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구호들]
▲ 1908년 에멀라인 팽크허스트가 영국 트라팔가 광장에서 연설하고 있어요. 팽크허스트는 시민 단체 '여성사회정치연합' 을 만들어 여성 참정권 운동을 펼쳤어요. /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
"말이 아닌 행동을" <Deeds not Words> ··· 영국 여성 참정권 쟁취해 낸 한마디죠
20세기 초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
'여성에게 투표권을' 깃발 들고 활동
파키스탄의 인권운동가 '말랄라'
탈레반의 여성 탄압 실상 널리 알려
'나는 말랄라다' 캠페인 만들어졌죠
작년 10월 벌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전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이 전쟁과 관련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친 (親) 팔레스타인 구호가 논란이 됐어요.
'강에서 바다까지' 라는 구호인데요. 일각에선 이 구호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넘어 이스라엘에 대한 혐오를 나타내는 문구라면서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지난 4일 소셜미디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이 구호를 계속 사용해도 된다고 발표했어요. 메타는 "이 문구는 메타의 혐오 발언 규정을 위반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고 밝혔어요. "테러 단체가 이 문구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혐오스럽거나 폭력적인 것은 아니며 다양한 사람이 이 문구를 여러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 설명했죠.
'강에서 바다까지' 라는 구호는 어떤 의미일까요? 여기서 강은 요르단강을, 바다는 지중해를 뜻해요. 그런데 집단마다 이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목적으로 사용해요. 무장 단체 하마스는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을 완전하게 해방하는 것 외에는 어떤 대안도 거부한다' 는 의미로 사용한답니다. 하마스 외에 다른 사람들도 이스라엘 파괴를 요구하는 의미로 이 구호를 외치기도 해요.
똑같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도, 이 구호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해요. 이들은 '이스라엘 파괴' 를 주장하거나 하마스의 집단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 고향에서 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 이 구호를 외친다고 합니다. 이 외에 유명한 구호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여성에게 투표권을 (Votes for Woman)'
20세기 초 영국 여성들은 참정권을 얻기 위해 운동을 벌였어요. 과거 영국에서 선거는 남성 권력의 특권이었죠. 이에 불만을 품은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은 선거권을 얻기 위해 1830년대 후반 '차티스트 운동' 을 일으켰어요. 이 운동은 10여 년 동안 계속됐고, 결국 1867년과 1884년 선거법 개정을 통해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선거권을 얻었죠. 하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참정권이 없었어요.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에멀라인 팽크허스트였습니다. 그는 정치인들이 여성도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법률 등을 만들도록 하려면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팽크허스트는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합' 이란 시민 단체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시작했어요. 이때 그가 내세운 구호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Deeds not Words)' 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이 여성 참정권이 필요하다고 말만 하지 말고, 실제로 법을 개정하는 행동에 나서라는 뜻이죠.
1905년 여성 참정권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어요. 하지만 여성 참정권 법안은 다른 법안들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여성사회정치연합 회원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어요. 그래서 정치인들이 참석한 선거 유세 집회에 가서 여성 참정권 보장에 대한 확답을 직접 받아내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맨체스터의 한 선거 유세에서 '여성에게 투표권을 (Votes for Women)' 이라는 깃발을 들고 정치인들에게 '여성에게 참정권을 보장할 것인가?' 라고 질문을 던졌어요. 전통적으로 영국 정치 집회에서는 청중이 질문하면 연사가 답하는 것이 관례였어요. 하지만 이 질문을 한 여성사회정치연합 회원 두 명은 공공질서 방해죄로 체포돼 감옥에 갇히게 됐지요. 당시 언론에선 이 사건을 '맨체스터 사건' 으로 부르며 두 여성을 비난했어요. 하지만 여성들은 그것이 '여성 차별' 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어요.
이 사건으로 영국 전역에서 여성 참정권 문제가 화두에 올랐어요. 여성사회정치연합 회원 수가 급속도로 증가했지요. 이후 이들은 '여성에게 투표권을' 이라는 깃발을 들고 참정권을 요구하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갔고, 결국 1918년과 1928년 선거법 개정이 이뤄져 여성들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됐답니다.
▲ 2014년 17세 나이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노벨평화상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어요. 그녀는 여성과 아동 인권을 탄압한 탈레반의 만행을 세계에 알렸어요. / The Royal House of Norway
'나는 말랄라다 (I Am Malala)'
파키스탄은 이슬람 전통에 따라 여자들은 집에 머물면서 살림하고 남자들의 시중을 드는 것이 일상이었어요. 이슬람 여성들은 남성 보호자 없이 혼자서 외출할 수 없었어요.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 여성들은 대체로 눈 부분만 빼고 전신을 가리는 니캅을 착용하고 다녔지요. 또 이슬람 무장 단체인 탈레반이 '여성 교육 금지' 를 주장해 여성들은 제대로 교육받기 어려운 환경에 처하기도 했어요.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스와트밸리 지역에 살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설립한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요. 말랄라는 탈레반이 말랄라의 고향을 장악하고 여성의 외부 활동을 금지했지만, 겁먹지 않고 세상을 향해 부당함을 알렸어요. 영국 BBC 현지어 사이트 블로그에 일기 형식의 글을 올리기도 했어요.
이를 통해 탈레반의 만행이 세계에 알려지자 말랄라를 향한 탈레반의 위협이 이어졌어요. 결국 2012년 10월 말랄라는 스쿨버스에서 탈레반의 총에 맞고 중태에 빠졌습니다. 총탄은 그의 왼쪽 눈 옆과 어깨를 관통했어요. 영국으로 옮겨져 수차례 수술을 받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탈레반은 말랄라를 공격해 자신들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경고하고자 했어요. 하지만 이 사건으로 말랄라는 더욱 유명해졌고, 이슬람권 여성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현실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지요. 전 영국 총리이자 유엔 국제 교육 특사인 고든 브라운은 2013년 '나는 말랄라다 (I Am Malala)' 라는 구호를 내세워 세상 모든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도 교육받을 수 있게 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답니다.
말랄라는 2014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17세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의 탄생이었어요. 그는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말랄라입니다. 또 교육받지 못한 6600만명의 여자아이입니다. (생략) 모든 어린이가 학교에 다닐 때까지 계속 싸울 것입니다."
▲ 1914년 여성들을 이끌고 버킹엄 궁전으로 향하던 에멀라인 팽크허스트가 경찰에 체포되는 모습. / 현실문화
☞ 구호
구호는 개인이나 단체의 주장을 간결하면서도 강력하게 전달하는 도구예요. 사회 운동이나 전쟁 중에 많이 쓰이지요.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기획 · 구성 = 오주비 기자 (jubi@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4년 9월 25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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