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박물관] 08
야간에 가로등이 켜진 한성의 모습, 1900년대 (위)
경성의 종로 야경, 1930년대 (아래)
경운궁과 경희궁을 연결한 홍교가 보이는 서대문로, 아크 가로등이 보인다 1904년 (위)
창경궁 홍화문의 야경 1930년대 (아래)
전등 영업의 개시
민간을 상대로 전등 영업을 본격 개시하기 위해 가전 · 상업용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배전시설 공사도 함께 추진됐다. 배전선은 먼저 전차용 배전주 配電柱를 따라 가설하고, 거기서 뻗은 연장선에는 단독 배전주를 세웠다. 배전공사를 마무리 짓고 1901년 6월 17일 경운궁에 전등 여섯 개를 시험 삼아 점등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영업용 전등이다. 이어 전등사업을 홍보하고자 같은 해 8월 17일 저녁 동대문발전소 주변에 아크등 20개를 밝히는 전등개설의식을 열었고, 군중 1만 명이 몰려 구경할 정도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또 종로와 일본인 상가가 밀집한 진고개에 600여 등을 가설하는 한편 일반 가정에도 요금을 받고 전등을 달아주기 시작했다. 전등을 신설할 때 신청료와 가설료를 징수하고 한 달 전기 요금도 무척 비싼 탓에 수요가 더디게 늘었다. 당시 전기를 쓸 만큼 부유하고 힘 있는 집에는 대부분 친일파가 살았기 때문에 전깃불 켜진 집이 돌팔매질을 당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숭례문 앞에 설치된 가로등, 1900년대 (위)
전등이 공급된 진고개 배전주, 1900년대 (아래)
황성신문 皇城新聞
1901년 8월 16일 / 17 ㎝ × 24 ㎝ / 대한제국
광부 2년 (1898) 9월 5일에 창간된 알간신문. 남궁억, 나수연, 장지연 등이 《경성신문》을 인수하여 창간한 것으로, 국한문체 소형 (小型) 4면으로 발간하였다. 애국적 논필로 여러 차례 정간을 겼다가 19101910년 8월에 강제 퍠간되었다. 이후 《한성신문》으로 발행되다가 1910년 9월 14일에 종간하였다. 이 신문은 황성신문 1910년 8월 16일자 4면 신문으로서, 2면에 한성전기의 전등개설예식 (電燈開設禮式)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대한매일신보의 한성전기회사 기사
1904년 8월 1일 / 19.5 ㎝ × 28 ㎝ / 대한제국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한성전기회사 관련기사. 1904년 8월 1일 한성전기회사로 운영되던 전기 재산을 한미전기주식회사라는 새로운 법인으로 이전하여 운영하게 됨을 알리고 있다. 한미전기회사는 미국 코네티컥 주법에 따라 설림된 미국 회사로 주식의 절반은 대한제국 황제가, 나머지 절반은 미국의 콜브란 및 보스트위크 합자회사가 보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최초의 미국인 호러스 N. 알렌 기사
1904년 3월 8일 / 19 ㎝ × 25 ㎝ / 보스트위크 기증 자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한국에서 선교사이자 의사, 외교관으로 활동한 미국인 알렌 (Horace Newton Allen, 安連, 1858 ~ 1932)의 활동을 담은 기사.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 (甲申政變) 때 온 몸에 큰 상처를 입은 민영익 (閔泳翊)을 외과수술로 치료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05년 6월 알렌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귀국 후 알렌은 다시 의사로서 활동하고 집필에도 전념하며 여생을 보냈으며, 1932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일동맹 이후 한국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 증가
1902년 6월 / 19.5 ㎝ × 28 ㎝ / 대한제국, W. F. Sands 보고서
고종황제의 고문인 미국인 윌리엄 샌즈 (William F. Sands)가 고종황제에게 제출한 보고서. 1902년 영일동맹 이후 한국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자구책으로 모든 열강이 보증하는 절대적 중립 (영세중립) 선언과 조선 정부를 신속하게 개혁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수도공사는 전차나 전등공사 전에 먼저···
1901년 10월 10일 / 19.5 ㎝ × 28 ㎝ / 대한제국, 보스트위크 기증 자료
1901년 10월 10일 황성신문 (皇城新聞) 기사를 발췌하여 영문으로 수록한 글. 대한제국의 수도 한성에 수도공사의 필요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상수도 공사는 전차나 전등공사 전에 먼저 건설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한성 전기등 개설 예식 초대장 및 상등석 전차표
1901년 / 11.3 ㎝ × 17.7 ㎝ / 미국, 보스트위크 기증 자료
1901년 있었던 전기등 개설 예식 초대장과 예식에 참석하는 귀빈들을 위해 동봉한 상등석 전차표 1900년 4월 10일 종로에 3개의 전기등 (가로등)이 세워졌으나, 1901년 6월 600등까지 보급되면서 이를 기념하는 전등 개설식이 있었다. 이날 밤 11시부터는 전차 선로 주위이 모든 가로등이 점화되었다.
