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문화 속의 '뱀']
땅을 지키는 열두 수호신 가운데 여섯 번째 뱀신. / 국립민속박물관
두렵지만 신성한··· 영원한 생명의 상징
이승 · 저승 오가는 신비로운 존재
어리석은 인간들 벌 준다고 여겨
알 여러 개 낳아 '다산' 나타내기도
징그럽고 두렵지만 신성한 존재. 뱀은 인간에게 이중적인 동물로 묘사됐다.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는 특성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고 믿었고, 한 번에 여러 개의 알을 낳아 생명력과 풍요로움, 다산 (多産)을 나타내는 동물로 여기기도 했다.
우리 속담에 ‘구멍에 든 뱀 길이를 모른다’ 는 말이 있다. 숨긴 재주나 재물이 얼마인지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는 충고이자, 뱀을 모호하고 의심스러운 존재로 그린 속담이다. ‘배중사영 (杯中蛇影)’ 이라는 고사성어도 있다. 잔 속의 뱀 그림자, 즉 쓸데없는 우려를 낳는 공연한 의심을 가리킨다. 역시 뱀에 대한 두려움을 담은 말이다.
저승 세계에서 독사들로 가득한 '독사 지옥'. / 국립민속박물관
뱀은 주로 어리석은 인간을 경고하거나 벌을 주는 존재였다. 저승 세계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왕을 그린 불화 중에는 독사들로 가득한 ‘독사 지옥’ 을 그린 작품도 있다. ‘시왕도 (十王圖)’ ‘게발도 (揭鉢圖)’ 같은 그림에서는 뱀에게 심판받는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 민속에서 뱀은 신성한 존재이기도 했다. 땅속과 땅 위를 오가는 뱀의 모습을 보며 이승과 저승의 서로 다른 두 세상을 오가는 신비로운 존재라 여겼다. 샤먼이 의례에 사용했던 숟가락, 북 손잡이, 지팡이 등에 뱀을 조각한 이유다.
스리랑카 '마하 코라 가면'. 가면에 조각된 뱀을 비롯해 악성 전염병의 악마들을 제관이 달래고 물리치는 과정이 담긴 치료의식에 사용된다. / 국립민속박물관
뱀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도 쓰였다. ‘부잣집 업 나가듯 한다’ 는 속담은 재물을 늘게 해준다는 ‘업구렁이’ 가 나간다는 뜻. 조선 세종이 편찬한 ‘용비어천가’ 엔 ‘뱀이 까치를 물어 나무 끝에 얹으니 성손 (聖孫)이 바야흐로 일어나려 함에 기쁜 일이 먼저 있게 되었다’ 는 구절이 있다. 이 역시 뱀을 번영의 상징으로 쓴 경우다.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5년 1월 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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