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 시금치는 방사형으로 뻗어 있는 잎다발 구조를 갖고 있어요. 잎들이 조금씩 어긋난 형태로 배열돼 햇빛을 골고루 잘 받을 수 있지요. / 이진한 기자
겨울에 더 맛있어지는 채소··· 지면에 납작 붙어 온도 유지한대요
요즘 같은 추운 겨울이 제철인 채소가 있습니다. 바로 시금치인데요. 시금치는 중앙아시아 지역이 원산지인 두해살이풀입니다. 시금치는 기원전 6 ~ 7세기 전부터 고대 페르시아에서 재배되기 시작해 세계로 전파됐으며, 우리나라에선 조선 초기 때부터 재배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흔히 두해살이풀은 가을에 싹이 나고, 잎과 뿌리로 영양분을 모으며 겨울을 납니다. 이듬해 봄에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은 후 생을 마감하죠. 결국 1년을 사는 것이지만, 그사이에 해가 바뀌기 때문에 두해살이풀이라고 합니다. 여러해살이풀은 한해살이풀이나 두해살이풀과 달리 땅속의 뿌리가 계속 살아있어 해마다 그 뿌리로부터 새로운 잎을 만들고 꽃을 피우는 식물입니다. 시금치 같은 두해살이풀은 어떻게 추운 겨울 동안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을까요.
두해살이풀들은 겨울 동안 로제트 (Rosette)라는 특수한 형태의 잎다발 구조를 만들어 추위를 극복하고, 동시에 한겨울에도 꾸준히 광합성을 합니다. 로제트란 지면 가까이에서 극단적으로 짧은 줄기에 밀착한 잎들이 방사형으로 납작하게 펼쳐진 잎다발 구조로, 장미꽃 (rose) 모양을 닮아 로제트라고 이름 지어졌습니다. 이 잎다발 구조가 크고, 달려있는 잎이 많을수록 햇빛을 더 많이 흡수할 수 있어 많은 양분이 만들어집니다.
로제트의 밀착된 잎들은 서로 그늘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금씩 어긋난 형태로 배열되고, 아래쪽 잎일수록 잎자루가 길게 자라 전체 잎이 골고루 햇빛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잎들이 지면에 납작하게 붙어 있으면 땅의 열기를 이용해 온도를 유지할 수 있으며, 바람도 피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 밟아도 부러질 염려가 없고, 동물들이 뜯어 먹기도 어렵습니다.
로제트 구조는 이처럼 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에 두해살이풀뿐만 아니라 많은 여러해살이풀도 이 형태로 겨울을 납니다. 냉이, 엉겅퀴, 유채, 봄동, 씀바귀, 민들레 등도 유명한 로제트형 식물들입니다.
시금치는 세포 속에 얼음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포 속 수분을 줄이고, 대신 당분이나 미네랄을 농축시킵니다. 이렇게 되면 세포가 걸쭉한 상태가 되어 아주 낮은 온도에서도 쉽게 얼지 않습니다. 흔히 '노지 시금치' 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한겨울 동안 밭에서 자라면서 잎 속에 당분이 가득한 시금치랍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로제트의 짧은 줄기가 길게 자라면서 줄기를 따라 시금치 잎들이 자랍니다. 곧이어 줄기 마디마디에서 꽃이 피고 씨앗이 달립니다. 로제트를 통해 생산한 양분이 많을수록 더 많은 씨앗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씨앗을 채집했다가 가을이 오면 다시 뿌립니다.
차윤정 산림생태학자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5년 1월 6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