에디슨 탄소선 전구 (초기 모형)
1920년대 / 윗지름 10, 높이 18.5 ㎝ / 미국, 에디슨사
1879년 에디슨 최초 탄소선 전구를 재현한 모형. 탄소선은 순수한 무명실이나 대나무의 껍질을 밀폐한 그릇 속에 넣어 태워서 만든 가느다란 줄인데, 전구 안의 필라멘트로 썼다. 전구 속을 진공으로 하거나 질소 또는 아르곤 따위의 불활성 가스를 봉입 (封入)한 유리구 속에, 탄소선이나 텅스텐으로 만든 가는 저항선을 넣고 여기에 전류를 흐르게 하면 열과 빛이 발생한다.
와사등 (瓦斯燈), 가스등
일제강점기 / 지름 16.5 ㎝, 길이 55 ㎝, 유리 갓 25 ㎝ / 일본
석탄가스를 도관 (導管)으로 통하게 해서 불을 켜는 등. 가스램프, 와사등 (瓦斯燈)이라고 한다. 가스등은 고종 13년 (1876년) 일본에 파견한 수신사에 의해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일한와사 (경성전기 전신)는 1909년 용산에 와사공장을 준공하고, 1909년 11월 3일부터 진고개 일본인 상가 밀집지역과 거주지에 최초로 가스를 공급하였다. 이 등은 우리나라에 가스가 공급되었던 1910 ~ 1940년대 사용하던 등기구 중 하나이다.
아크등 (가로등용)
1891년 / 원지름 40 ㎝ / 미국, AdamsㅡBagnall Electric Co
두 개의 탄소봉 (炭素棒)의 첨단을 접촉시켜 여기에 강한 전류를 통하면서 떼면 호상방전 (弧狀放電)을 일으켜서, 이것에 의해 백열광을 내는 전등이다. 이 아크등은 밀폐형으로서 몸체가 마치 주름진 치마 같은 형상이 돋보이는 가로등용이다.
에디슨 전구, 스위치
1900년대 / 윗지름 25.2, 밑지름 13.2, 높이 17.5 ㎝ / 미국, 에디슨사
에디슨사에서 제작한 나무판 전구 시험기. 나무판 위 세라믹으로 된 소켓에 전구가 꼽혀 있고, 그 옆에 전구를 켜는 스위치가 달려 있다. 전원을 연결해 스위치를 켜면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끔 되어 있는데, 전구에 불이 켜지지 않으면 그 전구는 불량품이다. 스위치는 전기회로를 이었다 끊었다 하는 장치로서, 개폐기라고도 한다.
전등갓
1900년대 / 길이 17.8 ㎝ / 미국, 에디슨사
전등 위에 덧씌우는 갓. 조명 기구의 일부로, 광원의 일부를 감싸고 빛을 아래 방향 등 특정한 방향으로 집광하는 반사성 및 반투과성 재료로 만든다. 이 전등갓은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제작한 것으로서 전등 위에 덧씌워 천장 등으로 쓸 때 사용하였다.
한국의 전통 등기구
유제 벽걸이 등잔 (부엌등)
근대 / 밑지름 10 ㎝, 높이 30 ㎝ / 전기박물관
벽에 걸어서 사용하도록 만든 등잔대. 주로 부엌에서 쓰여 '부엌등' 이라고도 한다. 벽걸이 등잔은 재질 뿐만 아니라 모양 또한 다양한데, 이 등은 주물로 형체를 만든 다음 잘 다듬은 것으로 윗부분 가장자리 쪽에 좌우 대칭으로 새 [鳥]를 조각하였다.
