과 서양화가 장욱진이 스승이다. 그는 “장욱진은 야인 같고 김종영은 선비 같았다. 장욱진은 한국적인 것을 추구했고, 김종영은 서양 미술을 자신의 스타일로 받아들였는데, 모든 게 다른 두 분을 다 좋아해서 내 속에 둘 다 받아들였다” 고 했다.

최종태가 빚은 조각은 하나같이 희로애락을 펼쳐 보이지 않는 평온한 얼굴이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것만 남겼다. 둥근 얼굴에 선으로 그린 눈, 꾸밈 없이 담백한 조각에 정신성만 남았다. 이번에 기증한 작품엔 1970년대부터 창작해 온 성모상과 성모자상, 십자가상, 기도하는 사람, 순교자 기념상과 함께 소녀와 여인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도 포함됐다. 2000년대 이후의 채색 목조각과 회화, 최근의 드로잉 작품까지 있어서 작가의 시기별, 장르별 주요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최종태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작품 '성모자'. 스테인드글라스, 1994.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기증전시실은 박물관 지하 1층 전문도서관과 마주한 공간에 101㎡ 크기로 들어설 예정이다. 15일부터 기증 작품 30여 점을 소개하는 ‘영원을 담는 그릇’ 전이 열린다. 개막식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를 비롯해 문화 · 예술계 원로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박물관은 “작가의 작품 세계와 숭고한 기증 정신을 나누고자 기증전시실을 마련했다” 며 “기증 작품은 지속해서 교체 전시될 것” 이라고 했다. 전시는 무료.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2월 14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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