유제 벽걸이 등잔 (부엌등)
근대 / 밑지름 9.7 ㎝, 높이 22.7 ㎝ / 전기박물관
벽에 걸어서 사용하도록 만든 등잔대. 주로 부엌에서 쓰여 '부엌등' 이라고도 한다. 벽걸이 등잔은 재질 뿐만 아니라 모양 또한 다양한데, 이 등은 주물로 형체를 만든 다음 잘 다듬은 것으로 윗부분 걸이 쪽에 당초무늬 [唐草紋]를 조각하였다.
철제 3족 받침 촉대
일제강점기 / 24 × 10.3 × 8.5 ㎝ / 전기박물관
초를 꽂아 놓은 기구. 철제 초받침의 가운데에 초꽂이를 만들고 그 둘레에 무쇠로 테를 둘렀으며, 테로 인해 초를 한층 더 안정감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바닥에는 짧은 다리 두 개와 긴 다리 한 개를 달고, 특히 가운데의 긴다리는 좌우로 180˚ 회전할 수 있도록 하여 쓰는데 실용성이 돋보인다.
유제 쌍촛대
근대 / 밑지름 10 ㎝, 높이 30 ㎝ / 전기박물관
초를 꽂아 놓는 기구. 이 촛대는 놋촛대 (유기촛대)로서 의 · 제식용이다. 복발형 받침에 죽절기둥을 세우고 위에 초받침을 얹었다. 초꽂이의 초받침이 쉽게 빠지거나 헐렁거리지 않도록 초꽂이를 나사식으로 마감한 것으로 보아, 제작 시기가 그리 오래지 않은 근대작이다.
목제 촛대
대한제국 / 밑지름 16.7 ㎝, 높이 42 ㎝ / 전기박물관
초를 꽂아 놓는 기구. 갈이틀 [선기 : 鏇機]을 이용하여 깎은 것인데, 장식은 주로 기둥에 많이 행해져 대매듭, 줄구슬, 꼰노새김, 기하학적 돋을새김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촛대는 갈이틀을 이용하여 깎고 옻칠을 하였다.
목제 쌍촛대
일제강점기 / 밑지름 9 ~ 9.5 ㎝, 높이 22 ㎝ / 전기박물관
초를 꽂아 놓는 기구. 갈이틀 (선기 : 鏇機)]을 이용하여 깎은 것인데, 등기구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형태의 용기 (容器)를 만들어 썼다. 이 기법은 재료를 틀에 고정시켜 두고, 굴대를 돌리면서 칼 (갈이칼)을 대어 여러 가지 형태의 물건을 만든다. 의 · 제식용으로 촛대기둥 [竿柱]에 여러 형태의 장식이 있다.
철제 쌍심지 석유 등잔
1960년대 / 밑지름 11.5 ㎝, 높이 45.5 ㎝ / 전기박물관
기름을 담아 등불을 켜는 데에 쓰는 도구. 등잔의 연료는 석유를 사용하였고, 조도를 밝게 하기 위해 두 개의 심지를 낸 쌍심지 등잔이다.
촛대 겸용 등가 燈架
1960년대 / 밑지름 18 ㎝, 높이 41 ㎝ / 전기박물관
초나 기름을 담아 등불을 켜는 데에 쓰는 도구. 등잔대와 촛대를 겸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팔각의 나무판에 두 가닥의 철사로 기둥을 세우고 유려한 선으로 등잔받침과 초받침을 만들었다. 기둥에는 다시 양은 철사를 감아 전체적으로 안정감있게 처리하였다.
유제등경 鍮製燈檠
근대 / 높이 67.5 ㎝ / 전기박물관
등잔의 높낮이를 조절하여 불을 밝힐 수 있도록 만든 놋쇠 등잔대. 마치 '斗' 자 처럼 생겨 '광명두 (光明斗)', '광명두리' 라고도 한다. 주로 안방과 같은 실내 공간에서 사용하였다. 둥근 밑받침에 3 ~ 4단 (段)의 걸이용 기둥이 서고, 기둥 가운데 부분에 등잔받침과 기름받이를 위 아래로 걸 수 있도록 하였다.
등롱색촉 燈籠色燭
1903년 / 18.6 ㎝ × 13.6 ㎝ / 대한제국
궁의 호위대에서 관리하는 등촉 (燈燭)의 용하 (用下 :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비용을 내어줌) 내역과 시기, 사유 등을 기록한 필사본.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상 (冊上)은 1903년 (광무 7년) 1월에서 1905년 (광무 9년) 3월, 책하 (冊下)는 1905년 4월에서 1907년 (광무 11년) 3월까지의 기록이다. 호위대는 대한제국기 왕권 강화책으로 증강 · 개편된 국왕의 호위 군대를 일컫는다.
인사비결 등화점 人事秘決 燈火占
1868 ~ 1925년 / 17.2 ㎝ × 11.6 ㎝ / 일본
등잔의 불꽃 모양을 통해 점을 치는 방법을 기재한 책. 일제강점기 경성전기주식회사 등화사료실 (燈火史料室)의 기시겐 (岸謙)이 수집한 서책으로, 일본 와이즈미야 쇼지 (和泉屋庄次郞)에서 간행한 목판본이다.
한국의 고등기 古燈器
1968년 / 21 ㎝ × 15.2 ㎝ / 한국전력주식회사 공보실 편
일제강점기 경성전기 등화사료실 (燈火史料室)을 담당했던 기시겐 (岸謙)의 한국 등화관련 자료를 시대적으로 집대성한 전문도서. 기시겐이 쓴 일본어판 원고를 1968년 한국전력 공보실에서 최순우 (崔淳雨) 선생의 감수 (監修) 하에 『한국의 고등기 (韓國의 古燈器)』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고조선부터 낙랑, 삼국과 가야, 통일신라, 고려, 조선까지 방대한 등화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
카바이드 등
1960년대 / 반사판 지름 8.2 ㎝, 밑지름 6.5 ㎝, 높이 31 ㎝ / 전기박물관
카바이드를 이용하여 불을 밝히는 조명기구. 카바이드는 탄화칼슘과 물을 섞어 아세틸렌을 발생시켜, 이것을 태워 광원 (光源)으로 쓴다.
카바이드 등
1970년대 / 갓 지름 17.5 ㎝, 밑지름 10.2 ㎝, 높이 37.5 ㎝ / 전기박물관
카바이드를 이용하여 불을 밝히는 조명기구. 카바이드는 탄화칼슘과 물을 섞어 아세틸렌을 발생시켜, 이것을 태워 광원 (光源)으로 쓴다. 이 등은 스테인리스로 만들었다.
손전등 (전지 램프)
1960년대 / 23.7 × 7.5 × 4.5 ㎝ / 미국, Justrite Manufacturing Co.
건전지를 전원으로 하여 불이 들어오게 된 휴대용의 전등.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만든 전등으로 건전지 수명이 다하면 교체하여 쓸 수 있도록 하였다.
남포등 石油燈
1960년대 / 밑지름 9.7 ㎝, 높이 28 ㎝ / 전기박물관
석유를 넣은 그릇의 심지에 불을 붙이고 유리로 만든 등피를 끼운 등. 남포, 양등 (洋燈)이라고도 한다.
남포등 石油燈
1960년대 / 밑지름 15.7 ㎝, 높이 44.5 ㎝ / 전기박물관
석유를 넣은 그릇의 심지에 불을 붙이고 유리로 만든 등피를 끼운 등. 남포, 양등 (洋燈)이라고도 한다. 등의 유리에 '대한등' 이라는 명문이 있다.
철제유리사방등 (鐵製琉璃四方燈)
1960년대 / 12 × 12 × 38.5 ㎝ / 전기박물관
네모반듯한 철제 유리등. 네 면에 유리를 끼우거나 또는 종이나 헝겊을 바르고, 그 안에 등잔이나 촛불을 켜서 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등은 캔의 재료로 쓰는 양철을 잘라 틀을 민들고 사방에 유리를 끼웠다. 주로 석유등잔 (호롱)을 넣어 사용하였다.
사기제 쌍심지 석유등잔 (호롱)
일제강점기 / 밑지름 6.8 ㎝, 높이 9.5 ㎝ / 전기박물관
석유를 연료로 해서 불을 켜는 등. 사기나 유리 또는 양철 따위로 작은 병 모양으로 만드는데, 아래에는 석유를 담을 수 있도록 둥글게 하고 위 뚜껑에는 쌍심지를 해 박아 불을 켤 수 있도록 했다. 등잔의 몸체 아래쪽에 '불조심' 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유제 석유등잔 (호롱)
일제강점기 / 밑지름 6.3 ㎝ , 높이 9.2 ㎝ / 전기박물관
석유를 연료로 해서 불을 켜는 등. 놋쇠를 이용하여 작은 병 모양을 만들어 아래에는 석유를 담고, 위 뚜껑에는 심지를 해박아 불을 켤 수 있도록 하였다.
백자 뚜껑형 등잔
조선시대 / 윗지름 12.7 ㎝, 밑지름 6 ㎝, 높이 3 ㎝ / 전기박물관
기름을 담아 등불을 켜는 데에 쓰는 그릇. 주로 들기름을 붓고 한지나 실을 꼬아 만든 심기를 박아 사용한다. 등잔의 가운데에 돌기가 있는데 여기에 등잔 심지를 세워 불을 붙인다. 일명 '뚜껑등잔' 또는 '꼭지등잔' 이라고도 한다.
백자 종지형 등잔
조선시대 / 윗지름 9 ㎝, 밑지름 4 ㎝, 높이 2.5 ㎝ / 전기박물관
기름을 담아 등불을 켜는 데에 쓰는 그릇. 종지 형태로 생겼으며, 등잔에 기름을 붓고 한지나 실을 꼰 심지를 넣어 불을 켰다.
백자유병 白磁油甁
조선시대 / 윗지름 4.5 ㎝, 밑지름 5.5 ㎝, 높이 9 ㎝ / 전기박물관
기름을 담아 놓고 쓰던 병. 등잔의 연료인 주로 식물성 기름을 넣어서 사용하던 것이다.
백자유병 (白磁油甁), 기름병
조선시대 / 윗지름 7 ㎝, 밑지름 7 ㎝, 높이 24 ㎝ / 한국
기름을 담아 놓고 쓰던 병. 등잔의 연료인 들기름이나 콩기름, 아주까리 등 주로 식물성 기름을 넣어서 사용하던 것이다. 등잔의 기름을 공급하기 위해 등잔 가까이 두고서 쓰는데, 주둥이 부분에 끈을 매달아 벽에 걸거나 바닥에 놓고 사용했다. 황해도 해주가마에서 구운 것으로 표면에 기름 얼룩이 배어 백자 빛깔이 이색을 띈다.
목제 '부귀만수 (富貴萬壽)' 문 등잔대
일제강점기 / 26 × 36 × 27 ㎝ / 한국
오래된 느티나무 (槐木)의 옹이 부분을 통째로 다듬어 만든 등잔걸이. 몸통에 부귀만수 (富貴萬壽) 문을 새겨 삶의 염원을 담고, 등잔대 앞쪽에 남근목 (男根木)을 조각하여 자식 낳기를 바랬다. 이 등잔대는 어둠을 밝히는 단순한 조명기구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부귀장수, 자손 번창의 기원을 담은 담은 표상물로서 민속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남포등 (石油燈)
1960년대 / 밑지름 8.2 ㎝, 높이 35 ㎝ / 전기박물관
석유를 넣은 그릇의 심지에 불을 붙이고 유리로 만든 등피를 끼운 등. 등 부분이 통유리로 되어 있고, 윗 부분에 뚜껑과 철사로 만든 걸이와 손잡이가 있다. 심지조절 나사와 통유리 뒤쪽에 반사판이 달려있다.
관솔
근대 / 길이 18 ~ 22 ㎝ / 전기박물관
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 관솔 끝에 불을 붙여 어둠을 밝혔다. 일반 농촌이나 산간 마을에서는 집안의 마루 밑이나 눈에 잘 띄는 공간에 두고 밤에 불을 밝히는 조명도구로 썼다. 송진이 엉긴 부분이 기름 역할을 하여 관솔에 불을 붙이면 그을음과 함께 불이 잘 붙는다.
부시 火刀
조선시대 / 길이 3.5 ~ 6 ㎝, 두께 0.1 ㎝ / 전기박물관
부싯돌을 쳐서 불이 일어나게 하는 쇳조각. 부식쇠, 부쇠, 부수, 화도 (火刀) 등으로 불리운다. 석영재질의 부싯돌과 주머니가 함께 갖추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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